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과거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 다시 말해 아시아의 인상은 그다지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봐 온, 아시아를 소재로 한 영화의 장면들은 비록 그것이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동양인은 더럽고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그들은 말쑥하게 차려입은 서양인의 하인이 돼 수발을 들거나(인도로 가는 길), 함부로 총질을 해도 찍소리도 못하고 죽어가는(레이더스), 좀 심하게 말하면 ‘짐승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는 존재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묘사들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용어로 서양의 지식인들이 아시아에 대한 대중적 편견을 조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영화가 대중에게 호소력이 큰 매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묘사는 서운한 것을 지나쳐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말한 것처럼, 유럽의 창작품에 불과한 ‘오리엔탈리즘’이란 이 허상은 사라졌다. 이제 서구의 문학과 저널, 영화, 그림에 빈번히 등장하여 동양은 너절하고 비위생적이며, 동양인은 나태하고 게으르다는 식의 묘사가 은연중에 심어놓은 고정관념은 아시아의 도시를 찾는 서구인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던가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들 것이다. 인종의 우열은 피부색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시아인들도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고, 그것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IT 강국으로 부상하는 요인이 돼 이제는 세계의 금융권이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는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서양의 언론은 지금 아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 한국의 약진을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본다. 최근 나는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는데, 장승규의 ‘Super Power Asia:아시아의 힘, 세계를 바꾼다’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그의 글에 의하면 “지난 11월 26일 세계 최대 금융사인 미국 씨티그룹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국부 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으로부터 75억 달러(약 6조 9천억 원)에 달하는 출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며, 최근 골드만삭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환 트레이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내년 환 투자 포인트는 미국 달러를 팔고 아시아 통화를 사는 것”이며, 그 대상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대만 통화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워싱턴발 김재홍 기자(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무리한 고수익 고위험 투자가 빚어낸 월가의 참극으로 미국이 점점 일본과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세계 금융 권력의 지도도 변화할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재무부는 올 들어 베어스턴스 사태 등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주요 금융위기 대책을 아시아 시장 개장을 겨냥해 발표하기 시작했고 부실금융기관의 인수 대상자를 아시아 시장에서 찾고 있다”고 아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물론 이러한 언론 보도를 근거로 장차 아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적어도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며, 멀지 않은 미래에 세계의 지도 위에 각인될 ‘아시아의 부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비전과 꿈이다. 만약 1963년 워싱턴 평화행진 중에 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한 유명한 연설의 한 구절, 즉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We have a dream)”란 외침이 없었다면, 오늘날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자명한 사실은 오랜 기간 미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의 파리가 2차 대전이후 권력을 미국의 뉴욕에 이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냉전 체제하에서 자본주의의 종주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전략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탄생시켰다. 소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는 미국이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라고 하는 유태인 출신의 뛰어난 미술평론가를 통해 전통이 부재한 상태에서 미국 현대미술의 위대성(?)을 제조해 낸 결과다. 명민했던 그는 자국의 회화 전통이 매우 보잘 것 없음을 간파하고 유럽 미술의 역사를 독자적으로 해석, 그 젓줄로부터 추상표현주의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베니스비엔날레는 그린버그가 홈런을 치는데 훌륭한 발판이 돼 주었는데, 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미국은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미술의 최대 제전인 베니스비엔날레에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들, 예컨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아쉴 고르키(Arshile Gorky),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등을 여러 차례 등판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세계의 미술계에 자국 작가들의 얼굴을 알리는 이 ‘히트 앤 런(Hit and Run)’의 전략은 매우 주효했는데, 구체적인 회수를 들자면, 윌렘 드 쿠닝이 6회(1950, 1954, 1956, 1978, 1986, 1988), 아쉴 고르키가 4회(1948, 1950, 1962, 1968), 잭슨 폴록이 4회(1948, 1950, 1956, 1978), 로버트 마더웰이 4회(1948, 1968, 1970, 1976)에 달한다.

