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포자 시리즈는 뭔지 특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실루엣과 덥수룩하게 덮인 털의 형상으로 기이함을 자아낸다. 인간은 자기 몸을 기준으로 정상성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기에, 관객은 이상함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수수께끼 같은 형상은 자신의 뒷모습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뒷모습은 가장 멀리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물리학적 가설에 의하면 유한하면서도 무한한(경계가 없는), 굽어 있는 우주 공간에서 세상의 끝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다면 거기에 비춰지는 것은 바로 세상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의 뒤통수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달의 뒷면처럼, 태양의 흑점처럼, 머나 먼 혹성처럼, 블랙홀처럼 텅 빈 공간에 놓여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동글동글하니 여성적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포자 시리즈는 대부분 울뚝불뚝한 거친 형태로, 관조적으로 보여지기 보다는 관객 앞에 던져진 느낌을 준다. 하얀 캔버스에서 바로 돋아난 듯한 괴상한 털 뭉치는 고립된 섬처럼 그리로 순조롭게 건너갈 방법이 없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매개 없는, 디딤대 없는 도약이 필요하다. 바탕은 무색무미무취의 중성적 공간으로, 희박한 공기와 썰렁함이 특징이다. 거기 한 가운데 자리한 밀도 있는 형상은 스스로를 녹이거나 태워서 주변을 변형시킨다. 비형태적 형태를 이루는 덩어리는 끊임없이 변모하는 촉수를 내어 외계로 뻗어나가고 철수하면서 나름대로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나 이 경계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다. 반면, 들추면 뭐가 나올지 모르는 털로 뒤덮인 형태는 나풀거리며 변신한다. 그것은 형태라기보다는 형태화 과정을 보여준다. 머리로부터 출발한 이 형상은 갈라지고 모이는 부분은 확실하지만, 경계면들은 무한대의 변주가 가능하다. 이주형의 작품은 마치 얼룩으로 하는 심리 테스트처럼 꼬리를 무는 연상의 사슬을 낳는다. 그것은 마치 다양한 구름의 형태들이 하늘의 표정을 만들듯이 수많은 상상을 야기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이 낯선 타자의 짝이 될 법한 동일자(자아)의 얼굴이다. 처음도 끝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또는 빈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밀봉된 외피는 상징적 주체라고도 심리적 자아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공간적 좌표계에 속해있다.

사실, 뒷통수고 앞통수고 간에 얼굴이란 낯선 것이다. 익숙한 얼굴과 확고한 정체성은 사회적 요구가 관철된 결과물일 뿐이다. 이 가상의 거울을 깰 때, 자아는 낯선 타자로 회귀한다. 어두운 형태 내부에 후벼 파여진 듯, 훼손된 듯 걸쳐있는 심연은 조각난 거울 속에 비추어진 분열된 몸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얼굴을 이루는 기관들은 환상에 의해 도려내진다. 그것은 무엇인가의 뒷모습이라기보다는 부재와 흔적, 곧 말해질 수도 보여 질 수도 없는 타자의 얼굴이다. 이주형의 작품에는 상상 특유의 아늑함이나 보호막 같은 것이 없다. 이러한 단일한 차원으로 인해, 상상은 날개를 펴거나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만약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면, 그 자체가 날개이자 꽃이자 열매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유기적 흐름은 예기치 못한 균열들에 의해 급작스럽게 단절되곤 한다. 유기적 총체성을 결여한 이 낯선 육체의 파편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상이한 것들이 결합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것이 체계적으로 어우러지는 총체적인 것이 아니라, 무성생식을 하는 포자처럼 단일하다. 단일하면서도 변화무쌍한 형태는 머리털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 깊은 무의식으로 파고든다. 머리털로 가정된, 무수하게 그어지는 선들은 궤적이면서 형태를 이룬다. 그것은 죽음충동과 쾌락원리를 연결시키는 반복에 해당된다. 그자체가 경계이자 경계를 넘어서는 머리털들은 절제와 중용이란 것을 모른다. 이러한 과도함과 넘침을 통해 공포와 열락이라는 가능성의 극단이 만난다. 절단된 머리통을 떠오르게 하는 형상은 이성을 넘어 한계에서의 느낌, 곧 무감각에 닿아있다. 이주형에게 끝없이 자라는 머리털은 공포의 상징이다. 공포와 털을 연결시키는 현상으로 소름끼침이 있다. 상상처럼 공포는, 영장류 중에서 유일하게 긴 머리를 가지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기계 반사적 본능을 벗어나 있는 불확실한 인간은 상상을 한다. 상상은 자유다. 그러나 자유는 상상이 아니다. 상상의 자유를 구가하는 것은 문화에 불과하지만, 자유를 실현하는 것은 예술의 몫이다.

출전: 서교육십2010-상상의 아카이브, 120개의 시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