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호 전 (5.13--5.19, 인사아트센터)
최승호의 조각은 회화적이다. 회화처럼 벽에 거는 작품 뿐 아니라, 3차원 상에 구현된 입체 작품 역시 그러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캔버스 천, 모시, 비닐 같은 부드러운 재료에 박음질이라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평면에 박음질한 오브제들이 붙어있거나 공간에 서있는 식이다. 평면으로 입체를 만들어온 그의 조각은 늘 회화적이었다. 80년대에 얇은 동판을 구기고 두들겨 만든 작품이나 90년대 함석판을 이용한 작품들이 그러하다. 금속판을 잘라 용접이나 리벳을 사용하여 형태를 구성하는 그의 방식은 붓질의 대용품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재현적인 형태와 시적인 서사의 방식도 고수되었다. 잘라 붙이는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은 금속보다 더 용이한 재료의 도입을 불러왔다. 2006년 십여년 만에 열린 개인전 ‘은빛 섬’에서는 금속(알루미늄)이 다시 등장하기는 하였지만, 현저히 회화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스케일과 선명한 색채, 그리고 빈티지 스타일로 처리한 표면 효과 등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의 작품 구성을 보면 거의 회화 전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회화적 측면은 색에서 관철되고 있다. 색색의 비닐과 천, 그리고 캔버스에 직접 물감으로 칠해진 작품에서 색의 비중은 매우 크다. 물감 통에 푹 담근 듯한 작품도 있다. 형태에 비해 색은 감성에 호소한다. 가령 작품 [멍든 가방]은 당장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완벽한 형태를 갖추었지만, 푸른 색채는 작품의 내용을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해 준다. 최승호의 작품은 같은 소재라도 색채처리에 따라 정 반대의 느낌을 준다. 그림일기처럼 주변의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가 색채의 힘에 실려 잔잔한 울림을 자아낸다. [따뜻한 주전자]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노란 색이 알전구와 주전자를 도드라지게 하며, 하얀 막걸리가 가득 담겨 있을 것 같은 입체 작품 [하얀 세상]은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충만함이 연상된다. [날기 위한 고찰]은 녹색 때수건으로 만든 비행기로, 예술적 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마법의 양탄자가 아니라, 흔해 빠진 때수건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비행기와 더불어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 가방과 신발 같은 소재는 여행과 비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비상을 꿈꿀수록 아래로의 중력도 크게 느껴진다. [벽 속의 세상]이나 [차에서 사는 남자]는 고립과 유폐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는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달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내재되어 있다. 박음질된 얼굴이 평면 위에 떠 있는 [누워있는 남자]에서 보이는 익사 직전의 고독과 알록달록한 캔버스 천으로 박음질된 두상의 피에로 같은 모습은 세상과 대면한 작가가 처할 수 있는 양극단의 상황을 표현한다. 색색의 비닐로 박음질한 동물들이 동심에 호소하는 환상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면, 검은 바탕에서 솟아나온 두상이 표현된 [까만 혓바닥]이나 [삐뚤어진 미소]처럼 독설과 냉소가 가득한 작품도 있다. 이렇듯 극단을 넘나드는 감정의 굴곡은 작품에 분명한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출전 | 계간 조각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