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1,2 관을 가득 메운 석철주의 최근작 중에서 압권은 단연 [신몽유도원도]일 것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원본으로 삼았지만, 그의 그림은 이미 솟아오른 산인지 떨어지는 물인지 광기에 찬 화가의 붓질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을 향하고 있으며, 원작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은 관객을 단번에 그 내부로 끌어들인다. 대형작품들은 시각의 향연을 넘어 몸 전체를 감싸는 장관을 이루며, 고체인지 액체인지 기체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태가 하늘과 땅 사이에 걸쳐 있다. 그는 또한 [매화서옥도], [매화초옥도] 등을 통해 산과 물, 꽃이 있는 이상향 속에 책과 함께 은거하는 삶을 그린다. 비슷한 화면에 색조만 다르게 처리한 시리즈 형식의 작품은 한 작품에서는 농밀한 색의 울림을, 시리즈 형식의 작품 배열을 통해서는 리듬감을 부여한다. 풀꽃들의 이미지를 정사각형의 화면에 색조를 달리해서 시리즈로 제작한 [자연의 기억]은 각자의 색채와 형태로도 아름답지만, 작품의 배열을 관통하는 율동이 있다. 단색조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먹에 본래 잠재되어 있는 수많은 색을 계열화 하여 개별적으로 구체화시킨다.

석철주는 풍경과 초목을 달 항아리와 청화백자 형태의 화면에 담아 넣기도 했는데, 용기(容器) 안에 담겨진 소우주에서는 풀 향기나 바람소리가 새어나올 듯하다. 그의 작품은 동양의 고전이라는 전례가 있지만, 그의 변형은 고전이 출발했던 원초적 자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지 외형의 모방이 아니라, 근본을 소급하는 과정을 통해서 고전은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다. 고전과의 마주함은 그것의 출발이 되었던 본래적 자연을 찾아나서는 과정인 것이다. 이 풍경들은 시원하게 시야를 확보하고 있지만, 장면을 순간적으로 고정하고 재현주체가 대상을 소유하는 서양의 고전적 원근법과 차이가 있으며, 손쉽게 가시적 세계를 포기하고 주관에 매몰되어 기괴한 것을 짜내는데 급급한 ‘현대적’ 방식과도 거리가 있다. 관객의 신체를 감싸 안고, 색채의 향연에 젖어들게 하며, 형태의 리듬에 호소하는 석철주의 작품은 재현의 대상과 주체라는 이분법을 무화하는 또 다른 차원, 모든 실재들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상정한다. 이성이 경계 짓는 것을 끊임없이 허무는 것이 바로 몸이다. 작품들은 몸으로부터 체득한 것이 펼쳐지는 장(場)이 된다. 장은 단지 시각이 주파하는 선적 공간이기 보다는, 청각적 진동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입체적 공간이 된다.
‘에코를 찾아서’의 기획자는 이 전시가 반사를 주제로 한다고 말한다. 7명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메아리는 회화적인 형식을 통해 하나로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분절화 하여 조합하고 이 과정을 복잡화, 가속화시킴으로서 야기된다. 분절적 단위구조의 이합집산이라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각적 메아리는 강렬한 리듬에 방점을 찍는다. 시각적 단위구조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일련의 맥락을 통해 의미를 형성한다. 그것은 기호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대 언어학은 하나의 기호가 하나의 의미를 표시하기 보다는, 다른 기호들 간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정의한다. 기호의 구별과 차이, 교차를 통해서, 요컨대 기호들의 경계에서 의미가 생겨난다. 현대의 예술작품은 이러한 경계를 확장하여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 전시가 컨셉으로 삼은 반사는 시각예술의 오래된 패러다임이었던 반영과는 거리가 있다. 반영은 재현적 질서에 충실한 것이지만, 반사는 끝없는 차이와 반복의 결과물이다. 반영이 시각적이라면, 반사는 청각적이다. 이 전시에서 반사는 청각적 뉘앙스가 있는 반향에 더욱 가까운 것이다.

이소영의 작품 [끊임없이 열리는, 또는 닫히는]은 문, 창문 등이 여러 겹으로 중첩된 공간으로, 책과 옷 같은 실내의 소품들이 중력을 초월하여 떠돈다. 푸른 색조 속에 잠겨있는 가깝고 먼 수직선들은 시각적 건반 또는 섬세한 현들처럼 보인다. 강은구는 스테인레스 스틸 판을 오려서 제철소 같은 산업 단지를 형상화한다. 실루엣으로만 처리된 기계적 외관들은 도시적 리듬을 강조한다. 비정형 형태를 반사면이 있는 사각 공간들에 배치한 이상민의 작품은 얼어붙은 소리처럼 보인다. 그것은 또한 매순간 색을 바꾸며 시간적 리듬을 타기도 한다. 오미현은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아크릴판 위에 수면의 흐름 같은 패턴을 새겨 넣는데, 반투명 재료는 조명과 어우러지면서 스테레오 사운드처럼 공간으로 난반사된다. 이예린은 호수나 지표면에 고인 물에 반사되는 도시 풍경을 포착한다. 세상은 뒤집어져 있지만, 반사면이라는 완충장치로 인해 혼란스럽지 않다. 박진수는 펼쳐진 접힌 면의 한 면을 관객의 스위치 조작에 불빛이 들어오는 판으로 만든다. 갤러리 모퉁이에 설치한 이영호의 작품은 블랙 라이트 속에서 형광색 라인이 드러난다. 소나무 숲 사이를 유영하는 물고기들은 공간적(바다, 육지)이고 시간적(밤, 낮)인 경계를 와해시킨다. 이 전시의 작품들에서 경계의 와해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감각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출전 | 주간한국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