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 문화를 넘어서 전 (1.29--2.11, 스페이스 캔)
임상빈 전 (1. 28--2.25, PKM 트리니티 갤러리)

5명의 작가가 참여한 ‘표면문화를 넘어서’와 임상빈의 ‘Encounter’전은 1970년 생 이후--작가들의 연령 분포도는 70년에서 76년생에 이른다.--의 세대들이 정보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통해 재구축한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대부분 90년대에 미술 대학을 다녔을 그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미술을 배움과 동시에, 퍼스널 컴퓨터를 매개로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새로운 기술언어를 자체적으로 습득한 세대이다. 그들에게 인터넷을 비롯한 전자매체 문화는 지금처럼 대중화와 상품화를 통해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은 아니었고, 새로운 미술을 위한 실험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전의 아나로그 세대와, 디지털 방식에 완전히 적응되어 있는 다음 세대와도 다른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이 있다. 빠르게 진화 중인 매체계의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차원이 맞부딪히는 경계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 세대들의 작품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스페이스 캔에서 열린 전시는, 제목에 나타난 바와 같이 우리가 지양해야할 것으로 ‘표면문화’를 지목한다. 문화의 표면성은 사물과 연결된 기호를 더욱 가벼운 기표로 변화시키는 대중 매체에서 두드러진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 우세종으로 규정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깊이의 상실, 즉 표면성이다. 그런데 ‘표면문화’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비판보다는 그 언어를 인식하고 내부로부터 전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전시에 초대된 5명의 작가들은 이후의 디지털 세대들과 달리, 또 다른 현실에 도달하기 위해 활용한 언어의 사다리를 치우지 않는다. 이들에게 현실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지만, 그 차이는 보존된다. 현실은 코드와 동일시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 현실은 여전히 미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 도달하거나 그것을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전자 코드를 비롯한 언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은 인정된다. 노재운이 보여주는 5분 분량의 동영상은 다양한 영화들의 장면들(또는 한 영화에서 작가가 임의적으로 선택한 장면들)을 편집하여 또 다른 영화를 만든 것이다. 각기 다른 맥락에서 발췌한 것들이지만, 마치 한 작품처럼 분위기의 통일성을 꾀한다. 단편적 화면에 강력한 맥락을 부여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나래이션이다. 그것은 허구에서 창출된 또 다른 허구이지만, 인간의 원초적 무의식에 호소하는 음성 언어가 덧입혀지면서 잘 연출된 허구, 즉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정정주는 자기로 만든 고건물 미니어쳐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몸과 모형의 공간이 일체가 된 화면을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게 한다. 서로 떨어진 현실들이 이음매 없이 통합되는 것은 가상적 차원이다.

김태은의 작품은 거울 같은 표면이 풍경을 비추는데,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반사면은 부분적으로 다른 장면들이 반영된다. 그는 통합된 상을 반영하는 재현의 도구로서의 거울, 그리고 그것에 가정된 동질성에 이질성을 삽입하고, 주어진 것을 피동적으로 비추는 정적인 대상을 불안정한 흐름으로 전치시킨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시나리오에 의거하여 촬영된 장면과 같은 장소에서 찍은 현실적 장면들이 경첩으로 연결된 두 모니터에서 동시에 나오는 것이다. 구성된 현실과 반영된 현실은 비슷한 시각 상을 이루는데, 그것은 일견 반대되어 보이는 반영과 구성의 과정이 서로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듯하다. 류비호는 다양한 상품들로 쌓은 탑과 그 옆에 쌍둥이 탑처럼 똑같이 세워진 구조물을 포장지와 노끈으로 가려놓는다. 그는 짝패적 존재를 통해서 표면에 둘러싸인 내용물의 실체를 폭로한다. 현실을 구성하는 매체의 언어,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결국 상품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서, 전자매체 시대의 강박관념인 소통지상주의가 유통의 결정적인 통로가 됨을 예시한다. 박상현의 작품 [Text Spectrum]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기하학적 패턴들 사이로 글자들이 끝없이 생성되고 이동한다. 패턴과 글자는 뒤섞여 역동적이면서 심미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매순간 생성되고 소멸하는 수많은 코드의 흐름 자체가 바로 현실이 된다.