물론 미국의 현대미술이 오늘날처럼 세계미술의 무대에서 각광을 받기까지에는 그린버그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 리 만무하다. 그것은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와 같은 거물급 화상의 힘에, 약관 27세에 뉴욕 근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의 관장에 취임하여 1967년 은퇴하기까지 무려 40년간에 걸쳐 미국 현대미술의 지도를 그린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 Jr) 등등 미국의 정계와 문화예술계를 움직이는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의 힘이 보태져 가능했던 것이다.

Ⅱ.
문화예술의 패러다임은 말이 쉽지 그렇게 단기간에 바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세계 미술계의 파워가 유럽 미술의 본거지였던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가기까지에는 미국의 정교한 문화전략과 처절한 싸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들의 수준높은 문화의식과 교양, 그리고 우수한 미술품을 살 수 있는 구매력, 정치적 힘과 자본력이 힘을 합할 때, 문화예술의 패러다임은 서서히 이행의 기미를 보인다.

아시아를 이야기할 때, 우리의 비전은 이 경제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도대체 경제젹 파워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패러다임의 이행을 기대할 것인가. 나는 아시아의 미술을 다룬 아시아의 학자들이나 큐레이터, 비평가들의 글에서 자신들의 글이 ‘역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경계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하는데, 이는 좋게 말하면 학자적 신중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겁함의 그럴듯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지나친 신중함이 오늘날 보는 것처럼 베니스비엔날레에서의 서구 작가들의 연이은 수상 독식과 카셀 도큐멘타에서 보는 것과 같은 서양 작가 위주의 전시를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오만방자한 그들의 자유겠지만, 올림픽이 반쪽이 되면 올림픽 정신의 구현을 기대할 수 없듯이, 그런 상태의 전시가 세계의 제전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내가 어떤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의 제 48회 베니스비엔날레 기획의 맹점은 ‘인류의 고원(Plateau of Mankind)’이란 주제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데 있다. 왜 그런가? 그 이면에는 세계 각 지역의 작가들을 고르게 배려하지 못 한 제만의 한계, 즉 ‘유럽중심적 사고(Eurocentricism)’가 잔재해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기획자로서 제만의 한계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난 6월 1일, 제주도의 그랜빌 리조트 컨퍼런스 홀에서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포럼을 가졌다.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자리에 모인 미술, 영화, 문학 분야의 인사들은 각 분과별로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과 동남아시아 예술의 현황을 분석하고 미래적 비전을 모색하였다.

미술 분야는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활발한 미술 교역과 문화교류의 방법론(Methodology of active art trade and cultural exchange in the region of Asia)”을 주제로 9개국 대표 10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가자는 한국의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와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브루나이의 자카리아 빈 오마르(Zakaria Bin Omar:브루나이아트포럼 부회장), 인도네시아의 다니엘 코마르(Daniel Komar:라라사티 옥션 대표), 미얀마의 아에 코(Aye Ko:뉴제로아트스페이스 디렉터), 필리핀의 호셀리나 크루즈(Joselina Cruz:2008 싱가포르비엔날레 큐레이터), 말레이시아의 발렌타인 프란시스 윌리(Valentine Francis Willie:발렌타인프란시스윌리 갤러리 대표), 싱가포르의 수엔 메건 탄(Suenne Megan Tan:싱가포르 미술관 부관장), 타일랜드의 그리티시아 까위웡(Gridithiya Gaweewong:짐톰슨재단 아트센터 관장) 그리고 베트남의 비엣 레(Viet Le, 화가 겸 독립큐레이터) 등이다.

