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승 전 (6.11--6.28, 브레인 팩토리)

두 대의 납작한 로봇 청소기가 인쇄물 조각들이 흩어져있는 전시장 바닥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면서 인쇄된 종이들을 흡수하고 뱉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정승은 ‘기계의 진화’라고 붙은 부제 아래, 쓰레기를 흡수하게만 되어 있는 청소기를 그 반대 용도도 포함하는 기술적 장치로 변용시킨다. 입과 항문이 구별되지 않은 원시동물 또는 괴물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식과 설사를 번갈아가며 한다. 이 쌍방향의 역설적인 기계는 대량생산되고 소비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을 표현한다. 사방에 쓰레기처럼 쌓여있는 인쇄물 조각들은 잡지, 신문, 모조지폐 등을 잘라 만든 것이다. 인쇄물은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메카니즘에 의해 생산된 것이고, 작가는 전시장 양 벽에 대형거울을 붙여 복제의 무한성을 다시금 스펙타클하게 보여준다. 그의 작품이 단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넘어 문화비평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은, 인쇄물이 가지는 상징성에 힘입은 바 크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매체계의 변화에 있어 인쇄의 발명과 확산을 중요한 기점으로 놓는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제1 효과는 귀로 들리는 말을 가시적인 단어로 전환하는 것이다. 구술성의 문화에서 이루어졌던 감각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시각이 추출됨으로서, 시각적 관점의 세계 곧 하나의 소실점으로 연결되는 동질적인 공간을 낳았다. 시각이 다른 감각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은 획일적이고 반복 가능한 활자에 의해 책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생겨난 일이다. 단어와 논리를 계량화하는 것은 쓰기의 기계화에서 나타나고 있는 계량화 정신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계량화를 통해 코드화된 세계가 열렸다. 그것은 이전의 청각에 기반 하는 불확실한 세계를 일소하고, 시간의 균질성과 반복성을 강화한다. 정승의 작품에서 서로 반사하는 거울 벽면은 인쇄에 기초한 시각문화의 연속적이고 선형(線形)적인 특성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인쇄와 비슷한 무한 복제 시스템이다. 맥루한은 인쇄본이 사상 최초의 대량 생산물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최초로 획일화된, 그리고 반복해서 생산 가능한 상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쇄로 집약되는 시각성의 문화는 상품이 지배하는 사회의 원형적 모델이 된 것이다. 인쇄물은 최초의 반복가능하며 대량 생산되는 물건으로, 이후 상품문화의 영원한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그것은 인간을 동질화시켜 권력이 집중되게 한다. 동시에 하나의 시각을 가지는 내면적(사적) 인간을 낳았다. 정승의 작품은 인쇄로 상징되는 근대의 문화 혁명과 동질성에 기반 하는 대량생산 및 소비라는 지점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적 질서를 해체하기 위해 하나의 방향성만을 가지는 선형적 질서를 뒤집는다. 정승의 윙윙거리는 로봇은 인쇄에 기반 하는 근대의 선형적 시각문화를 넘어서, 다 방향적인 공간성, 동시성simultaneity이라는 구술과 청각적 양식으로의 회귀를 예시하는 것이다.

출전| 계간 조각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