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주 전 | 4.3--5.21 | 김종영 미술관
여성 조각가 박원주와 최은경의 작품들은 인간을 중심에 놓았던 전통적 조각의 기념비가 아닌, 또 다른 방식을 통해 미니멀리즘 이후 현대 조각에서 거의 추방되다시피 한 인간을 다시 불러들인다. 그렇다고 인간상이 작품 전면에 드러나거나, 내용면에서 인간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상 대신에 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거울이나 책 같은 소재는 다시 호출된 인간 존재를 반추하기 위한 핵심적 장치가 된다. 두 전시 모두 장황하지 않은 스케일에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많으며, 개인의 자전적 속성을 넘어서는 구조적 서사와 똑 떨어지는 형식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박원주 전은 여러 각도와 길이로 잘려진 것이 재조합 된 특이한 형태의 틀들을 보여준다. 틀은 유리가 끼워진 액자나 거울, 창의 그것이 연상되는데, 틀 앞에 끼워진 평평한 유리 역시 다양한 굴곡 면으로 변형되어 있다. 반듯한 것들과 달리, 구겨졌다가 펴진 것들은 무엇인가를 반영하거나 투사하기 위한, 틀이 갖추어야할 투명성을 사라지게 하며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작품 [남녀 초상-펴기]에서 잘려서 재조합된 틀과 바탕 면에는 여성상도 남성상도 보이지 않지만, 초상이라는 형식은 틀을 액자로 상정한다. 작품 [무쇠 같은 마음-펴기]는 황금빛 액자로, 작품 [프레셔 위도우]는 붉은 색 창틀로 연출되었다. 둘둘 말수 있는 액정 화면이 가능해진 시점에서, 접었다 펼쳐질 수 있는 틀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거울, 그림, 창 등으로 변주되는 박원주의 틀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비춰줄 수 있을 듯한 전능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복잡다단한 인간의 심리가 출몰하는 어스름한 무대로 기능한다. 심리극은 바탕 면에 구름이나 하트 모양이 드러나는 밝은 면에서부터, 총알구멍이나 칼자국이 있는 어두운 면까지 아우른다. 금색, 은색, 동색으로 칠해진 브론즈 작품 [희망봉]은 거울의 바탕 면이 빙산처럼 솟아오른 듯한 형태로, 그 이름이 내포하는 이상향적인 면모와 달리, 단단하고 날카로운 형상으로 조각난 유리파편 같은 모습이다. 깨진 거울이라는 어둡고 공격적인 이미지는 [희망봉] 못지않게 의외의 설치물인 전기의자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사무용으로 널리 쓰이는 규격용지로 만든 의자로, 2004년 사루비아 다방에서 전시했던 [고독공포를 완화하는 의자]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쌍둥이용 유모차처럼, 자리가 두 개로 배치된 이 전기의자는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실제 사용되었던 사형기구를 모델로 한 것이다. 분열이나 분신의 이미지가 선명한 죽음의 의자에는 자아 반영의 구조를 넘어, 규격화된 단위로만 소통해야하는 상징적 주체의 험난한 여로를 예시한다. 박원주의 전시에서 관객 눈높이에 걸린 다양한 틀들은 잠재적인 거울을 연상시키는데, 현대의 심리학자 자끄 라깡이 이론화했듯, 거울은 조각난 몸을 가상의 총체성으로 구조화하는 기만과 환영의 영역이다. 박원주의 작품은 거울의 공간적인 일체화를 산산조각 낸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닥 면의 틈새들이 이루는 낯선 거울은 ‘나르시시즘적인 환영의 산물인 자아를 그 유리 감옥으로부터 끌어내고자’(보네) 한다. 비워진 거울은 거짓된 객관성을 둘러쓰고 있는 반사상(자기 동일성)을 추방하며, 이질적인 타자를 끌어들인다.

최은경 전은 2000년 이후 9년 동안 제작된 세라믹, 클레이, 스테인레스 스틸, 크리스탈, 대리석 책을 모아 놓아 마치 이색적인 도서 전시장 같다. ‘beyond the book-지(知)에 묻다’라는 부제에 나타나 있듯이, 책으로 상징되는 지식을 물신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려한다. 전자매체의 시대에 인쇄매체가 가지는 물질성은 오랜 시간의 두께가 쌓인 고고학적 대상 같다. 한 시기의 지식과 지혜가 집약된 책은 중세나 르네상스 시기의 채색 사본이나 근대 공방의 역작처럼 그자체로 예술적인 형식을 갖추기도 한다. 특히 크리스탈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져, 투명함과 광휘를 갖춘 최은경의 책들은 장식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면모를 보인다. 지식의 창으로서의 책은 아름답게 투각된 고딕 식 창으로 변주되며,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책들은 거울처럼 자아를 비추기도 한다. [성과 속], [책들] 시리즈에 새겨진 문자들은 책의 본질적 속성에 닿아있다. 정의, 인간과 신의 법칙, 거짓, 율법, 용기, 진실 등과 같은 단어는 상징적 질서의 총아로 책이 수행해 왔던 위치와 역할을 대변한다.