각 나라를 대표하여 모인 이들은 앞에서 언급한 주제를 놓고 각자 자국의 경제, 정치, 문화, 사회적 상황에 입각하여 의견을 개진하였다. 동시통역으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미술행정가, 작가, 화상, 경매전문가 등 다양한 신분의 참가자들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개진했는데, 공통적인 화제는 미술시장을 비롯하여 각종 비엔날레, 아트페어, 옥션 등 미술의 제도들이 지닌 문제점과 미래적 전망에 관한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를 정리하자면 소위 글로벌리즘으로 요약되는 현재의 문화적 상황에서 아시아의 미술은 어떻게 활로를 모색할 것이며, 서구 일변도의 문화 예술적 판짜기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맨 먼저 발언을 한 자카리아 빈 오마르는 산유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브루나이에는 ‘배고픈 작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그만큼 치열하게 작업을 하는 프로 작가도 드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브루나이아트포럼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이유에 대해 장차 정부의 강력한 지원 하에 브루나이 작가들의 해외전과 국제전 개최가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수년간 개최한 ‘마음을 위한 예술(Art to Heart)’전과 같은 사업을 포석으로 깔면서 국제교류의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자신이 디렉터로 있는 뉴제로아트스페이스의 다양한 활동을 영상으로 소개한 아에 코는 1988년, 민주주의 혁명운동이 끝난 시점에서 미얀마의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도인 양곤과 만달레이, 푸인 오 르윈, 민 곤 등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얀마의 미술시장은 판매가 잘 되는 사실주의 화풍의 그림만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미얀마의 현대미술 형성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고 큐레이터가 없는 현실도 미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여기서 잠깐 아세안(ASEAN)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아세안은 동남아시아국가협의회(Association of South Asian Nations)의 약자로서 동남아시아의 제국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1967년에 결성되었다. 여기에는 태국을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미얀마(구 버어마), 브루나이,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는데, 2006년 기준 동남아시아의 총인구는 5억 6천만 명에 달하며, 총생산액(GAP)은 1조 1천억 달러, 총 무역액은 1조 4천억 달러에 달하는 큰 규모다. 만일 이 지역의 경제규모와 한국, 중국, 일본으로 대변되는 동아시아의 그것이 합쳐진다면 아시아 지역의 GDP 규모는 약 8조 7천억 달러로 불어나 북미와 유럽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구매력 평가(PPP) 기준 GDP로 따지면 18조 770억 달러로 세계 1위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아시아는 북미와 유럽을 따돌리고 세계 최대의 경제권역이다”(장승규, <아시아의 힘, 세계를 바꾼다>에서 인용).

이번 토론회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아세안 국가들의 잠재력은 해양문화권에 속한 문화적 동질성과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로 대변되는 공통적인 종교적 배경, 그리고 화교와 아열대성 기후, 공용어로서의 영어 사용 등 동질적인 요소들이 빚어내는 일체감에서 나온다. 또한 근대를 통해 전개된 서구 열강 및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식민지적 경험에서 연유한 정신적 상흔(trauma)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것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의 식민지적 경험을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식민지적 경험은 동아시아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결속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도를 비롯한 서아시아와 중동지역의 서남아시아 제국이 모두 한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된다. 소위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식민주의’의 희생양이 바로 아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발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베트남의 화가이자 큐레이터인 비엣 레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전쟁과 글로벌 경제의 위기 속에서 과연 세계(미술계)의 ‘중심’이 어디인가”고 묻는다. 그는 미술과 경제가 상호 연결돼 있다고 보면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인도와 중국이 미래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는 최근 몇 년 간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에 형성된 한류 열풍에 주목하며, 얼마 전에 있었던 전을 예로 들어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를 소개하였다.

태국의 그리티시아 까위웡은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다양한 문화행사들을 분석하는 가운데 아시아의 국가들이 다양한 문화적 이벤트를 매개로 결속을 다지고, 지속가능한 예술 프로젝트의 공동 개발을 통해 강력한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2000년 일본재단(Japan Foundation)이 주최한 <공사중(Under Construction)>이란 장기적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아시아 지역의 작가들이 상호간의 교류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나아가서는 세계화의 측면에서 아시아의 현단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가 지닌 의의를 역설하였다.

정준모는 서구열강에 의한 침략을 경험한 아시아에서 ‘문화’란 곧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군사력을 빌리지 않고 피식민 민족의 세계관을 바꾸려고 하는 전략이자 전술이라고 비판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선입견 없이 문화교류를 촉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그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미술사가나 미술평론가, 큐레이터들의 인적 교류를 제안하는 한편, 자국의 미술사를 상호 추천하고 번역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협업 프로젝트와 함께 아세안 비엔날레의 창설도 역설하였다.

