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탕에 검은 라인 테이프로 붙여가면서 구축하는 형상들은 기본적으로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로 글을 쓰고 선을 긋는 것과 유사하지만, 선과 선, 선과 형태, 형태와 형태 사이의 불연속성과 간극은 더욱 커진다. 테이프 작업에서의 선은 그리기이면서 지우기이고, 채우기이면서 쌓기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펜 드로잉 작업에서 종종 보이는 머리카락, 알, 씨앗 같은 미시적 차원의 유기적 이미지 대신에, 숲, 하늘, 바람 같은 차원의 자연이 등장하면서, 고물고물한 섬세함 보다는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크지 않은 캔버스에 테이프로 작업한 경우에도, 2008년 작품 [gloom]이나 [put opposite]처럼, 한두 개의 덩어리가 등장하는 식의, 강렬하면서도 단출한 표현방식이 특징적이다. 그것은 무엇인가의 묘사이기 보다는 감정의 응어리 같은 것처럼 보이는데, 수많은 결들로 이루어진 이 응결 물은 또 다른 상태로 변모하기 위해 한쪽부터 풀려 나가는 중이다. 미시적 생물체로 이미지로 가득했던 화면은 이제 실제 공간 차원으로 확장되어 그 내부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현미경 아래의 숨겨진 차원을 엿보게 하기 보다는, 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창문이나 문을 활짝 열어 제친 듯 전윤정의 작품 변화는 획기적이다.

그것은 억압되어 있거나 은폐된 개인감정이나 심리적 차원을 노출(재현, 표현)하는 차원에 한정된 작업을 넘어선다. 이러한 변화는 외진 장소에 있는 스튜디오라는 작업 환경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밤과 낮이 바뀐 생활 속에서 어둠 속에서 응시된 사물은 그림자나 실루엣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대상이랄 수도, 주관적인 환상이라 할 수도 없는 이 모호한 검은 실체들을 검정 종이테이프를 이용한 직선이나 곡선, 연속되거나 단절된 선 등으로 표현된다. 테이프의 선은 다양한 너비 뿐 아니라 두께를 가지고 공간으로 확장된다. 낮에 보면 표면을 도포한 먹색의 형상으로 보이지만, 밤에 조명을 켜고 보면 틈새의 바인더가 드러나 물성이 강조된다. 조건에 따라 회화 같은 환영과 부조 같은 물성이 동시에 감지된다. 라인 테이프는 통상적으로 원근법적인 환영을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공간을 연출하는데 사용되곤 하지만, 전윤정의 경우 자신의 감정의 기복에 따라 형상이 결정되는데 대개 비형상적이다. 흰 바탕에 검은 테이프, 때로는 검은 바탕에 검은 테이프로 이루어지는 작품은 구상적인 단서들이 별로 없다. 작품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없이 수많은 층을 가지며 흰 공간을 뒤덮는 가는 선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 [black rainbow]에 대해, 작가는 ‘드러나지 않는 희망’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흰 공간 부분이 적고 검은 선들은 이리저리 이어져 있기는 하나, 파편적--어떤 전체의 부분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이다. 뭔가를 보듬어 안는 희망이라기보다는 갈기갈기 찢겨진 비극적이고 암울한 상황, 결코 순조롭게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너덜거리는 외곽선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텍스추어를 가지는 블랙 형태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배경이라기보다는 텅 빈 공간이다. 캔버스는 젯소로 밑칠 작업만 하기에 블랙과 화이트는 생경하게 대비된다. 음과 양은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서로의 이질성으로 겉돌면서 불편하게 공존한다. 서로에게 동화되기 보다는 자신의 이질성을 보유하기에, 화면은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이러한 대조를 통해 흰 것은 더욱 희게, 검은 것은 더욱 검게 보인다. 가는 선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진 무정형의 형태는 긴장감으로 충전된다. 검은 막들은 배경이라는 어떤 지지대도 없이 서로를 지지해 줄 동류를 찾아 촉수를 뻗는다. 테이프로 된 드로잉은 ‘중첩된 면을 만들고 공간을 감싸고 보호막을 치며 여러 겹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벽이나 캔버스를 뒤덮는다.

이런저런 충동과 욕망으로 충전된 몸의 궤적들은 몸의 확장으로서의 공간을 생각하게 한다. 캔버스에 테이프 드로잉을 한 작품 [무제]는 검은 마룻바닥 같은, 내부로 들어가는 공간감이 있다. 전시 공간의 벽 모서리를 이용한 작품 [상이한 감정] 또한 그러하다. 위에서 죽죽 내려오는 선들이나 아래에서 올라가는 선들이 교차는 중력의 느낌이나 가상적인 공간감을 형성하지만, 기하학적인 스케일로 조정된 원근법적 공간이 아니다. 작가가 요즘 표현하고 있는 ‘밤, 바다, 심연’처럼 밑도 끝도 없는 시공간이다. 물리적인 벽이나 생물학적인 막이 연상되는 다양한 두께와 외곽선을 가진 검은 형상들은 물질이나 몸의 산물이다. 전윤정은 몸을 써서 무엇인가를 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연원한 선들이 만나면서 몸과 작품은 모두 텍스트가 된다. 작품이나 몸은 수동적인 물질이나 능동적인 주체라는 본질을 가지기 보다는, 무한한 결을 가지는 상호적 텍스트로 열려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물질과 몸은 대상과 주체 간에 설정된 이상적인 거리감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 전윤정의 작품에서 양자는 명료하게 재현되지 않는다. 형상들은 조형적으로 조율되기는 하지만, 체계적인 매개성(원근법이나 구조적인 균형 등) 보다는 몸에서 직접 짜낸 듯 날 것의 느낌이 강하다. 날 것의 생경함은 전윤정의 작품이 발산하는 주요한 감성이다. 물질은 대상화되기를 거부하고, 몸은 주체가 되기를 거부한다. 작업 과정은 결코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단일한 사건이 된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 설정된 이상적 거리가 사라지는 현상은 캔버스를 넘어서 실제 공간을 향하게 했다. 작품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캔버스 대신에 나무판 위에 작업을 한다든가, 작품 자체를 가벽으로 삼아서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자신의 방 안에 들어가듯이 작품 안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몸 내부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차원에서는 안팎의 구별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각도와 방향을 달리하며 펼쳐지는 끝없는 표면들을 조우하게 될 뿐이며, 면들은 어느 지점에서인가 뫼비우스 띠처럼 겹쳐진다. 타인들과의 갈등 때문에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자신 만의 공간을 일구자 싶어 했던 자폐적인 몸짓은 내부 공간을 무한히 주름잡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외부와의 접촉면을 마련한다.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표면에서 안은 곧 밖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은 또 다른 세상과 통하는 미지의 장소가 된다. 그렇게 단절은 또 다른 열림을 위한 매개지대가 되며, 이는 예술가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고전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모호하면서도 힘찬 형태들은 마치 심리 테스트 잉크처럼 펼쳐지면서 관객의 상상력을 능동적으로 일깨운다.
출전 | 금호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워크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