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캔버스 대신에 금속판을, 붓 대신에 금속의 절단과 용접기술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원래 회화를 전공했고 그려왔지만, 1997년경에 금속작업으로 전환하여 요즘 작품에 이르고 있다. 올해 7월 말, 개인전에서 공개한 그의 근작은 스테인레스 스틸 판에 프라즈마 절단, 알곤 용접, 특수 열처리, 그라스 샌딩 등 거친 기술을 활용한 작품으로 가득 채워졌다. 철판에 구멍을 내고 선을 그어 이미지를 완성하는 작업은 통상적인 의미의 그리기와는 다르지만, 컴퓨터나 레이저 기술 등을 중간매개로 출력하는 방식과도 다르다. 우정의 작품은 용접이나 절삭 도구를 손에 직접 쥐고 마주한 철판 위에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어 긋는 일획들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기계를 활용하였지만 똑같은 복제가 가능하지 않고, 회화 같은 우연성과 신체성이 개입되어 있다. 여기에서 기계는 손의 대체가 아닌, 손의 확장이다.
우정의 근작은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몇 년 전 간송미술관에서 본 겸재의 그림들에 충격을 받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였다. 그는 겸재의 그림에서, ‘인간이 어떻게 선을 저렇게 그을 수 있는가!’에 감탄하였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힘찬 선의 흐름에 흥분 되었다’고 말한다. 겸재의 그림 중에서 밑 본으로 삼은 것은 [금강 전도]로, 금강 전도를 구성하는 수많은 필획들을 ‘기계 붓’으로 내리 그었다. 화면의 점은 용접자국으로 쌓아올렸으며, 부벽준 같은 것은 글라인더로 끌어내리는 식이다. 특히 금강산을 이루는 수많은 봉우리를 이루는 선묘들 사이에 있는 찍힌 점묘들은 번역한 방식이 특이하다. 붓질의 중첩에 의한 번지기를 용접의 얼룩자국들이 만들어내는 부조적 효과로 대체한 것이다. 밀도 있는 덩어리를 이루는 얼룩들은 유화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서양화처럼 표면 위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로 번져 들어가 종이와 하나가 된 먹과 같은 위상을 가진다.
얼룩들은 화면을 이루는 금속판 밖으로 부조처럼 도톰하게 튀어나오면서 화면과 리듬감을 부여한다. 그것들은 촉각적인 면을 강조하고, 봉우리를 이루는 선들의 쇄도와 어우러진다. 금속의 가공과정에서 생겨난 물리 화학적인 열기는 자연스럽게 봉우리를 감싸는 운무가 되었다. 봉우리들을 묘사한 선들이 힘찬 형태를 강조한다면, 얼룩들은 회화적 효과를 자아낸다. 금강 전도 전체를 그린 작품 뿐 아니라, 금강내산, 비로봉, 혈망봉 등 산의 부분들을 떼어 개별적 작품으로 완성시킨 것들도 있다. 부분들도 자체의 완결 감을 가짐으로서 완벽한 모델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일부작품은 사각형이 아니라 둥근 판 안에 이미지를 새겨서 소우주적인 느낌을 강화했다. 금강 전도 같은 우리의 고전 뿐 아니라, 마티스의 [춤]같은 서양 근대미술의 명작이나 이응로의 [군무]같은 한국 근대미술의 명작이 인용되는데, 이러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균형감 있는 선들의 유희이다. 금속작업은 회화와 달리 색이 제한된다. 금강산 시리즈를 비롯한 우정의 최근작품에서, 굳이 색이란 것을 찾아본다면 금속 표면의 처리기법에 의해 발색된 것일 뿐이다.
작품 [금강내산]과 [혈망봉]은 [금강전도]와 달리 어두운 바탕이다. 그것은 검게 칠해진 것이 아니라, 금속 표면을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만들어낸 ‘흑착색’이다. 작가의 설명 의하면 흑착색은 ‘금속에 화학적 반응을 주어 피막을 형성하게 하여 금속의 표면을 녹슬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그는 이러한 ‘파커라이징(parkerizing) 기법’을 통해 어둠속에서 빛나는 선묘와 점묘를 만들어 냈다. 묘사적이면서도 구축적 성격이 있는 선묘와 점묘들은 장식성도 겸비하게 된다. 그것은 금강 전도가 잘 디자인된 이미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재확인시킨다. 작품 표면들은 신나게 그어진 스크레치나, 인상파처럼 빛을 머금은 점들로 뒤덮인다. 카오스 같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드러나는 유려한 선의 흐름과 점들은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 놓인 순차적, 혹은 순환적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금속성으로 빛나는 조형적 요소들은 고풍스러운 풍경에 현대성을 부여한다. 흑착색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시리즈로 완성된 작품 군에 또 다른 변주를 추가한다.
