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기씨, 한국화 명칭사용 주장
좁은 지면이긴 하지만 역사적 내역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원래 우리나라엔 동양화란 개념이 없었다. 서양화가 유입되기까지엔 서화란 이름밖에 없었다. 글씨와 그림이란 뜻이다. 서화는 <이명동체>라고해서 같은 근원으로 보았고 그렇게 사용하는데도 불편이 없었다. 서양화가 유입되고 이에 따른 상대적인 전통회화를 새롭게 부를 상황이 되면서 동양화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공식적으로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때 사용되었다. 이 명칭의 공식사용에는 다소 임시방편적인 내면이 없지 않다. 동양화란 말이 사용 될 수 있는 미학적 근거랄까, 어떤 함의가 구체적으로 전개된 바 없이 편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편의에 따라 오래도록 통용되었고 그것은 80년대에까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극히 일부의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한국화란 말을 달기 시작했고 급기야 80년대는 김영기씨에 의해 공식적인 명칭사용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김영기씨는 동양화란 정체불명의 명칭대신 한국화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명칭변경이야말로 주체성회복이라고 다소 과장된 언술을 피력하였다. 그로부터 공공기관에서 한국화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본다.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바로 주체성이 회복된다고는 볼 수 없으나 적어도 동양화, 한국화 하는 혼란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후기 팝적 양식이 풍미하고 있는 한국화의 젊은 세대 작품들을 보면서 과연 이를 한국화라고 불러도 무방할지가 적이 망설여진다. 동양화니 한국화니 보다 그냥 회화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으니 말이다. 서양화과 출신보다도 동양화과 한국화과 출신들이 이 같은 양식에 빠져있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동양화, 한국화 지망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후기 팝아트의 물결에 휩싸여 있느냐는 것이다. 한번쯤 연구해 볼만한 대상이 아닌가 본다. 너무 오랫동안 전통이란 굴레 속에 갇혀 주눅이 든 때문일까. 대담한 탈피의 주문이 그러한 양상을 빚은 것일까.
회화는 새로운 것의 창조적 잠재성을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색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동양화과 출신이 자신의 타이틀을 한국화가로 부치는 경우를 보고 한국화는 동양화의 과정을 거쳐 태어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지기도 한다. 처음 서울대에 생겨난 회화부문에 붙여진 명칭이 회화1, 회화2였다. 회화1은 전통적인 양식, 이른바 동양화, 한국화에 해당되는 전공이고, 회화2는 서양화 전공을 가르켰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동양화, 한국화, 서양화 대신 그냥 회화라고 해야 어울린다. 미술대학에서의 전공분류엔 회화1, 회화2라고 불러도 좋으나 일단 학교를 나오면 그냥 화가이지 굳이 동양화가, 한국화가, 서양화가라 부를 필요는 없다. 이 얼마나 어색한 명칭인가. 같은 양식의 방법을 전공하고서도 나와서는 동양화가니 한국화가니 부르는 것도 그렇거니와 엄연히 한국인이면서도 서양화가로 부르는 것도 얼마나 넌센스인가. 명칭은 개념을 낳는다. 회화하면 지금까지의 동양화, 한국화, 서양화를 종합한 개념이다. 실지로 서양화의 매체로 전통적 양식을 다루는 예도 있고, 전통적 매체로 현대적 양식을 추구하는 예도 있다. 이를 굳이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동양화, 한국화, 서양화 보다 회화라고 했을 때 느끼게 되는 열린 의식은 그만큼 구태를 탈피한 새로운 것의 창조적 잠재성을 말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그러한 방향으로 매진해야 할 때가 아닌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