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 금속공예 전(11.3--11.8, 하남문화예술회관)
정재홍의 금속공예 전은 기능이나 장식이라는 쓸모와 예술적 상징을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한다. 올해 제작된 작품을 중심으로 20여점이 나온 이번 전시에서 그는 나무를 중심 소재이자 주제로 놓고, 다양한 금속과 기술을 통해 대상과 더불어 마음을 담는 그릇(器)을 만든다. 작가는 ‘나의 작업은 주변의 익숙한 자연에서부터 시작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연, 그 중에서도 나무는 여러 가지 얼굴로 나에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전시 부제인 [元근원]은 원초적인 자연의 이미지인 나무와 무엇인가를 담아내는 근본적인 틀을 중첩 시킨다. 뿌리, 줄기, 가지, 잎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무의 존재 방식은 한 알의 씨앗으로부터 발생적 단계를 거쳐, 한그루의 나무가 되는 시간적인 추이를 공간 속에 응결시킨다. 근원은 시공간적인 차원을 동시에 아우른다. 정재홍의 작품에서 나무는 자연 속에 존재하기도 하고 도시 속에 존재하기도 하며, 사계절의 흐름을 각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공간적 분포를 가진다. 또한 그의 작품은 나무라는 구체적 대상으로부터 추출한 풍경적 요소와 자연과 마주하는 심상이라는 추상적 요소를 연결시킨다.
여러 차원의 연결고리가 가능한 이유는 나무 자체가 가지는 형태적, 상징적인 다산성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중심의 심볼, 죽음과 재생, 우주적 생명력을 상징’ 한다. 지하의 세계와 지상, 그리고 천상이라는 삼계(三界)를 연결하는 구조는 인류 공통의 상징적 체계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는 나무의 보편적 상징체계를 자신의 공예적 방법론에 끌어들인다. 나무가 가지는 따뜻한 느낌과 금속이 가지는 차가움은 일견 조화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엄연히 목공예라는 분야도 있다. 그러나 정재홍의 작품은 독특한 금속재료와 착색방식에 의해 나무의 색을 재현하였다. 나무의 색감은 이질적인 재료를 눈속임하는 표피적 가상을 넘어서, 내부로부터 발색된 듯한 자연스러움을 가진다. 여기에 나무가 가질 수 없는 금속만의 날렵함이 결합된 것이다. 작품들은 동과 은, 그리고 일본의 금속인 쿠로미노와 시부이치가 사용되었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금속판을 일일이 두들겨서 성형했다. 작품의 근본을 이루는 기(器)란 단지 물리적 대상인 그릇을 넘어서, 작가와 관객의 마음을 담고자 한다. 그릇을 이루는 둥근 기본 형태는 나무에게도 해당된다.

작품[器]는 중심으로부터 가장자리로 뻗어 나오는 리드미컬한 표면이 특징이다. 그것은 나무의 성장 방식이나 개화의 방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품 [화병]은 나무의 생가지가 잘린 듯한 형상으로, 단면의 빈 공간이 수용기가 된다. 순간을 영원으로 고정시킨 예술작품은 유기체에서 분리될 당시의 팽팽한 내부 압력을 보존한다. 정재홍의 작품은 꽃꽂이, 물을 담아 수목을 올릴 수 있는 판형 그릇 등, 일련의 기능성을 가진다. 작품 [가을 나무 아래서]에서는 출렁 거리는 가장자리 외곽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쐐기 같은 형태는 숯이 되거나 드러난 나이테의 갈라진 부분을 상감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심부에 출렁이는 금속선들은 줄기의 반경이 커지는 성장의 율동이나 수분 및 양분의 흐름을 보여준다. 둥근 외곽선의 변주는 물의 이미지로 전환되기도 한다. 작품 [달천 강에 비치는 나무]는 출렁거리는 그릇의 가장자리 중심에 둥근 달 같은 조각이 얹혀 있다. 나무의 부속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낙엽은 군집의 형태로 배열된다. 작품 [월악산 낙엽]은 잘려진 나무 둥치 위에 둥글게 말린 기의 형태들이 다채롭고 율동감이 있다. 명함 같은 것을 꽂을 수도 있는 장식적 기능성을 가지는 이 작품은 마치 다양한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합창 하는 듯하다.
나무, 물, 그릇의 외곽선과 중첩될 수 있는 둥근 외곽선에 수직이나 수평으로 새겨진 띠들은 자연이나 문명에서 발견될 수 있는 선적 요소이다. 작품 [시냇가에 앉아]에서 둥근 그릇 안에 마련된 자리는 수평으로 흐르는 물의 흐름을 관조하는 자리이다. 작품 [빌딩 사이]에서 기하학적인 수직선들이 들어가고, 가운데는 나뭇가지 형상이 비치는 작품은 자신의 작품들이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자연과 같은 휴식공간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나무의 형태와 상징으로부터 뻗어나간 상상은 나무처럼 다산성이 있다. 식물은 지구 위의 최초의 생물체로, 산소를 내뿜어 그 뒤의 생물체들을 가능하게 했고, 땅 속에 깊이 뿌리내리며 하늘의 빛을 고정시키는 나무는 인류의 상상력을 발아시키고 개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형태상으로도 나무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으로, 어느 부분을 발췌하고 변형해도 의미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정재홍의 작품은 나무의 고정된 이미지나 고착된 상징을 벗어나려 한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나무에 내재된 생명의 움직임을 가시화하려는 노력이다.

가령 정재홍은 지름이 두꺼워지는 생장의 과정을 곡선의 흐름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나무의 외면적인 재현이 아니라, 구조적인 재현을 통해 가능했다. 바깥을 향해 복잡하게 뻗은 가지와 뿌리의 분기 된 선들은 주변의 무기물을 최대한 흡수하여 유기물로 만드는 기관의 구조적 동형성을 보여준다. 가령 뿌리와 가지가 뒤집혀 배치된 작품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으나, 동일한 기능의 수행을 통해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양자의 공통점을 드러낸다. 정재홍의 작품은 나무처럼 물질의 모형이자 관념의 모형이라는 점에서, 양자 간에 존재하는 경이로운 상동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생명의 특징인 과정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자족적인 완결성을 가진다. 그것은 일생동안 자라는 나무가 단단한 목질조직 내부에 부드럽고 섬세한 도관들을 숨기고 있는 것과 같다. 동체를 대지 위에 우뚝 세우기 위해 발달시킨 나무의 지지조직 내부에는 부름켜가 매해 생장의 고리를 추가한다. 그는 실제 나이테가 보이는 나무 조각을 작품에 붙여놓기도 했다. 산 조직과 죽은 조직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낙엽이 진후에도 매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있는 정재홍의 작품은 기(器)의 선을 따라 삶과 죽음의 원환을 돌고 있다.
출전-2009 경기문화재단 시각 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