우정은 다양한 금속가공 기술을 도입하면서 물질 원래의 색을 살리고자 했다. 그것이 ‘형태와 본질’을 살리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우정의 작품 개념인 ‘형태와 본질Gestalt und Wesen’은 1987년에 개최한 첫 개인전 이래 15회 이상 열린 개인전의 전시제목이기도 했다. 회화를 그릴 때도, 금속 작업으로 바꾸었을 때도 변치 않은 제목이다. 그는 금속 작업 이전 그림을 그릴 때에도 색을 별로 쓰지 않았다. 튜브 물감이 아니라, 본드, 안료, 템페라 등 작가가 직접 만들어 쓴 안료를 사용했다. 이러한 재료는 도상성이 배제된 비구상적인 화면에 물성을 강조한다. 금속작업으로 전환하면서 화면의 물성은 더욱 견고한 것이 되었다. 산수(山水)는 산수자체를 이루는 광물질로 전환되어 보이는 것이다. 견고함과 지속성에 대한 요구는 오랜 세월에도 변치 않는다고 여겨지는 동서고금의 명작들의 선택 뿐 아니라, 작품의 형식을 통해서도 이루고자 한다. 그것은 자연의 지속성이자 작품의 지속성을 향한다. 세잔의 풍경화나 겸재의 산수화 같은 명작에서 추구되는 것이 이러한 이중적 지속성이다.
우정은 열악한 작업실 조건 때문에 자신의 많은 작품들이 훼손당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은 지속성이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싶다는 욕망을 낳았다. 독일어를 병기함으로서 더욱 묵직한 느낌을 주는 ‘형태와 본질’이란 개념은 형이상학을 지탱해주는 이항대립이기 보다는 동어반복적인 것이다. 우정의 작품에서 형태와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일원론자’라고 강조한다. 참조된 원본이 강하게 드러나는 그의 작품은 자연 그자체가 아니라, 모델에서 파생된 실재이다. 이 파생실재는 더 크고 단단하다. 종이나 비단 위에 그려진 원본이 사라졌을 때 이 파생실재는 또 다른 원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미술의 역사는 이어진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의 역사’가 아니라, ‘시뮬라크룸의 역사’일 것이다. 미셀 카미유가 말하듯이, 미술의 역사는 결코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판의 물리적 화학적 변형을 가하여 만들어낸 형과 색은 회화와 조각 사이의 어딘가에 그의 작품을 놓는다. 우정의 근작들은 금속의 가공 기술에 의해 선과 얼룩이 쌓여지고 광이 만들어지는 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현대 금속조각의 방식과 교차된다. 3차원 상에 서있는 통상적인 조각적 과정과 비교하자면 2차원적인 것이지만, 그의 작품은 조각처럼 일체화된 덩어리로서 기능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조각적인 중량감보다는 재현적 환영에 치중한다. 번쩍거리는 반사면들은 작품의 물질적이고 내용적인 중량감을 덜어낸다. 시각적 환영을 야기하면서도 촉각적 물질성을 갖춘 우정의 작품들은 가상적이면서도 실제적이다. 그것은 눈과 손으로 동시에 만져진다. ‘형태와 본질’이라는 표현은 우정의 작품 컨셉이면서 형식이다. 형태는 어떻게 본질이 되는가. 통상적으로 형태는 색채에 비해, 본질은 현상에 비해 더 단단한 지반 위에 놓인 용어이지만, 이 모두는 삶이라는 하나의 흐름에 속해 있다.
앙리 포시옹은 [형태의 삶]에서 삶은 형태이며 형태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포시옹에 의하면 형태를 공간과 재료의 구성construction으로 보아야하며, 건축되거나 조각되거나 그려지거나 새겨지거나 간에 덩어리들 간의 균형, 명암의 변화, 색조, 터치, 얼룩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형태는 공간 속에 있는 정신의 어떤 움직임을 번역하면서 자신이 흘러나온 삶과 뒤섞인다. 매체가 없는 형태는 형태가 아니며 매체는 형태 그 자체이다. 우정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그 자체로서 물질이자, 어떤 움직임인 기법으로 처리된 공간’(포시옹)이다. 우정은 사색에 잠긴 화가라기 보다는, 물질과 방법을 하나로 응결시키는 노동자인 신성한 대장장이나 연금술사에 가깝다. 살아있는 자연을 변환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존재를 보다 완벽한 것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예술가도 공유하는 이상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가을호
이선영
#4609
우정 / 광물질로 회귀한 산수풍경
이선영
2009. 11. 30.
이선영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3059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