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양면성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영역은 예술이다. 예술에서 일어나는 것은 경제적 교환이 아닌, 상징적 교환이다. 상징적 교환은 축적과 잉여를 통해 타자의 억압을 야기하는 경제적 교환과 달리, 아무런 대가 없이 무한정 소모되고 소통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어떤 가치가 생산된다. 그러나 그것은 규칙적인 회로를 순환하지 않기에 불안정하다. 상징적 교환에 몰두하는 비슷한 운명 때문에 젊음은 곧잘 예술과 등치되곤 한다. 그것은 젊음에서나 예술에서나 축복이며 저주였다. 기획자는 이 전시의 부제가 박상륭의 소설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밝힌다. 그것은 다학문적 결과물이라는 연구의 특징을 가짐과 동시에, 젊음과 죽음이라는 두 단어를 중첩시킨다. 죽음은 소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색색깔의 사탕(박준표)과 탑처럼 쌓인 책들(안성열)은 달콤한 군것질부터 정보에 이르는 소비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몸은 상품이나 문화적 항목의 놀이를 통해 재구성된다(강원재, 박준표, 심재경). 기계 에너지를 통해 돌아가는 바람개비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대조시킨 심재경의 작품은 기계 고장과 인공적인 공간(실내)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양쪽 모두 멈춰진 상태로, 그자체가 젊음이 처한 난맥상을 노출한다. 민준일의 애니매이션은 개인에 대한 폭력이 서로의 무관심으로 인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소외된 젊은 초상을 그린다. 넥타이 멘 지식인이 조직의 법칙에 대해 설교하는 영상(민준일, 전수환)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순적 기성관념의 일단을 비춘다. 떼 지어 골목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담은 김태진의 작품은 아무 이유 없이 자체 에너지를 분출하는 자유로운 열정이 젊음의 가장 큰 특징임을 증거 한다.
출전 | 퍼블릭 아트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