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전기 나갔을 때 대처방안 전| (10.22--11.19, 스페이스 캔)

지금은 기술이 발달되어서, 더 정확히는 전기가 나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한 전기 에너지에의 과도한 의존도로 인해 정전이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70-80년대만 해도 정전이 자주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양초는 치약만큼이나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시장동네에 살았던 필자는 정전이 되면 깜깜해진 가게마다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앞뒤로 빼곡이 쌓여있는 물건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여 신이 나곤 했다. 색색의 옷감부터 갖가지 모양의 옹기그릇까지 시장의 다양한 물건들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커다란 그림자와 어우러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곤 했다. 그리고 군부 출신들이 장기간 통치했던 냉전국가였던 탓에 등화관제 훈련이란 것도 있었다. 한날한시에 일제히 불을 끄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불빛이 새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해야 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졌던 별빛과 은하수도 잊을 수 없다. 시장의 풍경이나 별들은 늘 내 곁에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전 같은 우연한 사고나 집단 동원훈련에서와 같은 자발적 정전은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현실의 아름다움을 갑자기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현실을 낯설게 하는 예술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 ‘전기가 나갔을 때 대처방안’ 전은 ‘만약 00이 없다면...’이란 가정법으로, 전기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정보화 시대에 현실을 낯설게 한다. 소격만 가지고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기에, 전기 에너지로 구동되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미디어 아트’ 전이라는 형식을 취했다. 정보과학, 정보경제, 정보사회의 시대에는 현실이 정보로 대체될 정도이기 때문에, 미디어는 현실을 소격하는 예술적 기능을 수행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작품들은 하이테크 보다는 로우테크로 채워졌지만, 적어도 작가나 기획자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전시는 비엔날레 급 전시의 상시화로, 국내외 작가들이 다수 동원되는 극장식 스펙터클로 채워지는 미디어 아트에 비해 알차 보인다. 그것은 ‘전기’와 ‘나갔을 때’라는 두 가지 상황을 병렬하면서 정보와 현실 사이에 설정된 경계를 넘나든다.





미디어 관련 전시들이 현실보다는 기술에 방점을 찍으면서 불완전한 반쪽을 보여준다면, 이 전시는 ‘전기가 꺼진’ 상황을 가정함으로서 현실과 감성에도 주목한다. 전기가 나간다면 전류로 변환되어 저장되고 검색될 수 있는 정보는 잡음(noise)이나 비(非)의미로 나타날 것이다. 이 전시는 잡음에서 또 다른 정보를, 비의미에서 의미를 길어내고자 한다. 마크 포스터는 [뉴미디어의 철학]에서 정보양식으로 귀결되는 의사소통의 역사를 다룬바 있다. 그에 의하면 대면적이고 구어적으로 매개된 의사소통(상징적 유사물)에서 인쇄를 매개로해서 글로 씌여진 의사소통(기호의 재현)을 거쳐, 전자적으로 매개된 의사소통(정보적 시뮬레이션)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단계는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하듯이 이전단계를 포함한다. 때문에 전기가 나갔을 때의 상황은 전기가 들어올 때의 상황까지 포함하며, 그 역도 진실이다. 현실, 또는 정보에만 방점이 찍혀져 각자의 자기지시적인 측면이 아니라, 관계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아람 바톨은 촛불의 에너지로 점등하는 스크린을 보여준다. 격자로 된 스크린은 꺼짐과 켜짐이라는 물리적인 방식을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신호로 번역한다. 정흥섭은 가상공간 속 물체의 단층들을 종이 위에 프린트하여 [디지털 화석]을 만들었다. 코드로 존재하는 가상공간 속 대상에, 현실의 사물 같은 겹을 부여하였다. 헤르빅 바이저는 실리콘이나 유리섬유 등 컴퓨터를 이루는 물리적 재료들에 전기 자극을 가해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불확정적인 색채와 형태로 채워진 추상적 패턴을 만든다. 박준범은 물리적 힘이 가해진 자전거나 그네의 움직임을 재편집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로 속도의 개념을 부각시킨다. 그의 또 다른 작품에서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서로 아무 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 연출된다.

아마도 그들의 손에 각자의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을 장면이다. 작가는 아이스크림 먹듯이 정보를 흡수하고 즐기는 와중에, 정작 바로 옆 인간들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는 상황을 강조한다. 디지털 화면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기 위해서 자가발전기의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 전병삼의 작품은 시시각각으로 충전되는 관객의 운동 에너지 량에 따라 정보 전달의 활성도가 결정된다. 그것은 클릭이라는 가벼운 손가락질만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정보기술 사회에 팽배한 가정에 한계가 있음을 예시한다. 자원과 에너지 집중도를 높이는 정보화가 인간에게 좀 더 많은 시공간적 여유나 평등함을 제공하지 못하는 엄연한 상황에서, 가끔 전기가 나가주는 것은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성찰을 야기하는 우연한 사건사고와 닮았다.

출전-미술세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