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모색 30 전 (4.14--6.6, 국립 현대미술관)

시간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하는 근대 이후, 거기에 속한 모든 시간대는 과도기이자 전환기로 간주되어 왔지만, 지금 여기와 바로 연결된 30년 세월은 특히나 각별하다. 한국사회에서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고도성장과 사회적 갈등, 정보혁명과 세계화 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로, 우연찮게 이 시기와 꼭 들어맞는 역사를 다룬 기획전을 통해, 관객들은 문화적 격변기 속에서 우리의 현대 미술은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왔나를 가늠할 수 있다. 작가에 따라 의도적으로 반영하려했든 안했든, 시대는 작품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지금과 매우 가까이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하면, 이젠 낯설어진 스타일도 적지 않다. 물론 지금 친숙해 보이는 작품(반대로 낯선 작품)이 더 훌륭하다는 말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과 관련하여, 친숙함/낯섦이란 매우 당대적이었다는 의미가 될 수 도 있고, 그 반대일수도 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특정 시공간에만 속한 작품은 사람들의 기억력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지금은 기억 용량이 과거보다 급속히 채워지고, 또 비워지기 때문에 익숙함과 낯섦의 변증법은 더 역동적으로 작동된다.




당시에 가장 유행했던 것이 나중에는 가장 드물어진 것이 되는 예는 역사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그 경우는 작품 자체보다는 시대의 문화적 코드와 연관지어져 흥미로운 역사적 증거물로 간주된다. 반대로 당시에는 낯설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보면 친숙한 스타일의 작품도 있다. 미술사에서는 이를 두고 시대를 앞서갔던 전위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의 화살이 진보를 향한 직선의 방향으로 쏘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굽은 미로적 공간을 통과한다고 평가되는 현시대에, 전위니 후위니 하는 것도 특정한 경향의 미학이나 미술사에서 사용하는 편의적 용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담론은 허위적이든 진실한 것이든, 또 다른 권력이 되어 현실을 창출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 권력이 집중되는 제도나 기관에서 선정한 작품들이나 작가들은 선정 자체로 당대의 미술 판에 영향을 주고, 역사에도 기록될 수 있는 유력한 후보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국립현대 미술관이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 기관에서 30년 동안 2년에 한번씩 15회에 걸쳐 시기별로 주목할만한 젊은 작가를 뽑아서 한국 미술의 당대성을 꾸준히 제시했던 방식은, 그자체로 살아있는 현대 미술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현재 기록되고 있는 중인 미술의 역사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 못지않은 중요한 작품을 생산했으나 거기에 선정되지 못했다면, 왜 그 작가가 제외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조차도 유의미할 수 있는 비중을 가지게 된다. 또한 30년을 기념하여 중간점검을 함으로서, 앞으로도 진행될 작가 선정 작업에 더 많은 미술계 여론 수렴과 객관적인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당위성도 다가올 것이다. 이 회고전은 30년 동안 선정된 작가 327명 중에서, 또 추려진 43명의 구작과 신작이 어우러져, 지금의 시점에서 지난 전시들에 대한 재평가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30년 세월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세대 정도로 간주되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덩어리로 치부되기에는 긴 세월로 생각된다. 이번 전시는 필자가 2년 전에 젊은 모색 전을 보았을 때의 작품들과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무겁게 다가온다는 느낌이다. 일단, 이러한 묵직함은 참여 작가들이 최선을 다해 전시에 임해준 결과 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지금은 중장년이지만, 당시에는 청년이었을 작가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의 무게일 수 있다. 언제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 보고 경박하다고 타박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감을 생각해 본다면, 젊은 작가만큼이나 무거운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 젊은이가 후일 기성의 권력의 한켠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의 무거움은 청년시절의 그것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그가 속하게 된 제도의 후광에서 나온 무게이거나, 청년 작가 시절에 시작된 발상을 단지 물질적으로 더욱 견고하게 완성 짓고 브랜드화 시키는 재생산의 차원에서 나오는 것일 경우가 많다. 그들 중 소수만이 기성의 권력체제에 안착을 했듯 안했든 간에, 젊은 시절에 생성된 참신한 감각과 문제의식을 또 다른 버전으로 상승시킨다. 전시 작품들의 면면에서 흐르는 전체적인 묵직함은 81년부터 89년까지 5회에 걸쳐 열린, 젊은 모색전의 전신인 청년작가 전의 작품을 모은 1전시실에서 더욱 강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격변기인 80년대를 다룬 전시공간에서, 당시에 미술 제도의 바깥에서 민주화 운동의 차원에서 문화적 바람을 일으켰던 민중미술 경향의 작가들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또한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초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문화예술계의 현실과 달리, 여성작가들의 흔적 또한 미미하다. 흔히, 민중미술/모더니즘의 대립구도로부터 다원주의로의 흐름이 열렸다는 90년대 이후의 시기에서도 여성 작가의 비중은 매우 낮았다. 그것은 아직도 제도적 공간에서 문화적 소수자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전시실을 지배하는 것은 무거운 시대에 대한 작가들의 묵직한 반향이다. 전시 동선의 시작을 알리는 극사실주의 계열의 작품부터가 그렇다. 서구의 하이퍼리얼리즘과 달리, 소재의 선택이나 표현방식이 존재론적이다.

그 뒤로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인간 소외와 실존적 고민을 담은 회화나 조각 작품들이 이어진다. 미술사 내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저항 역시, 실재의 이면으로서의 언어적 실험이라는, 전체적으로 리얼리즘적인 관점이 관철된다. 거기에는 본질, 소외, 실존, 자아, 인간, 현실, 언어, 역사 같은 총체적이고 육중한 코드들이 관통해 있고, 이점은 단편적이고 부박한 기표들이 지배하는 현재와 다른, 그 시대의 무게감을 부여하는 요인들이다. 한 층 아래의 7전시실은 90년대 이후에 열린 젊은 모색 전을 조망한다. 90년대는 80년대보다는 2000년대에 가까운 시기로,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혁명이 관통하는 시대이며, 현실에 대한 의식이 급격하게 변모한다. 사진이나 영상은 더욱 빈번하게 실재와 미끄러지는 관계 속에 놓인 기표로 호출되며, 작가들은 묵직한 실재에 대한 의식보다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욕망과 감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의 작품에서의 무게감은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에서 비롯된 형식적인 차원의 것이지, 내용적인 차원은 아니다. 일관되게 이루어졌던 30년의 성과를 돌아보니 핵심적 실재에 대한 의식이 강고한 80년대의 청년작가로부터, 작품의 표면이나 인터페이스에 더욱 치중하는 90년대 이후의 청년작가들의 대조가 더욱 확연해진다. 새로 나온 휴대폰별로 세대가 갈라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30년은 거의 거시역사에 해당되며, 여기에는 각 시대의 명암이 거칠게나마 드러난다. 그것은 대형 기획전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묘미일 것이다.

출전; 계간 조각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