지난 세기 중반 한반도에서 있었던 6.25 전쟁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대리전 성격을 가지며, 민족 최대의 비극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근 현대사에 큰 상흔을 남겼던 이 역사적 사건도 세월의 흐름 속에 흐릿해져, 이를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필자의 기억 속에 6.25는, 때가 되면 내야했던 방위성금이나 적대와 증오를 부추키는 반공 포스터--반전이 아닌!--그리기 등의 행사로 남아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지난 세기와 같은 전면전이 일어나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물론, 가상의 전쟁 위험을 놓고 군비경쟁을 촉구하는 우익 세력이나 자국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약소국의 전략 속에서 전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위기감을 조성하여 기득권을 고수하거나 구심점이 없는 체제의 결속을 위해 가상의 적을 향한 투쟁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때 전쟁은 단일대오를 위한 알리바이가 된다. 그러나 다수에게 전쟁은 CNN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전쟁의 종언은 그 원인이었던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기 보다는 전쟁이 수행되고 있는 양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뜨거운 역사적 사건이 아닌 차가운 일상이 지배하는 곳에서 이제 전쟁은 다르게 수행된다. 현대의 전쟁은 나른하고 안락한 일상적 평화 속에, 생산과 소비 생활 속에 내재해 있다. 생산자는 판매에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소비자는 풍요로운 소비 생활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전쟁은 어떤 시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단일 사건이라기보다는 보편화 되는 것이다. 물론 뜨거운 전쟁이고 차가운 전쟁이고 간에, 전쟁은 늘 살벌한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생태계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늘 있어왔지만 이성과 도구를 갖춘 인간에게 경쟁은 더 파괴적인 것, 즉 전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일상 속에 편재화 된 전쟁은 피 흘리며 죽는 단일 사건으로서의 전쟁 못지않게 위협적이다. 전쟁 전후의 시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 졌지만 행복지수는 형편없다. 굶어죽거나 총에 맞아 죽는 이보다 자살, 범죄, 교통사고로 죽는 이들이 더 많다. 요즘 전쟁은 입시나 취업 같이, 매 인생의 단계마다 붙여지는 필수적인 접미사가 되었다.





지난 5월 리나 갤러리에서 열린 안경수와 이재훈의 2인 전 the battle of life는 젊은 세대들에게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삶 속의 전쟁을 다룬 전시로, 현대적 삶과 전쟁의 진실에 대한 공감을 자아낸다. 안경수는 조악하게 생산된 피규어를 다양하게 배치하여 장지 위에 그린다. 군인 놀이용 인형들은 절단되어 있고, 절단된 단면에는 군화나 팔뚝 같은 이질적인 부분이 합성되기도 한다. 단면들은 유기체가 절단된 이미지이자 기계의 이미지인데, 여기에서 인간들은 전쟁 기계로 간주된다. 기계화된 현대의 전쟁은 말끔한 평면 위에서 게임처럼 수행되곤 한다. 작품 [푸른 풍경]에는 하늘이 비치는 반사면이 놓여 있는데, 푸른 하늘에는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아래는 군인들이 엉켜 쓰러져 있다. 그것은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 보다는 먼 거리에서 스위치를 조작하는 추상적 행위로 수행되는 전쟁과 관련된다. 전쟁은 자신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듯한 사소한 행위들의 연쇄로 수행되는 것이다. 산처럼 쌓인 군상들은 시체 더미들 같은 동질성이 두드러진다.

이재훈의 그림에는 학생들이 전사의 모양새를 갖추고 등장한다. 안경수의 군인들처럼 전사들은 차이가 소멸되어 있다. 둘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마치 쌍둥이처럼 보인다. 작품 [unmonument-이것이 현실입니까]에서 두 경쟁자가 칼끝을 마주한 채 데칼코마니처럼 배치되어 있다. 전쟁은 패배자라는 동질적 집단을 만들어내지만, 역으로 전쟁 자체가 동질적인 집단끼리 벌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눈을 가린 이들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이기 보다는 전쟁놀이 같은 몸짓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판위에 모두를 올려놓고 흔들어 승리자를 결정하는 현대의 경쟁체제를 표현한다. 동질성이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 가령 일제고사나 세계화 등이 그 예이다. 각자 다른 곳에서 이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공존과 협력, 평화와 예술을 낳는다. 그러나 대다수가 참가하지만 소수만이 쟁취할 수 있는 동일 목표 지향성은 같은 것을 욕망하도록 강제하는 전일적 시스템의 결과로, 전쟁 밖에 불러오는 것이 없다. 주사위나 금이 간 우승컵이 등장하는 이재훈의 또 다른 작품들은 경쟁의 맹목성과 게임 원칙의 임의성을 표현한다. 그는 기념비적 양식을 반어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전쟁 같은 경쟁이 지배하는 현실 원리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피를 보아야만 하는 가혹한 기억술을 암시한다.

출전; 미술세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