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앙 전<7.29--8.26, 두산갤러리>
최수앙의 ‘아스퍼거의 섬 Islets of Aspergers’ 전은 병적 증후군을 주제로 삼아왔던 몇 년 동안의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의 놀라울만한 재현 능력은 병적 증후조차도 경이로운 현상으로 변화시키며, 관객에게 관음증의 즐거움을 선사하곤 했다. 이번 전시에서 증후는 더욱 심해졌다. 이전의 작품들은 그나마 온전한 인간 형태를 유지했지만, 이 전시의 아스퍼거 섬 주민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병을 표현하는 신체 일부분만이 자세히 재현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붕대를 감은 듯 희멀건 덩어리로 처리되었다. 지상에 우뚝 선 존재로서의 영웅적 인간이 조각예술의 기본을 이루어왔다면, 최수앙의 작품에서 인간은 뭔가 하나씩 결여되어 있는 너무나 취약한 지상의 물질 한 조각으로 나타난다. 창백한 물질 덩어리를 생명체 비슷한 것들로 활성화시키는 것은 신체에 뚫린 구멍들이다. 충혈 된 채 끔뻑거리는 눈, 악에 받쳐 험담을 늘어놓는 입들, 흥분상태에 있는 남녀의 성기들은 이 물질 덩어리가 살아있는 육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병적 증후의 표현이다. 그의 작품에서 삶과 죽음의 기호는 정확하게 겹쳐지고 있다.

두 몸이 합체 된 작품 [Islets of Aspergers Type-13]은 때리고 맞는 것을 동시에 행한다. 최수앙의 작품에서 리비도적인 욕망에 가득한, 타자로부터 영양을 섭취하는 입은 완전히 빨아내고 소모하는 파괴적 충동과 분리불가능하다. 먹고 싸는 구멍들은 동시에 말하고 표현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한 부분의 감각 능력만 발달하여 소통의 장애를 겪는 병이라고 한다. 각종 전자 기기들로 무장한 채 소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쌓인 현대인들을 진단하는 작가의 관점은 소통 불능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는 압도적인 신체의 구체성으로 소통 장애를 겪는 현대인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대의 노동조건은 각자의 파편적인 일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으며, 어느 때보다도 분리된 영역 간의 소통의 필수적이 되었지만, 그 결정적인 접속 부위들이 병들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남녀의 성기가 자세히 묘사된 작품이나 4명의 신생아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작품 [Type-16]은 인간의 병적 증후가 전형적인 여성이나 남성은 물론, 그들이 출생한 당시로 부터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을 자아낸다. 남자아이 두 명과 여자아이 두 명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 각기 눈, 코, 입만 자세히 표현된 얼굴과 성기가 두드러진다. 천사로 태어나서 사회악에 물들어 병든 것이 아니라, 타인을 죽이고 종국에는 자신도 죽이는 치명적 소통불능의 병이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몸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구강이나 항문 등 앞뒤로 뚫린 구멍들은 성적 충동, 즉 육체의 내적인 리비도(libido)가 몰려 있는 곳으로, 리비도는 육체의 일부들, 부분들, 쾌락들이 어우러지는 현장이다. 알폰소 링기스는 [낯선 육체]에서 흥분의 표면들과 접촉하며 희열에 떠는 갓난아이의 리비도가 어떻게 기표, 다시 말해서 타자들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하면서 내미는 기호(sign)가 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자크 라캉이 정교하게 다듬은 프로이트의 남근기 이론은 갓난아기가 자신에게는 있지만 타자에게는 없는 것으로 지각하는 남근(the phallus)에 비추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아이는 자신의 육체에 아버지의 목소리와 법을 삽입함으로서 언어체계 속으로 진입한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경계가 확실치 않은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자아를 성립시킨다. 자유롭게 흐르던 리비도의 흐름이 굳어진 것이 바로 자아(ego)인 것이다. 타자와 분리되어 자기가 중심이 되는 이 유아론적 공간이 사회화의 출발이 된다. 그러나 몸은 본래 안팎(또는 동일자와 타자)이 하나로 연결된 리비도적 표면이기에, 확고한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인위적인 분리는 갈등을 낳고, 결국은 병으로 심화 될 수밖에 없다.
출전; 계간 조각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