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구의 ‘eye trce’전은 동물들이 가지는 다양한 시각 메커니즘을 추적함으로서, 지상의 지배적 종으로 군림하게 된 인간의 눈을 여러 시각 체제 중의 하나로 상대화시킨다. 인간중심주의가 확립된 이래로, 동물들은 동일자의 시각에 의해 타자로 분리되었으며 동시에 지배 대상들로 간주되어 왔다. 그는 다른 종의 시각을 탐구함으로서,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된 근대적 주체의 시점에 차이를 도입한다. 괴상한 기계장치처럼 보이는 것들은 몸에 착용됨으로서 다양한 시각성(visuality)을 작동시킨다. 머리 양옆에 확대경을 붙이거나 수많은 볼록렌즈가 붙은 장치는 어류나 곤충의 시각을 모방한 것이다. 그것은 고정된 하나의 조망지점을 전제하곤 하는 원근법적 시야를 벗어나, 다채로운 세계상을 보여준다. 근대적 시각체제에 대한 현대 미술가들의 도전은, 인간의 시각이 세상의 주인은커녕, 자기 자신의 주인조차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형구의 작품은 다른 종의 시각에 대한 생물학적 탐구이지만,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은 기계적이다. 그의 작품은 단지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기계적 시뮬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장치들은 단지 보여 지는 대상들이 아니라, 유기체와 연결되어 작동하며 새로운 시야와 경험을 야기하면서, 타자되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인간의 시점만을 고집한다면, 단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시선과 모방 사이에 내재하는 쾌락을 전면화 한다. 또 다른 가시적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장치들은 모방적 쾌락을 낳는다. 이러한 쾌락은 생물학적 기능주의나 생존본능과도 거리가 있다. 그것들은 술 취한 듯 갈지자로 걷게 하며, 분열증적인 시야를 열고, 때로는 포식자를 구별할 수 없는 치명적 맹목을 야기한다.
작품 [orange deer]는 본래 오렌지색을 구별 못하는 사슴에게 챙을 씌워 세상을 온통 오렌지색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만약 포식자가 오렌지 빛으로 위장한다면, 그것은 포식자에게 거저 목숨을 내놓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피식자인 사슴의 오렌지색 시야는 자신의 포식자를 흉내 내는 것일 수 있다. 동물의 의태(mimicry)를 연구한 인류학자 카유와나, 이를 정신분석학에 응용한 라깡의 거울단계 이론은, 동물의 가장이 자신이 처한 환경의 색채와 형태 모양을 취하는 생태적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란 보조비치는 [암흑지점]에서, 잡아먹히기 전에 포식자인 쥐에게 자신의 날개를 펴서, 쥐의 포식자인 올빼미의 눈을 닮은 얼룩을 보여주는 나방의 예를 든다. 나방은 포식자가 최후에야 보게 될 것을 재생하는 것이다.
흉내내기는 타자의 응시를 위한 광경을 상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자체가 타자의 응시를 재생한다. 이형구의 동물적이며 기계적인 장치들은 주체의 시선을 대신하는 타자의 응시와 관련된다. 생물학과 인류학, 정신분석학에 이르는 의태에 관한 연구들은, 의태가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공간과의 차이를 소멸시키고 그것과 뒤섞이려는 비합리적 충동의 발현이라는 점을 밝힌다. 의태적 은신은 환경과의 경계를 소멸시킴으로서 무아경적 쾌락을 낳지만, 이미지에 온통 빠져드는 이 쾌락은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 유혹이다. 의태에 관한 가설들은 유기체가 그 자신이 아닌, 그 바깥에 있는 힘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형구는 다양하게 고안된 시각 기계들을 통해, 바깥에 있는 타자의 시선들을 도입한다. 이러한 시선들은 주체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 되면서, 취약하기 그지없는 동일자의 시선을 침식한다.
출전; 계간 조각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