그러나 작가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사회의 근본적 질서를 표상하는 책에 머무르지 않는다. [Books and Animal] 시리즈는 책 위에 야생동물을 배치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야생동물들은 죽고 그 옆에 당당히 서 있었던 인장 같은 형태도 잔해로 변모한다. 클레이로 제작된 이 시리즈에서 펼쳐진 책에는 글자들을 뒤덮는 물질들이 쌓여 있고 흘러내린다. 재료의 물성이 제대로 드러난 이 작품들은 마치 책 자체가 물리화학적 변형을 일으킨 것 같다. 구조적 질서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해체된다. 바닥 면으로 침윤되듯 연출된 대리석 책들은 그 위에 새겨진 진리와 운명을 같이 한다. 이 상징적 질서에는 사회 구조가 그러하듯 가부장적인 질서가 내재해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적지 않은 책들 위에 작가는 ‘Mohter’라는 단어를 새겨 놓았다. 선적 질서를 가지는 문자를 물질적 덩어리로, 시리즈를 통해 구조적 공간을 시간성으로 변형시키는 것에 더하여, 부계적 질서는 모성적 원초성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추상적 분리는 섬세한 차이로 계열화되며, 배타적 차이는 융합되려 한다. 작품 제목에 보이는 ‘붕괴’나 ‘용서’ 같은 개념어는 이러한 대조적인 질서를 암시하고 있다.
기존의 상징적 질서를 부인하는 대안의 질서는 미지의 땅을 향한다. 2008년에 제작된 최근 작품 [Land of Absence] 시리즈는 넉넉한 크기로 대자연의 책을 맘껏 펼쳐 보인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예시하듯, 사회와 문화는 의사소통과 상징적 교환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 상징적 구조를 통해 주체의 위치가 결정된다. 특히 언어의 법칙은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체계이며, 그 이후에도 인간 삶에 결정적인 이 지배적 상징 질서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깊이 아로 새겨져 있다. 상징적 질서는 선험적인 것이며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지만, 이 질서가 가지는 구조적 결정성은 주체를 억압하고 소외시킨다. 최은경의 작품에서 글자를 뭉개버리는 물질, 아버지의 질서를 대신하는 모성의 등장은 의미를 낳은 비의미, 합리를 낳는 비합리에 방점을 찍어준다. 진리의 장소를 차지하는 상징적 질서의 해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클레이나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책들은 상징적 질서의 균열과 틈 사이로 용출되는 잔여들이 드러나며, 대리석 책 겉면에 새겨진 진리들은 바닥으로 침몰하는 중이고, 무늬로 투각된 금속 책들은 기의로부터 떨어져 나온 기표들을 보여준다. 한계까지 밀어 붙여진 상징계에서, 잠재되어 있었지만 명시되지 않았던 무의식, 무의미, 무질서, 욕망, 죽음 등이 또 다른 맥락 속에 전경화 된다.

깨진 거울을 통해 자아의 통일성을 해체시킨 박원주의 작품, 그리고 변형된 책들을 통해 취약해진 상징적 질서의 차원을 드러내고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실재의 범람을 불러일으키는 최은경의 작품은,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라는 세 가지 질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을 설명하려했던 라깡의 이론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통일된 자아와 사고의 주체라는 인간의 위상을 재구조화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에서 라깡이 제기한 욕망의 문제는 핵심적이다. 욕망의 문제는 인간과 동물들 사이의 차이로부터 시작된다. 동물에 비해 불완전하게 태어나는 인간은 타자의 오랜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본능이 아니라, 타자의 인정에 의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박원주와 최은경의 작품에 나타나는 거울이나 책 등이 바로 이 타자들의 영역이며, 원초적인 현실을 넘어 상상과 상징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 즉 인간이 되기 위한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깡의 이론적 구도에서 이 세 가지 차원은 욕구(실재계), 요구(상상계), 욕망(상징계) 등으로 발현된다.
인간은 배고픔과 목마름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에서 직접 취해지기보다 언어의 매개를 거쳐야 한다. 요구가 욕망으로 상징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에서 대상과 욕구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틈이 생긴다. 이 결여를 메꾸기 위해 요구가 생긴다. 라깡의 해설자 페터 비트머가 [욕망의 전복]에서 요약하듯, 요구는 완벽성과 충족을 표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요구는 거울처럼 이상화한다. 욕구가 상징에 의해 소외되고 욕망으로 전환된다면, 상상계는 이 소외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완벽한 충족이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거울상이 예시하듯, 상상계의 통일성 역시 가짜이다. 겉보기의 굳건함과 달리, 기표들의 미끄러짐으로 불안정한 상징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원주는 이상적인 것을 요구하는 거울과 그것의 파국적 상황을, 최은경은 상징적인 언어의 균열에서 출몰하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출전 | 아트 인 컬쳐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