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채와 형태들은 물리적 견고함을 벗어나 화면 속에서 살랑거리는 바람과 소리에 반응하면서 들썩거린다. 강력한 색채 에너지로 충전된 형태들은 간혹 사각형 캔버스를 넘어서 그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변재희의 그림에는 원색과 형광색, 반짝임과 화려함 외에, 두터운 흰색이 눈에 띈다. 그것은 2000년 눈이 많이 오는 버몬트 지역에서의 레지던스 체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곳에서 작가는 햇빛에 반사가 되는 눈의 결정입자를 수없이 보았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상상적 풍경은 현실의 풍경이기도 한 셈이다. 실제의 풍경에서 끌어낸 것이면서도 동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다양한 재료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던 유년기의 체험과 어우러진다. 시점 또한 복합적이다. 작품 [The Process of the flow]에서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보트들은 옆과 위에서 본 시점이 뒤섞여 있으며, 형광으로 빛나는 작품 [NY NY]는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본 풍경이 조합되어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화가를 꿈꾼 아이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지각되는 것과 아는 것, 그리고 상상된 것이 모순 됨 없이 공존하게 한다. 작품 [The town]은 일렁이는 파도와 다를 바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원색의 패치워크로 변한 마을을 보여준다. 복합매체가 아닌, 오일로만 그려진 작품 [The town]에서도 좁게 올라가는 계단들과 푸른 지붕들 위로 펼쳐진 노을 지는 하늘이 그곳에 있었을 때의 정조를 강렬하게 표현한다. 최근의 유화작품 [산토리니 아일랜드]는 흐르는 색 선으로 채워진 하늘 아래에서 마을의 모든 지붕들이 모자를 쓴 인간들처럼 흥청거린다.
변재희의 작품에서 풍경은 작은 집부터 거대한 창공에 이르기까지 물활론적인 활기로 가득하다. 흥에 겨워 각자 정해지 자리를 벗어나 흔들리는 풍경은 근래에 이르러 춤이라는 주제로 발전했다. 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진동들은 새로운 세계와 조우했을 때의 벅찬 두근거림이자, 큰 배의 캡틴이었던 부친에 대한 그리움과 뒤엉켜 있다. 변재희의 그림에 녹아있는 달콤한 아름다움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작가는 ‘이전의 매우 화려했던 작업을 보면 사람들이 내게 매우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작업했던 시절이 가장 행복하지 못했던 시기였다’고 토로한다. 결핍은 충만함에 대한 희망을 낳는다. 역사적으로 이미지가 존재해온 이래, 이미지는 이러한 갈망에서 벗어나 본 적이 별로 없다. 그것은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과 경쟁원리가 지배하는 현실의 가혹함을 벗어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공간적으로는 유토피아, 시간적으로는 여행이 그러한 탈주의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말뜻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며, 여행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짧은 호사에 불과하다. 유토피아에 도달하기 위한 상상적 여로 속에 작업 또한 중요한 항목이 된다. 상상은 진리도 오류도 아니며, 감각이나 지성과도 구별된다. 상상은 이성이 쳐 놓은 경계를 부수고 분리된 것들을 연결시키며 통합한다. 자연과 건물을 포함하는 화면 속 모든 것들이 서로 어깨를 건듯 함께 어우러지는 변재희의 풍경은 상상의 깔대기를 거친 것이다.
지중해 연안의 저녁 또는 밤의 풍경들은 세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이야기 하듯이, ‘광인과 연인과 시인의 마음은 완전히 상상력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예시한다. 상상력을 통해 대지 위에 놓인 무덤덤한 사물들은 살아있는 우주로 재탄생한다. 실제의 형태와 색채가 휘발되거나 강화된 화면들은 환상적 이미지들이 창조되는 무대로 변모한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의 분명함 대신에, 주관적인 감정의 풍부함을 선택한 결과이다. 보이지 않는 활기로 가득한 다양한 소재들은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환상적인 예술이 그러하듯이, ‘잠시 동안 무질서와 무법을 향해, 법과 지배적 가치체계의 바깥에 놓여있는 것을 향해 열려’(로즈매리 잭슨)있다. 로즈매리 잭슨은 [환상성]에서 ‘환상은 현실의 범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불가능, 비사실, 무명, 무정형, 미지, 비가시 등, 19세기적 리얼리즘의 범주에서는 오직 부정적인 용어로만 개념화할 수 있던 영역’을 소개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환상은 무엇보다도 질곡의 현실을 벗어나고픈 구원의 희망에 의해 활성화된다. 변재희의 작품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는 기존의 관념들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이미 협소한 감각이 되어 버린 시각을 벗어나, 육체 전체로 확장된다. 타자를 포괄하지 못했던 모더니즘의 독선적인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있는 지금, 작품 속에서 여성의 성을 발견하는 것은 더 이상 작품을 부차적인 지위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변재희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식성은 여성의 언어와 관련되어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미술작품 또한 언어이며, 언어는 결코 말하는 주체의 뇌 속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구조가 아니다.