필리핀의 미술 현황을 소개한 호셀리나 크루즈는 필리핀이 지닌 강점 중의 하나가 풍부한 미술품 컬렉션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표적인 사례로 로페즈 가문의 로페즈기념박물관, 아얄라 가문의 아얄라박물관, 유쳉코스 가문의 유쳉코스박물관을 예로 들고, 이것들이 강력한 제도적 토대가 되었음을 강조하는 한편,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아쉬워했다. 현대미술은 오히려 전문 상업갤러리의 국제시장 진출과 큐레이터들의 국제교류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고 현황을 설명하며, 필리핀 내의 예술 활동이 마닐라 중심에서 서서히 벗어나 북부와 남부의 대도시 중심으로 확산돼 가고 있는 추세라고 분석하였다.

수엔 메건 탄은 최근 몇 년간 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난 각종 비엔날레의 경향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방향 모색에 대해 언급하였다. 특히 싱가포르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상하이비엔날레, 광조우트리엔날레, 타이페이비엔날레, 요코하마트리엔날레, 자카르타비엔날레 등 작년 한 해 동안 아시아지역에서 개최된 비엔날레 및 트리엔날레 행사의 장면들을 영상으로 간단히 소개하는 가운데 비엔날레의 독자적인 정체성 확립이 시급하고 특히 서구적 시각에서의 탈피가 시급하다고 강조하였다.

갤러리 대표인 발렌타인 윌리와 경매사 대표인 다니엘 코마르의 발언은 미술시장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다니엘은 지난 10년간 아시아의 아트마켓이 상당한 변화를 겪는 가운데 작품 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강조하면서도 금융시장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미술시장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는 미술품 수집은 즐거움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관객의 꾸준한 노력이 뒤따라야 함을 역설하였다.

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에 대해 소개한 발렌타인은 이 지역의 미술소비 잠재력이 크다고 강조하고, 새로운 감각을 지닌 신세대 작가들이 거침없는 사고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신민지의 아픈 기억이 없는 이들의 분방한 사고와 행태야 말로 세계화란 말에 어울리는 세대를 대변하는 것이며, 이들은 문화적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금기에 도전하는 예술적 실현과 외부의 한계를 탐험하고 있다고 보았다.

Ⅲ.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아시아인들에게 아직도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씌웠던 구질구질 구석이 있는가.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도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거지나 노숙자들이 즐비하고, 지하철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그러한 광경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럽의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아시아의 대도시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의 건설 열기에 푹 빠져있다. 서울을 비롯하여 동경, 북경, 싱가포르, 상하이, 쿠알라룸푸르, 방콕, 홍콩 등 아시아의 대도시들의 모습은 이제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 평균적인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은 세계화의 표준에 맞춰 서구와 아시아의 차이가 없으며, 음습한 대도시의 이면, 즉 슬럼가의 모습 역시 서로 닮았다. 경제면에서 볼 때, 아시아는 지금 맹렬한 속도로 유럽과 북미를 추격하는 중에 있다. 이대로라면 멀지 않은 기간에 추월을 할 것이다. 10년 혹은 20년 후의 아시아가 지금과 같지는 또한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에 그려 보면서 패러다임의 변혁을 위한 큰 문화지도를 그려보고 싶다. 그 일은 용기와 원대한 비전, 그리고 파트너들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이번 포럼에서 내가 제안한 ‘아시아미술포럼’과 가칭 ‘아시아미술제’의 창설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2005년에 창설된 <포천아시아미술제>와 <아시아비평포럼>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마침 한아세안정상회의를 기념하여 재미 독립큐레이터인 김유연이 기획한 가 서울에 흩어져 있는 10여개의 갤러리에서 일제히 열렸다.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작가들이 참여한 사진과 영상 위주의 이 전시는 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잘 드러낸 인상적인 전시회였다. 이 전시에 출품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서구 작가들의 미적 감수성과는 차별되는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 특유의 미적 감수성을 집합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이번 포럼을 뒷받침해 주는 현장 위주의 실천적인 기획이었다. 앞으로 이런 아시아 관련 전시와 포럼의 기획이 자주 열려 세계 미술계에 아시아를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끝으로 아시아의 비엔날레들이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고 전략을 수정해야 할 시점도 바로 ‘지금’임을 강조하고 싶다.

아트인컬처 2009.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