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4 - 6.4) 갤러리 스케이프
2003년 이후에 그린 먹 드로잉과 아크릴 채색화 100여점을 한데 모은 강경구의 전시는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먼저 눈길을 끈다. 다양한 크기의 검은 액자들만이 중구난방의 이미지가 펼쳐진 상상의 사각형에 통일된 틀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묵직한 실재감을 주는 산 그림 등으로 잘 알려진 강경구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 또는 동양화 같이 듣기만 해도 그 자체의 역사와 미학으로 무게감을 주는 개념으로부터 훌훌 벗어난다. 그것은 굳이 발표를 염두에 두지 않고, 한 장 두 장 그린 것들을 펼쳐 놓은 방식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농담을 가지는 먹 선은 모노톤을 유지하면서도 선적인 단조로움을 벗어나 있으며, 붓이 머금은 먹의 상태에 따라 바탕을 미끌어지거나 번지는 선의 흐름은 자체의 부피를 확보하면서 다양한 이미지로 변모한다. 그의 작품은 완성된 작품을 위한 준비단계가 아니라, 작가의 감정과 직관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서, 밑그림이라는 예비적 단계로부터 곧장 완성작으로 도약한다. 작품 대 드로잉이라는 대립구도를 벗어나, 하나로 융합되는 단계에서 그의 작품은 현대회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재현성을 겨냥한 확정적 선이 구사되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임의적이거나 추상화된 선도 아니다. 그것은 선을 위한 선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담는 형태로 작동한다. 기본적으로 단순한 선의 흐름에 의존하는 강경구의 작품은 자연을 닮았다. 여기서의 닮음은 자연의 외형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닮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연에는 필요이상의 잉여를 유발하지 않는 단순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어진 몇 개의 선이 모여 만들어지는 형태는 어떤 내용을 향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어떤 의도된 목적을 향해 부단히 다듬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떠오른 사고나 감흥을 메모지에 쓰듯이 순발력 있게 담아낸다. 이러한 경향은 작품의 선적 요소를 글쓰기에 근접시킨다.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 인간에게 언어와 이미지는 선을 통해 가까워 질수 있다. 그것은 작품 보다 열린 개념인 텍스트에 가까운 것인데, 강경구의 작품에서 이미지와 글쓰기는 상호텍스트적인 것으로 만난다. 이 텍스트는 어떤 틀을 전제로 하는 투사가 아니라, 몸과 종이 표면의 부담 없는 접촉에 기반 한다. 그의 먹 드로잉은 우연적 과정에 열려 있고, 의미가 명확히 고정되지 않는다.
계산을 겨냥하는 이성보다는 몸에 의존하는 이러한 느슨한 방식으로 인해, 소통은 다양한 층위에 동시에 호소한다. 그것은 한 인간에게서 발원한 표현 의지이자 무의식적 욕망의 분출이다. 거기에는 동일성에 근거한 재현적 체계에서 볼 수 없는 잠재적 운동성이 내재한다.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단하나의 중심만을 지니는 재현은 모든 것을 매개하지만, 그 어떤 것도 끌어들이거나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한다. 반면, 운동은 다원적인 중심들을 함축한다. 거기에는 포개지는 원근법들, 뒤얽히는 관점들, 재현을 기형화시키면서 공존하는 계기들이 함축되어 있다. 여기에서 극대화되는 것은 잠재적인 것이다.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자체로 충만한 실재성을 소유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잠재적인 것은 언제나 차이, 발산, 또는 분화를 통해 현실화된다. 매개되지 않는 바탕의 자유, 곧 명확한 목적을 가진 선과 형태, 색채와 거리가 있는 강경구의 조형 요소들은 현실적인 것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적 방식을 통해, 그의 작품은 재현의 파산을 알리는 현대적 사유와 만난다.
출전; 월간미술 6월호
이선영
#4802
강경구 展
이선영
2010. 06. 30.
이선영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3059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