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용산 미스테리]에서 투신하는 사람 앞에 펼쳐진 붉은 색 평면은 붉은 하늘, 또는 이글거리는 용암처럼 보인다. 여기에 떠 있는 작은 보트나 비행기 그림자는 침몰과 공습이라는 은유가 있다. 작품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붉은 색의 배치는 이전의 작품에서 푸른색이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하다. 푸른색이 가졌던 고요함과 신비는 핏빛 투쟁과 이글거리는 갈등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이전에 멀리 보였던 경찰차나 구급차 등은 화면 전면에 배치되어 폭력적 현실을 고발한다. 그러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경찰차나 부상을 치유해야 하는 구급차는 약간의 변형을 통하여, 혼란의 원인이자 그것의 잘못된 치유책으로 반전된다. 준 전시상태에 비견될 만한 폭력적 장면이나 파국적 사건이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홍원석의 작품은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원인과 실체를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들은 뚜렷한 해답과 희망이 없는 묵시록적 풍경들에 가깝다.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또한 암울하다. 작품 [그랑 블루]는 동명의 영화에서 참조한 것으로, 멀리서 보면 돌고래와 춤추는 친구로 보이지만, 함께 솟구쳐 오른 돌고래는 인간에게 허를 찔리고 있다.

옅게 처리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이 은밀한 범죄의 목격자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어둠을 가르는 환상적 불빛은 인간의 어두움을 고발하는 탐조등으로 변모한다. 내용물이 낭만적이든, 현실 고발적이든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오르는 빛의 형상이라는 구조는 영화적이다. 이제 30세인 화가에게 동시대의 유력한 매체의 영향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그는 매우 진지한 젊은 작가이기도 해서, 전자매체 시대에 감각적으로 흘러가는 코드를 사회적인 서사로 엮어보려고 한다. 그는 새로운 감각의 민중미술을 그려보겠다는 생각도 밝힌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잘 그리니까 가능할 법도 하다. 그러나 민중미술이 발원했던 1980년대에 태어난 작가에게, 그 시대의 미술은 위대한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가질 뿐이다. 물론 이러한 한계는 또 다른 특이점이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민중미술의 대표적 화가 중의 한명인 황재형을 오마주한 한 작품에서, 평화로운 논밭 풍경에 갑자기 등장하는 전투기들은 위로부터의 기계적인 힘에 의해 유린당하는 기층의 현실--억압받는 민중, 착취되는 자연, 단절된 전통 등--이라는 서사적 구조를 취한다. 그런데 이 모든 사태를 관찰하는 시점에 헤드라이트가 켜진 자동차가 있는 점이 흥미롭다.
홍원석의 작품에서 자동차는 주체의 상징적 대체물처럼 작동하면서, 주변세계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하곤 했다. 장면은 마치 자동차용 극장처럼, 공간 전체가 스크린으로 펼쳐진다. 차창 바깥의 공간에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그 어떤 대재난에 관한 것일지라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다. 안전한 거리감의 확보는 재난의 강도가 커질수록 숭고해진다. 개인에서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변신에는 낭만적 숭고라는 연속성이 내재해 있다. 그것은 자기모순이라기보다는 사회비판적이고 현실개혁적인 예술이 가지는 이상주의, 또는 관념주의적인 측면이다. 물론 사회적 이상주의는 시효가 끝난 것이 아니다. 발 빠른 청산에의 움직임과 달리, 그것은 돈의 리얼리즘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지배적 질서와의 거리감을 가질 수 없는 예술은 무가치하다. 동일성의 질서와 거리를 두고, 거기에 차이와 간격을 끼워 넣는 작업은 우회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비판적이다. 여기에 상상의 역할이 있다. 그러나 홍원석은 상상적 해결책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상상으로 도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점은 중요하다. 가령 광기로 죽은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을 인용한 작품 [비행기가 나는 밀밭]이 그렇다.

지평선 위에서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가 비행기 떼로 변모한 장면에서 밀밭은 노란 물감으로 줄줄 흘러내린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 서 있는 푸른 자동차는 악몽에서 탈주하기에 턱없이 취약해 보인다. 작품 [도망자]에서도 하늘, 땅, 물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대재앙으로부터 탈주하려 속력을 내는 오토바이는 이미 지진으로 갈라진 길 위에서 곧 전복될 듯 위태롭다. 현실과 상상은 한 몸의 두 얼굴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하든 강도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항대립 속의 선택은 선명성을 보장하기 보다는, 반쪽의 진실일 뿐이며, 곧 일방적으로 배제시킨 다른 쪽에 의해 침식되어 현실과 어정쩡한 균형을 맞추는데 머문다. 크고 작은 타협들이 무덤 같이 쌓인 현실 속에서, 예술의 중요한 주제이자 돌파구는 상상보다 더한 현실, 현실보다 더한 상상이었다. 홍원석의 최근 작품에 내재된 공포는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실제의 폭력이기도 하지만, 프로이트가 말한 불안, 즉 외상(trauma)에 대한 예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완화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 외상의 반복이다. 요컨대 그의 작품에 깔린 불안은 위험에 대한 상상적 반응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상상은 모순적 현실의 한 켠에 자리 잡은 자족적 세계를 넘어서, 사회의 지배적 상징질서를 교란하는 힘으로 전환된다.
출전; 파주 아트 플랫폼 레지던시 1기 작가 기획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