성적 차이를 강조하는 뤼스 이리가라이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형식인 언어가 보편적인 것도 중성적인 것도 불가침적인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여성의 몸이 차이를 존중하는 반면, 가부장제 사회라는 거대한 몸은 차이를 배제하고 계급 서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변재희의 작품에서 화려한 장식성, 촉각성으로 총괄되는 공감각성, 욕망으로 충전된 형상의 흐름들은 성별화 된 언어의 일례이다. 모든 작품에서 작동하는 요동치는 유동성은 ‘온갖 방향으로 육체를 관통하는 의미들의 팽창’(엘렌 식수)을 말하고 있다. 엘렌 식수로 대면되는 페미니스트의 일파는 ‘여성적 글쓰기’를 강조한다. 여성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는 여성의 육체와 관련된다. 그녀는 [메두사의 웃음]에서 여성적 언어가 무의식의 거대한 자원을 분출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성적 초자아와의 동일시를 겨냥한 승화와도 다른 것이다. 무의식, 경계 없는 저편 영역에는 억압된 자들, 즉 여성이 있다. 엘렌 식수는 여성이 젖과 같은 ‘하얀 잉크’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국의 눈 덮인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변재희의 그림에서 이러한 ‘하얀 잉크’의 존재, 성별화 된 표시들이 감지된다. 달디 단 하얀 크림으로 범벅이 된 케익 질감의 화면에서, 오랫동안 어두운 대륙으로 간주되어 왔던 여성의 욕망에 대한 억압적 관념은 찾을 수 없다. 여성적 언어는 금욕주의나 승화의 강박관념에 빠지지 않는다. 변재희의 최근 작품인 춤 그림은 더욱 직접적이다. 작가는 2009년의 한 대담에서 춤 그림은 ‘너무 강렬해서 내 스스로가 놀라기도 했고, 그것은 자유롭고 숨김없이 내보이고 싶은 내 안의 욕망과 관련’된다고 말한 바 있다. 새로운 욕망들을 창안하는 변재희의 그림에서 우리는 육체의 차이에서 발원한 여성의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봄호
성적 차이를 강조하는 뤼스 이리가라이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형식인 언어가 보편적인 것도 중성적인 것도 불가침적인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여성의 몸이 차이를 존중하는 반면, 가부장제 사회라는 거대한 몸은 차이를 배제하고 계급 서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변재희의 작품에서 화려한 장식성, 촉각성으로 총괄되는 공감각성, 욕망으로 충전된 형상의 흐름들은 성별화 된 언어의 일례이다. 모든 작품에서 작동하는 요동치는 유동성은 ‘온갖 방향으로 육체를 관통하는 의미들의 팽창’(엘렌 식수)을 말하고 있다. 엘렌 식수로 대면되는 페미니스트의 일파는 ‘여성적 글쓰기’를 강조한다. 여성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는 여성의 육체와 관련된다. 그녀는 [메두사의 웃음]에서 여성적 언어가 무의식의 거대한 자원을 분출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성적 초자아와의 동일시를 겨냥한 승화와도 다른 것이다. 무의식, 경계 없는 저편 영역에는 억압된 자들, 즉 여성이 있다. 엘렌 식수는 여성이 젖과 같은 ‘하얀 잉크’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국의 눈 덮인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변재희의 그림에서 이러한 ‘하얀 잉크’의 존재, 성별화 된 표시들이 감지된다. 달디 단 하얀 크림으로 범벅이 된 케익 질감의 화면에서, 오랫동안 어두운 대륙으로 간주되어 왔던 여성의 욕망에 대한 억압적 관념은 찾을 수 없다. 여성적 언어는 금욕주의나 승화의 강박관념에 빠지지 않는다. 변재희의 최근 작품인 춤 그림은 더욱 직접적이다. 작가는 2009년의 한 대담에서 춤 그림은 ‘너무 강렬해서 내 스스로가 놀라기도 했고, 그것은 자유롭고 숨김없이 내보이고 싶은 내 안의 욕망과 관련’된다고 말한 바 있다. 새로운 욕망들을 창안하는 변재희의 그림에서 우리는 육체의 차이에서 발원한 여성의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