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나 독서는 미로와 같은 우회로와 불투명성을 가진다. 단출하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도 나는 그것들은 마치 시인이나 수도사의 방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집은 단지 작을 뿐 비좁지 않다. 이동 가능한 작은 집은 머무름과 떠남이 이항 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안규철이 고안한 집들은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그것이 실제로도 쓰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작가는 이미 자세한 시방서를 가지고 있을 듯싶다. 구조물은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상황과 표정이 있다. 구조물과 모형들은 달팽이나 거북이, 소라 같은 동물들에서와 같은 몸-거주 복합체를 떠오르게 한다. 그의 작품에서 몸은 세계의 상징적 중심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것들과 연결되기를 요구한다. ‘2.6 평방미터의 집’은 고립과 유폐가 아니라, 타자와 더 행복하게 만나기 위해 자신을 추스르고 가다듬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된다. 건축적 형식으로 구축된 공간은 추상적이거나 중성적이지 않다. 공간은 건조해 보이지만 거주자의 욕망과 꿈이 스며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은 홀로일 수밖에 없는 실존적 상황이, 그리고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는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 있다.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커다란 가방처럼, 이 작은 집들은 미로로서의 세계와 역사를 통과하기 위한 유목 도구이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유목은 이주, 망명, 여행 같은 실제적인 이동이라기보다는, 로지 브라이도티가 [유목적 주체]에서 언급하듯, 고착성에 대한 모든 관념, 욕망, 향수를 폐기해 버리는 종류의 주체를 형상화한다. 이점에서 그들은 진짜 유목민처럼 소수자에 속한다. 안규철의 포터블 하우스는 이러한 비판적 지식인 및 예술가로서의 유목민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유목민은 현대의 도시로 상징되는 바의 거대한 축적의 공간을 벗어나, ‘타자들과 방랑의 장소를 공유’(아탈리)한다. ‘2.6 평방미터의 집’은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개방과 연대에 인색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집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이끌어 왔던 동기인 축적을 위한 전유나 착취가 아니라, 이질적 타자와의 상징적 교환을 극대화하는 상호 주체성의 감각을 고양한다.
출전 | 계간조각 200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