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보는 안목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열사람이 진작에 동의한 작품을 한사람이 위작으로 의심을 품을수도 있다. 열사람이 틀리고 한사람이 맞을수도 있다. 그러나, 박수근의 <빨래터>는 가능한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감정의 결과 진작으로 결론이 난 것을 계속 이의제기를 한데서 문제가 파생된 것이다. 안목감정, 과학감정 등 온갖 감정을 다 거친 것 임에도 계속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 때문에 결과적으로 법정에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이는 전문가의 안목을 불신하는, 나아가서는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단의 풍조에서 생겨난 것으로 어떻게 보면 미술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 풍조의 한 단면을 부각 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근래에 와서 진위시비는 심심치 않게 발생되고 있다. 아직도 마무리되고 있지 못한 ‘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수백 점의 이중섭, 박수근 작품의 위작이 여전히 진작으로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시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단순한 넌센스로 치부해 버리고 말 것인가. 그러기엔 우리 근대미술사에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는 이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지 않는가. 이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이 같은 처사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자신을 모욕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왜 간과하고 있는가. 또 한편 놀라운 것은 포퓰리즘에 편승한 일부 언론의 선동적 사건화는 그것이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문화·예술계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문화·예술계를 건건하게 진작시킬 언론이 오히려 편중된 센세이션만을 쫓는 사례는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한탕주의가 언론에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사태는 우리를 더없이 우울하게 만든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감정위원회가 박수근의 유작전을 재현한 ‘박수근 돌아왔다’(10.17-30, 두가헌)의 전시였다. 살아생전에 제대로 개인전 한번 마련 못했던 작가와, 또 작고한 후 ‘유작전’(1965, 중앙공보관화랑)을 마련하면서 화집을 제대로 내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시점에 실현해 보였다는 사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게 하였다. 유작전에 출품되었던 작품 목록을 바탕으로 해서 당시 남겨진 필름을 엮어 아담한 화집을 만들고, 유작전에 나왔던 작품 중 20여 점을 모아 진열함으로써 당시를 재현시킨 것은 한 작가를 위한, 뒤에 오는 사람들의 진혼과 헌사에 값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간 사람들을 위해 뒤에 오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리는 풍습은 우리고유의 미덕이면서, 지난 몇 년을 두고 시비로 지새운 고인에 대한 결례가 그나마 조금은 메꾸어진 것이라 생각하니 한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