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리얼리즘. 7.27-10.10. 덕수궁미술관

현실을 파고드는 경향과 탈현실을 추구하는 경향, 현실 그대로를 그리는 경향(현실주의)과 현실을 이상화시키는 경향(이상주의),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경향. 사태를 단순화하는 감이 있지만, 거칠게는 예술을 이렇게 구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리얼리즘은 현실을 파고드는, 현실 그대로를 그리는, 그리고 때론 추마저도 포함한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에 가깝다. 한편으로 리얼리즘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것은 리얼리즘의 대상이 되는 현실과 현실인식, 그리고 그 인식으로부터 파생된 현실과 예술과의 관계가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진정한 현실로 볼 것인가, 진정한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따른 분분한 이견 탓에 다양한 종류의 리얼리즘이 가능해진다. 그 중 가장 기본적인 유형이 감각적 현실 그대로를 옮겨 그리는 재현적인 태도로서 사실주의라고 하며, 다르게는 자연주의라고도 한다. 아마도 대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그린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유형으로는, 아마도 리얼리즘의 본래 의미에 가장 충실한 경우가 아닐까 싶은데, 현실에 대한 실천적 참여를 지향하는 태도로서 현실주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대한 실천적 참여 자체가 이념을 위한 도구로, 정치적인 도구로까지 발전한 경우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다. 이처럼 리얼리즘 논의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아시아리얼리즘>은 아시아 10개국(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필리핀, 인도)을 아우르는 전시로서,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싱가포르국립미술관이 공동 기획했으며, 양국의 국립미술관에 순회하는 전시다. 각국의 근대미술 중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엄선한 작품 총 106점이 출품되며, 한국작가를 제외한 출품작 모두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다. 그 주된 시대적 배경으로는 거의 예외 없이 아시아 권역 국가들이 비슷한 근대화의 과정을 겪은, 자생적이기보다는 서국열강의 침략에 의해 왜곡된 근대화의 과정을 통과해야만했던 시기에 해당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리얼리즘 미학으로 알려진 그 이념적 뿌리는 현재에도 그대로 연장돼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총 5개의 테마로 나눠진다. 단순히 재현적인 기술에서 현실에 대한 자각 내지는 자의식에 눈 뜨기에 이르기까지 리얼리즘의 다양한 층위를 아우르며, 이로써 리얼리즘 미학의 아시아적 특수성을 살피게 한다.
먼저 새로운 재현형식으로서의 리얼리즘(테마 1)을 다룬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인 동양의 화법은 관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이에 반해 서양의 화법은 재현적인 것이었다. 이런 재현적인 화법의 주된 도구가 바로 원근법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된 원근법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나타난 서구 주체사상을 이미지로 도해한 것이다. 주체를 중심으로 세계가 재편되고 재구성된다는 이념을 각각 철학으로 그리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마치 사진과도 같은 실재감이 더해진다. 아시아 작가들은 이런 서구의 기법 그대로를 수용하는 대신 자국의 미술사적 전통과 접목시켜 서구의 그림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의 그림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일본작가의 경우 일본의 전통적인 목판화에 나타난 평면화의 경향성과 서구 기법에 의한 입체적인 볼륨감이 공존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고, 동남아작가들의 경우 공예의 한 분야인 옻칠과 벽화, 그리고 금니와 은니 등 전통적인 기법을 서구기법의 사실적인 묘사와 어우러지게 했다. 서구의 재현화법은 이런 과도기적 현상을 거친 연후에 일종의 아카데미즘으로 자리하게 된다.

