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물신의 환상적 구조 때문인지, 다소 어둑하게 연출된 전시장은 매혹으로 가장된 공포가 출몰하는 무대가 된다. 멀리서보면 얼룩이나 점처럼 보이는 어두운 형태(Gestalt)들은 미세한 선들로 채워진 면을 이루며, 면은 다시 굴곡진 표면과 덩어리로부터 탈주하는 외곽선들로 흐트러진다. 다양한 변곡의 계열로 이루어진 이주형의 포자(The spore) 시리즈는 무수한 선의 집적이 부피를 만들며, 내부로부터 파동 치는 힘이 발현되는 장이다.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서 출몰하는 것은 희열과 공포, 사랑과 욕망, 탄생과 죽음 같은 원초적 감성이다. 포자들은 엄습하는 두려움으로 쭈뼛 선 머리털로부터 기괴한 웃음을 흘리는 듯한 마스크까지 고딕적 그로테스크함으로 가득하다. 머릿속 깊은 곳으로부터 융기하여 구불거리는 털이라는 공통점만이, 변신 중인 형태들을 동질이상(同質異像)의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내포적 다양성을 가지는 형상들은 상이한 곡률과 주름을 가지는 우주와 생명의 이미지로 확장된다. 빈 공백처럼 보이는 바탕에 펼쳐진 형상은, 위상학적으로는 구면이지만 휘어진 정도가 제각기 다른 복잡한 곡면을 가진 n차원의 다양체로, 가능한 세계들의 모형을 제시한다.

‘공리적 풍경’이라는 전시부제는 주먹구구식의 상상을 넘어, 진정한 다양성과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수학적 엄밀성을 예시한다. 그러나 공리적 방식은, 형식적 체계의 일관성이 정작 증명될 수 없다는 역설을 내포한다. 증명이 필요치 않은 원칙들과 불확정성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다. 실제가 가능하기 위한 자명성에의 요구와 그 요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결여는, 우리로 하여금 실제의 이면을 직시하게 한다. ‘공리적 풍경’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지각에서 욕망으로, 요컨대 예술의 본령으로 강조점을 이동시킨다. 이주형의 작품에서 개체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은 예측 불가능하다. 포자는 물론, 최근 시작한 배아(Embryo)시리즈에서 차용한 생물학적 개념은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미적 가치도 내포한다. 자연과학적인 대상을 넘어서는 포자나 배아의 개념은 고전주의 시대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가 이론화한 단자(單子)와 비교될만하다. 그것들은 물리적 힘보다는, 의지와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실체이기 때문이다. 단자의 예는 개인이나 씨앗 등에서 발견된다.

포자와 배아는 단자처럼 부분을 가지지 않으며, 이러한 단수성을 통해 다수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하얀 캔버스 하나하나에 놓인 단일한 개체는 각각의 테두리를 가지는 세계에 거처하며, 그 세계 내부에 깊이 패인 틈과 그림자는 존재 내부에 똬리를 튼 무(無)를 암시한다. 그것은 라이프니츠의 단자처럼, 창이 뚫려 있지 않으며 우주의 다른 단자들을 지속적으로 반사하는 살아있는 거울이다. 검푸르게 빛나는 이 단자적 거울은 대우주를 담는 소우주로 작동하면서, 눈망울 같은 물방울 속에 빛의 파동으로 출렁이는 우주적 대양을 담아내곤 한다. 육화된 외피인 머리털은 기원이 불분명한 빛살과 어우러져 응집하거나 팽창한다. 지각의 수용기이자 반응기인 머리털은 피부의 확장이며, 표면과 이면이 통합된 몸은 시공간이 얽혀 있는 세계와 상호작용 한다. 그의 작품에서 개체 전체를 뒤덮는 털은 세계와 연결된 살아있는 끈이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듯이, 이 끈은 다양한 몸의 두께를 만들며, 나를 세계로 세계를 나로 만든다. 나와 세계, 이 두 존재 사이에는 경계선이 아니라, 접촉면이 존재한다.
이 접촉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구조화될 수 없으며 공적으로 소통시키기 힘든 무의식과 욕망을 가시화한다. 끝없이 자라는 머리털은 무의식과 욕망의 화신이다. 기관 없는 몸체가 더듬어 파악하는 세계에 대한 지각은 욕망으로 추동된다. 욕망의 절정은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처럼, 아귀가 맞아 떨어질 수 없는 상상처럼, 근본적인 불일치가 내재한다. 라깡이 말하듯이, 결핍의 주체이며 욕망의 주체로서 사랑하는 자는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상실된 대상과 계속 만나게 될 뿐이다. 삶 자체가 계속되는 불일치, 이 끝없는 어긋남과 지연의 과정이다. 그러나 모체에서 벗어나는 탄생의 순간부터 공포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에게 공포란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엄습하는 공포의 순간에 응결된 포자들의 다음 단계는, 어둠 속 봉인이나 생의 응집력을 잃고 흩어져 버린 세계의 잔해 속에서 또 다른 변모를 위해 내부로 접힌 주름을 펴기 시작하는 배아들이다.
출전: 아트 인 컬처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