이 전시에서 전자식 매개를 거치며 정보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사물(simulacra)들은 단지 혼란스러운 기표의 흐름을 넘어선다. ‘표면문화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피상적인 표면 아래에 있을지 모르는 유일한 실재나 우연적인 현상을 질서화 하는 선험적 관념을 가정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표면의 운동으로 지배적 표면을 상대화하는데 있다. 물질이나 육체 같은 가장 원초적인 현실조차도 표면이라는 매개 없이 접촉할 길은 없기 때문이다. 지양되지 못한 표면은 현실이나 물질 못지않게 맹목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실질적인 전복도 새로운 차원도 부가할 수 없다. 정보혁명 이전에 이미 일어났던 존재와 사고(라깡), 말과 사물(푸코) 사이에 벌어진 괴리는, 구별되는 두 차원을 동시에 개입시키는 전략, 요컨대 실체적 사고보다는 관계적 사고를 요구한다. 언어를 다루는 예술이 관계적 사고를 가동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 설정이다. 언어학을 창시한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가 결합된 기호의 존재를 가정했지만, 이후 라깡으로 대변되는 후기구조주의의 흐름은 기호의 고정성을 부정한다. 기의는 기표아래서 끊임없이 미끌어지기 때문에 의미를 고정시키기 힘들다. 기호는 기표의 운동으로부터 연유한 것으로 보는 라깡은 대상을 지시하는 기의 보다는, 언어의 사슬을 지칭하는 기표를 더 중요시 했다. 개별적인 기표가 아니라, 기표들 간의 관련 속에서 의미가 파생된다는 생각은, 또 다른 현실의 거처로 기표와 기표 사이의 공간을 주목하게 한다. 기표들이 기표들을 가리킬 뿐인 이러한 결합 방식에는 단지 소외와 허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창조성과 개방성’(촘스키)을 야기한다. 현대 미술가들은 자연적 물질과 다름없는 쇄도하는 기표 덩어리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차이들의 구조를 더욱 세밀히 함으로서 정보화 시대의 현실을 구축하려 한다.




임상빈의 ‘Encounter’ 전은 전시 부제에 내포된 바와 같이 만남과 관계, 그리고 충돌을 주제로 한다. 그는 뉴욕과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풍경을 찍은 후 디지털 과정을 통해 화면을 재구성한다. 컴퓨터가 매개가 되지만, 수백 장의 사진을 재료로 한 조합 과정에서 어떠한 기계적 자동성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 복잡한 구성 과정은 차라리 사진으로 또 다른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작품의 근본적 원동력은 기계가 아닌, 작가의 머릿 속 구상 또는 이전의 회화적 감각에서 나온다. 전시에 나온 12개의 디지털 프린트 작품은 서울의 청계천, 덕수궁, 뉴욕의 풍경들이 변형된 채 등장한다. 전시장의 하얀 벽면을 작품에 끌어들인 채, 2면 혹은 3면으로 나뉜 구조는 빽빽한 도시풍경에 여백을 주고, 끊어지면서도 이어지는 시원한 파노라마로 펼쳐놓는다. 그가 거대 도시에서 추출한 요소들로 재구성한 장면에서 자연은 도시적 삶의 숨통을 틔워주는 허파 같은 구실을 한다. 그의 작품에서 도시는 실제보다 더욱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고, 자연에 할애한 비중이나 공간도 실제보다 광활하다. 같은 크기로 이어진 3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Central Park-NY 1]은 빽빽한 빌딩 숲 앞에 조성된 거대한 호수에서 사람들이 물놀이를 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뱃놀이를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놀기에 다소간 좁아 보이기는 하지만, 편리한 도시생활과 여가를 동시에 누리기 위해 자연을 소유하려는 현대인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서울의 풍경을 변조한 작품 역시 녹지에 할애된 면적이 넓다. 화면 깊숙이 또는 옆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풍경은 거대 도시의 어떠한 모순과 갈등도 덮을 수 있을 만큼 잘 조율된다. 한국의 풍경에서는 궁전이나 절 같이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건축들이 도심 속 여백을 마련한다. 작품 [Seoul-New York]은 같은 크기의 삼면구조로, 가운데 패널에 나무아래 휴식하는 사람을 배치하고, 녹지, 물, 도시풍경, 그리고 하늘을 차례로 펼쳐놓는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도시를 합성하여, 인공과 자연을 아우르며 한 시야로 수렴되는 장면에서 어떤 어색한 봉합선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가능한 이유는 두 거대 도시가 합성되기 전에 이미 충분히 닮아있으며, 도시의 부속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자연적 풍경 또한 마찬가지라는데 있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포함한 도시적 현실은 세계화 시대의 공통적 코드로 환원되고 있으며, 이미 대중의 눈은 영화처럼 이곳과 저곳의 차이를 초월한 중첩된 현실에 익숙하다. 현재의 기술문화가 이전 단계를 개체 발생적으로 포함하고 있듯이, 임상빈은 3면(triptych) 종교화를 비롯한 고전적 방식도 적극 끌어들인다. 레지스 드브레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에서 성상에서 예술을 거쳐 영상에 이르는 매체의 변화와 그와 연관된 재현 기술의 변화를 설명한 바 있다. 임상빈의 작품은 고대의 성상같은 이상향이 현전하는가 하면, 펼쳐진 세계를 일괄하는 주체라는 근대적 예술의 관점이 있고, 코드화 된 장면을 시뮬레이션 하는 현대 영상의 논리가 내재해 있다. 그것은 가상현실을 넘어, 실제 상황에 정보를 중첩시키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대중들의 손바닥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시대가 요구하는 복합적 현실을 지향한다.

출전; 아트 인 컬처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