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연 전
10.19--10.31, 스페이스 15번지
집을 개조하여 만든 스페이스 15번지에는 박성연이 재구성한 집의 이미지가 영상설치로 표현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집 내부의 재현이 아니라, 집안에서의 소소한 일상적 경험과 그와 관련된 오브제들이 부분적으로 등장한다. 난간이나 손잡이 같은 가구의 일부분들은 심리나 행동의 투사를 통해 연결된다. 작가는 계단 난간의 부분을 뜨개질로 떠서 공중에 띄어 놓았고, 형태와 그림자는 그 뒤에서 영사되는 동영상과 결합한다. 영상은 양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며,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소리들이 함께 나온다. 소리는 불연속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보충하면서 깊은 공간감을 준다. 박성연의 작품에서 집은 보는 곳이 아니라, 어둑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울리던 타자의 소리들처럼 들려오는 곳이다. 애니매이션으로 만들어진 손의 이미지는 마치 수화를 하는 듯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영상에서 손의 주인공은 결코 나타나지 않지만, 손은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익명의 주인공인 손은 무엇인가 만들고 치우고 어루만지며 표현한다. 그것은 집이라는 무대와 연결되어 보살핌의 노동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박성연의 작품에서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보살핌의 노동은 그림자 노동(shadow work)으로 치부되지 않고, 화면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된다. 사회의 공적 영역을 지탱시켜 주는 이 그림자 노동은 오랫동안 여성의 영역이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은 공식적인 영역을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화 됨으로서 억압적인 지배관계를 재생산해왔다. 사회는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을 실제 그자체로 조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은 천상과 지옥의 이미지를 넘나들곤 한다. 현대인에게 가정은 냉혹한 사회의 모순을 치유하는 따뜻한 곳이라는 이미지 한 편에, 집구석에 틀어박힐까 두려워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이중적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가정으로 대표되는 사적 영역은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거나, 지나치게 폄하되어 왔다. 그것이 이 영역의 담당자인 여성의 억압을 야기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이 사적 영역을 소유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남성들의 억압 또한 야기해 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의 사영역화, 가사 노동의 그림자 노동화는 동일자에 의해 배제된 타자의 영역을 대변한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술분야의 사영역화, 작업의 그림자 노동화는 누군가의 모든 심신을 쏟는 이 행위를 임의적이고 장식적인 것으로 만든다. 예술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스스로를 공식화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공식 부문으로 흡수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소외를 야기하는 체계에 속하지 못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여성이자 작가인 박성연의 작품에서 타자(가정, 집 등)는 주인공으로 복귀한다. 작가는 ‘Human for days’라 붙여진 전시부제 아래,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행위들과 그것과 연결되는 사물들을 공감각적으로 설치한다. 팽팽하게 실을 당겨 문틀을 만들고 양쪽으로 문손잡이를 뜨개질로 만들어 달아놓은 구조는 난간과 함께 영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복합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난간이나 손잡이, 문틀 같은 것은 단단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취약하면서도 강하다. 희고 푹신한 실로 만들어진 편물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온기를 보존한다. 하얀 천 5장에 손자수로 움직이는 손을 새긴 작품은 마치 빨래나 깃발처럼 내걸려 있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삶의 순간들을 기념비적 것으로 만든다.
출전 |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