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학자나 언어학자, 그리고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자연에서 사회로 진입하는데 있어 상징적 체계의 역할을 강조한다. 금기와 명령으로 가득한 이 질서는 혼인교환의 법칙으로부터 경제, 종교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토대를 이룬다. 레비 스트로스로부터 라깡에 이르는 지적 전통은, 이러한 구조들을 지배하는 법칙이 언어의 법칙과 동일하다고 본다. 라깡은 인간이 인식하는 첫 번째 상징을 무덤이라고 말하는데, 이재훈이 즐겨 쓰는 장치인 기념비적 구조 자체가 무덤에서 비롯된 건축양식의 변주들이며, 무덤이나 묘비의 도상도 종종 나타난다. 거기에는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들이 축약된 언어로 새겨져 있곤 한다. 상징체계인 언어는 주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선점한다.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고 가치를 규정하며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상징체계는 습득된 언어를 통해 주체를 관통한다.
인간은 이러한 구조들이 실행되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 [Noble Savage_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에서 텅 빈 기표가 새겨진 머리와 실체 없는 몸이 취하는 복종적 자세는 무덤까지 이어진다. 언어는 개별 인간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정립하고 입문시키지만, 동시에 미로 같은 기표의 체계에 가둔다. 감정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이재훈의 최근작은 사회 속에서 언어를 매개로 소통하는 과정에 내포된 원초적 결핍과 부재를 무언극처럼 표현한다. 인간은 언어적 존재이지만, 언어는 초개인적이다. 인간존재와 거의 하나로 간주되는 언어는, 주체를 소외시키는 타자이다. 언어는 대타자Other로 자리매김 된다. 라깡에 의하면 ‘대타자는 하나의 장소, 즉 말이 구성되는 장소’이다. 언어를 본 떠 구조화된 상징체계로서의 사회는 인간에게 초자아를 강제한다. 그러나 초자아는 사회의 상징적 법에 규제되며 승화를 요구받는다.
딜런 에반스가 정리한 바에 의하면, 라깡은 초자아의 법이 ‘절대명령과 단순한 독재의 무감각하고 맹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초자아에서 질서나 승화가 아닌 ‘음탕하고 흉악한 거물, 신경증적 주체에게 무감각하고 파괴적이며 억압적인 면’을 강조한다. 이재훈의 작품에는 초자아의 가학-피학적인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무지막지해 보이는 황소나 눈 가린 맹목적 거인들은 법이며 동시에 초법적인 존재를 상징하며, 기념비와 일체가 되어 굳은 채 균열을 드러내는 도상들은 결코 가려질 수 없는 상징 질서의 틈들이다. 사회영역의 질서를 확립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언어가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다. 원래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육체가 사회의 압력에 의해 상징화되려고 노력하면서 소외와 분열이 야기된다. 압박과 고통의 절정에서 굳어버린 이재훈의 작품 속 인간들은 상징적 질서에 압류된 운명을 비극적, 혹은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출전; 고양창작 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 리뷰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