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재 Demoli-Creation 展


8.11-9.1 | 갤러리 조선


공사장 펜스 용 녹색 비닐로 만든 집이 전시장 1층을 가득 채운다. 무대처럼 관객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건축적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지붕 꼭대기에는 들고 다닐 수 있는 포장용 물건처럼 손잡이가 달려 있다. 마치 공간 전체를 채운 마그리트의 사과 그림처럼, 실내에 자리한 집은 여기에 들어선 관객으로 하여금 규모의 차원에서 혼란을 준다. 들고나는 바람의 양에 따라 빵빵하게도 흐물거리게도 변화하는 녹색 집은 우리와 더불어 숨 쉬고 있으며, 깊숙한 곳으로부터 새살을 돋아내듯이 울퉁불퉁한 내피를 가진다. 녹색이 가지는 자연적 상징, 시각적 안정감, 그리고 작가가 부여한 치유적 속성은 공간 전체의 흔들거림을 불안하지 않게 한다.





그 자체가 소우주인 몸의 연장으로서 집은 몸의 리듬과 스케일에 맞춰 변화할 때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관객의 몸을 포근하게 에워싸는 녹색 집과 달리, 입구와 출구 전면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거칠게 생성과 파괴를 거듭하고 있는 도시환경의 풍경이 펼쳐진다. 숨쉬기와 달리, 좀 더 긴 시간의 흐름을 압축한 영상들은 변화무쌍하면서도 그 변화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동화할 수 없는 이질감이 있다. 인공물과 자연물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호침투하며 변화하는 작품에서 역사는 자연화 되고, 자연은 역사화 된다. 이 풍경들은 낯설고 기괴하지만, 동시에 항시적인 공사판이 벌어지는 이 나라에서 친숙한 모습이다. 여러 종류의 공사장 가림막이 등장하는 변시재의 작품은 가림 막으로 둘러쳐진 주변 환경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왔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은 악무한의 순환구조를 가진다. 여기에서 파괴는 보다 나은 건설을 위한 것이라는 진보적 신념은 빛을 잃으며, 일단 시작되었기에 계속될 수밖에 없는 맹목성을 가진다.

깊이 뿌리 내린 자연은 뽑혀지고 잘려지며 인공의 흐름에 따라 재배열된다. 그러나 파괴와 생성의 과정이 자연의 과정과 비유되는 한, 그것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다. 영상에서 하늘을 나는 붉은 새는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 같다. 전시장 2층에 집중적으로 전시된 드로잉에서, 화분 같은 작은 공간을 기반으로 뿌리줄기처럼 이어지는 작은 집들은 구조화된 도시 생태계 속에서 유연하게 전개되는 생명의 방식을 보여준다. 작은 녹색 집들은 코드화된 공간 사이사이를 모세혈관처럼 채워가며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애니메이션에서 드러나는 바의, 대지를 가혹하게 후벼 파는 식의 대규모 공사 현장과 달리, 삶의 굴곡 면을 따라 나지막이 전개되는 작은 집들은 거대한 체계에 의존하지 않는 또 다른 유기체의 형식이다. 그것은 미로 같은 알 수 없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것들과 접합하면서 융통성 있게 변신하며 나아간다.


출전 | 월간미술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