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남의 ‘신령한 숲의 순례자’전은 2천년대 초반 이래 그의 작품에 나타났던 여러 도상과 스타일들이 다시 종합된다. 초식동물 위에 앉아 있는 목자의 다리, 핏빛으로 물든 소의 꼬리, 죽어가는 오리 등은 눈에 익다. 녹색 습지에 뒷다리를 담그고 있는 하얀 소의 뒷태는 일견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꼬리 끝은 핏빛을 내비치며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두운 공간을 가로질러 아래로 내리꽂힌 새, 심연 속에 적나라하게 던져진 오리의 사체 등은 좀 더 직접적으로 죽음을 지시하는 도상이다. 하얀 암소 위에 올라앉은 병약한 다리는 비록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할지라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져 있음을 예시한다. 동물과 인간의 생태적 환경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은 뒤엉킨 나무숲으로 나타난다. 나무숲은 빛과 바람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밀도를 가진 듯하다. 본래의 형태를 잃고 녹즙처럼 진한 밀도로 변해 버린 나무 숲 아래에는 늪처럼 보이는 습지가 있는데, 그것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 한다기보다는 숲과 구별 불가능할 정도로 하나로 얽혀 있다.

습지 위에 모호하게 떠 있는 밝은 형상은 침수의 느낌을 준다. 숲의 풍경은 다양한 계절의 여운이 있는 시리즈로 제작되어 나란히 전시되었다. 김성남의 작품에서 숲은 싱싱한 초목과 지저귀는 새로 가득 한 활기 찬 모습이 아니라, 끈적한 늪으로 바뀌어 끈끈이처럼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끌어들인다. 어쩌면 그것은 자연이 야기한 것이라 할 수 없는 폭력의 희생물들을 흡수하여 또 다른 자연으로 재탄생 시키는 중인지도 모른다. 습지는 자연을 재순환시키는 모태처럼 보인다. 새로운 삶을 위한 죽음이라 할지라도 죽음은 죽음이고 비극이다. 살아있거나 죽은, 죽어가는 유기체들을 지상에 묶어두는 정도가 아니라, 땅 속으로 깊이 끌어당기는 강한 중력의 힘은 김성남의 그림을 묵직한 분위기로 이끈다. 문명이 아닌 자연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작품 전체를 휩싸고 있는 비극적 정조는 자연 역시 더 이상 문명의 도피처가 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오히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문명의 모순들이 집약된 장이다. 동물들은 위기에 처해진 모든 실존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모순을 치유하는 방식에 있어 김성남은 다소간 초월적인 자세를 보인다. 전시 부제인 ‘신령한 숲의 순례자’라는 표현 자체가 그러하다. 그것은 지글지글 끓는 듯한 붓질에 내재된 강렬한 현재성과 비교하면 다소간 생뚱맞다. 그러나 그의 그림 자체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함을 통해 ‘초월적이기만 한’ 추상적 스타일은 벗어나 있다. 김성남의 그림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은 희생을 상징했다. 짙은 배경으로부터 두드러진 형상으로 나타나는 밝은 형태들은 희생제의의 극적인 장면으로 변화시킨다. 다수를 대신해 죽어가는 순결한 희생양을 통해 오염된 사회가 정화된다는 신화가 아직도 사회를 치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희생양의 메커니즘은 사회가 있는 어디에나 내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에서 참혹한 유혈극을 동반하는 희생제의는 모든 체계의 설립에 감추어진 진실이라고 말한다. 체계에 위기의식이 번지면, 집단적 박해가 행해진다. 집단의 욕구와 불만과 불안을 희생물에 쏟음으로 대리만족을 하게 되는 것이다.
희생양이란 말은 희생물의 무고함과 함께 희생물에 대한 집단 폭력의 집중, 그리고 이 집중의 결과를 동시에 가리킨다. 그것은 모든 체계의 신화에 적용 될 수 있는 해석의 유형이다. 폭력으로 희생된 것은 체계를 정화하고 다시금 신성시 된다. 전시 부제에 포함된 ‘신령한 숲’이란 핏빛 희생이 치루어진 잔혹한 터전, 그래서 다시금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게 된 처녀지와 비유된다. 체계를 위해 희생물이 필요했던 다수들은 자신은 희생에서 면제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부당한 폭력은 언제든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더 이상 착취할 자연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늘날 희생은 다시 인간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그의 작품에서 소의 가는 다리는 인간의 병약한 다리와 매우 닮았다. 가축의 등위에 탄 인간은 위기에 처한 동물과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자연의 대상화를 벗어나 자연적 과정 그 자체를 표현하는 진한 붓놀림은 예술 또한 자연의 반열에 놓는다. 작품을 통해 치유를 꾀하는 김성남의 태도는 화가들이 가지는 우직한 희망을 대변하고 있다.
출전-2009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