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은 전 (6.10--6.27, 공근혜 갤러리)
안세은의 ‘일회용 자아’전은 다양한 일회용품을 끌어 모아 통합된 자아라는 이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품의 소재가 되는 일회용품에는 10원짜리 동전, 금속 테이프, 거울 조각 같은 반짝이는 재료와 신문, 장식용 종이받침 등이 동원된다. 쓰고 버리는 것이 일상화된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널린 것이 일회용품이므로, 이러한 선택에는 특정한 의도가 있다. 그 모두가 실제의 거울은 물론, 거울과 관련된 이미지라는 것이다. 관객의 얼굴이 부분적으로 비치는 반짝거리는 소재는 물론, 사회를 비추는 신문, 거울의 테두리를 닮은 장식물 등이 그렇다. 거울에 근접한 이러한 소재들은 자아라는 또 하나의 개념과 내재적 연관성을 가진다.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거울을 통해서만 통일된 자아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에 기반 한 가상, 즉 환상적 통일성이기에 불안정한 구조를 지닌다. 작가가 선택한 일회용품들은 하나의 덩어리나 표면이 아니라, 이합집산 하는 분자적 구조를 가지며,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형태를 만든다.

바닥에 설치된 [일회용 자아]는 여러 크기의 동그란 거울들을 장식적으로 배열한다. 여기에서 거울은 가상의 평면이 해체되고 조각난 상태이지만, 가장자리가 둥글려 있어 평면거울과는 다른 환영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전체에서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파편이 아니라, 부분 속에 전체가 담긴 구조들이 응집된 상태로, 무시무시한 분열이 아니라 거울상의 유희를 보여준다. 벽에 설치된 것에는 반사면이 있는 금속 테이프가 거울조각과 섞여서 붙어있다. 전체가 보이기도하고 바닥에 가려 부분만 보이는 식으로 연출되었는데, 그것은 거울에 기대되는 바, 자아의 진면목을 보여줄 듯 말듯 숨바꼭질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동전이나 신문기사 등, 보다 구체적인 기표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비판적인 면모도 보인다. 작품 [일회용 사랑]은 10원짜리 동전이 간간히 붙어있는 사이사이에 금속테이프가 하트 모양으로 붙어있다. 작가는 하트의 내부를 텅 비워놓아, 돈에 둘러싸인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의 문제를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어떤 이는 뿌듯하게 어떤 이는 역겹게 느낄 것이다. 가운데 여백은 보이지 않는 거울 면인 상상의(imaginary) 표면으로 가정되고, 이를 둘러싸는 입자 형태의 금속 테이프와 동전은 상상의 거울을 이루는 본래의 구성성분을 명확히 해준다. 이 작품에 의하면 현대사회에서 자아나 그것의 나르시시즘적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주요 성분은 돈이다. 돈은 어떤 실제가 아니라 실제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기표이지만, 곧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주체가 된다. 돈이 진정한 가치와 일대일 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울이라는 상상의 표면에 비추어진 이미지는 일시적으로만 통일된 형태를 취할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대상과 주체는 모든 의미작용과 마찬가지로 기표들 끼리 불안정하게 연결된 산물이다. 회화 작품들은 설치 작품에 대한 부연설명처럼 보인다. 정방형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려진 레이스 무늬 형태에서 안팎으로 섬세하게 그려진 선의 다발들은 광학적인 번질거림 대신에 촉각적 느낌을 준다.
정사각형 캔버스 가운데 자리한 대칭적 형태가 만다라 같은 회화 작품들은, 바탕과 형태에 부여된 흑백의 조합에 따라 텅 빈 거울의 앞면이나 그것을 거꾸로 뒤집은 거울 뒷면을 연상시킨다. 화면의 어두운 부분을 이루는 가느다란 선의 얽힘은 자아를 비추어주는 가상적 구조자체에 내재된 미세한 균열들을 두드러지게 한다. 또한 그것은 한번 올이 풀리면 순식간에 전체가 풀려지는 매듭의 구조로, 현실과 상상과 상징이 매듭처럼 한데 얽혀 있다는 현대 정신분석학의 가설을 떠오르게 한다. 안세은의 작품에서 원초적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가상의 면이 상상계라면, 이 상상계를 조직화하는 것은 상징계이다. 사회나 언어구조로서의 상징계는 신문기사로 대변된다.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려진 흑과 백의 패턴에 신문이 가세한 작품들은 거울상이 연출하는 상상계를, 사회적으로 보다 명확히 통용될 수 있는 선적구조로 해독한다.
출전; 퍼블릭 아트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