다음 항목이 은유와 태도로서의 향토로서(테마 2), 식민지배 속에서 자연스레 싹튼 민족에 대한 자의식(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자국 민족의 특수성을 주로 농촌과 농부계층에게서 찾았는데, 사실주의 기법을 그대로 전용하면서도 현실을 목가적인 분위기로 각색해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농촌의 현실을 그린 그림 한쪽에 피리 부는 소년이나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를 그려 넣어 낭만적인 전원풍경으로 각색한 것이다. 사실주의 기법과 낭만주의 이념이 조화(부조화?)를 이룬 경우라고나 할까. 국내의 경우 이인성과 박상옥의 소위 향토적 서정주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선 아마도 자민족의 현실을 향수와 동경의 대상으로서 이상화하려는 이념이 반영된 것일 터이지만, 일각에선 이런 향토의 이상화된 이미지가 현실주의의 이념적 입장과는 거리감이 있는,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리고 세 번째 항목에서는 노동자 계층에 주목한다. 서구 사실주의를 창시한 쿠르베 역시 노동자를 즐겨 화폭에 담았지만, 노동자야말로 현실주의 미학의 핵심 계층이랄 수 있다. 20세기 초 혁명으로 고취된 러시아, 그리고 연이은 문화혁명으로 고양된 중국을 중심으로 이후 노동자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는 시대의 주역임을 넘어 시대를 견인하는 영웅으로서 찬양된다. 국내의 경우 일제치하의 카프논쟁에 의해 촉발된 이 경향은 삶과 예술의 일치, 삶을 위한 예술 등의 슬로건이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념과 그 맥을 같이 하면서 당시 대부분 식민지배하에 있던 아시아 권역 작가들을 파고들어 현실인식에 눈 뜨게 했다.

그리고 네 번째 테마가 전쟁과 리얼리즘이다. 식민지배에 따른 왜곡된 근대화의 과정에 전쟁이 수반되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역사의 수순일지도 모른다. 전쟁만큼 리얼한 것이 또 있을까. 전쟁할 때만큼 현실이 리얼하게 와 닿는 때가 또 있을까. 거의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2차대전의 포화 속에 있어야 했고, 나아가 2차대전이 끝난 이후에 조차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등 각종 크고 작은 전쟁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몸살을 앓아야했다. 그 와중에서 전쟁 상황을 기록하고, 전후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나아가 승전을 기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수많은 전쟁화가 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인식과 비판을 테마로 해서 새로운 리얼리즘을 예고하는 것으로 전시는 끝을 맺는다. 어쩌면 근대 이후, 오늘날 리얼리즘은 어떻게 재정의 되어져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식민지배하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여전한 식민적 사회구조의 반복, 만연한 정치부정, 팽배한 이념갈등과 대립양상이 50,60년대 소위 추상미술이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쳐 리얼리즘 논쟁이 재차 부각되는 계기로서 작용한다. 특히 한국,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그 뚜렷한 부상을 엿볼 수가 있는데, 국내의 경우 1980년대에 시대양식으로 부상한 소위 민중미술이 그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다. 그리고 전시는 말미에 초현실주의 경향을 끼워 넣는데, 아마도 현실을 초현실로 탈바꿈시키는 계기 역시 현실인식에 연유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을 것 같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당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열강의 식민지배하에 처해지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테면 필리핀(스페인), 인도네시아(프랑스, 네덜란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영국), 그리고 한국(일본)과 일본(메이지유신)에 이르기까지. 이런 식민제국의 침략은 반강제적인 근대화의 과정으로 이어졌고, 이렇듯 타의에 의한 근대화의 과정이 왜곡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고, 이런 저간의 사정이 지금까지도 근대화와 관련한 자생성 논의로 이어진다. 이런 자생성 논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앓고 있는 열병이다. 그 열병의 와중에서 태어난 것이 아시아리얼리즘이다. 이마저도 엄밀하게는 서구로부터 수입된 것이란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여하튼 이 전시는 리얼리즘 미학에 대한 아시아적 특수성, 지역적 특수성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주고, 그 다양한 진폭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번 전시를 전쟁의 와중에 각각 월남하거나 월북한 작가들의 그때와 지금을 개괄하고 있는 전시 <고향을 떠나야했던 화가들>(아람미술관, 6.25-9.26)과, 1980년 당시 민중미술의 기폭제가 되었던 대표적인 그룹운동인 <현실과 발언>을 재현하고 회고한 전시 <현실과 발언 30주년 기념전>(인사아트센터, 7.29-8.9)과 비교해본다면 아시아리얼리즘과는 또 다른 국내미술의 특수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