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전
11.11--12.5, 갤러리 비원
도시에서 발견될 수 있는 다양한 패턴들이 집합된 정재호의 월 페인팅과 유화는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품에서 파편화된 물질과 단편적인 기억은 상호 침투 한다. 이미지의 원천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그것이 실제로 꼴라주 되거나 꼴라주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꼴라주는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의 틈을 두드러지게 한다. 작품 속의 시공간은 간극과 균열 그자체로 나타난다. 정재호의 작품에서 이 틈은 벌어지기보다 압착되어 있어, 도시가 가지는 공간적 밀집성과 빠른 시간의 주기를 표현한다. 여기에 사람의 형상이 등장할 여지는 없다. 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every single day’라 붙여진 전시부제는 도시적 일상 속에 내재된 기억의 특성을 알려준다. 기억은 다소간 익명적이고도 보편적이다. 단순화되고 패턴화 된 도시 이미지들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드러내며, 개인에게 상처를 입히곤 한다. 기억과 상처는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전시장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작품 [first accident]는 제목 그대로,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때 겪었던 사고에 대한 기억이다.

급경사 진 계단과 바둑판 모양의 바닥의 일부가 위로 떠 있는 장면, 화면 위의 엉클어진 선들은 사고 당시의 충격을 표현한다.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 진 것 같은 혼란스러움과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건은 인과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원초적 상처(trauma)처럼 구체적인 내용이 생략된 채 무의식에 각인된 충격으로만 남아있다. 기억을 주제로 하는 정재호의 작품 속 시간성은 목적론적인 것도 기계론적인 것도 아니다. 시공간이 복잡하게 꼴라주, 데꼴라주 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수많은 쇼트들이 몽타주 된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서 기억은 유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노만 로도윅은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에서 ‘유기적 체제’와 ‘결정체적 체제’를 대조한다. 그에 의하면 유기적 체제에서 사유함은 자기 동일적인 존재를 지향하는 동일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반면 결정체적 체제에서 사유함은 지속적으로 열리는 생성 내에서 차이와 비동일성을 통해 개념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유기적 묘사는 대상의 독립성을 상정한다. 묘사에 앞서는 실재가 있다. 그러나 정재호의 작품은 실재를 상상하기 힘들만큼 파편화되어 있다.
그것은 비유기적 이미지, 즉 결정체적 이미지를 지향한다. 로도윅에 의하면 결정체적 이미지는 묘사에 앞선 실재가 아니라, 순수 묘사를 시도한다. 이미지는 인물이나 사물을 표상하지 않기에 혼돈스럽다. 결정체적 묘사는 대상을 대신해 지속적으로 그것을 지워나가는 한편 대상을 새로이 창조하고 마찬가지로 적절한 또 다른 묘사로 대체되며, 이는 앞서 묘사를 변경하거나 심지어는 그와 모순될 수 있다. 결정체적 묘사에서 이미지는 대상을 통해 유기적으로 충족 되거나 행동과 운동을 연장하거나 서로 연결되지 않고, 잠재적 이미지의 팽창하는 원을 형성한다. 그래서 정재호의 작품 속 기억은 플래시백처럼 선형적 인과성을 더욱 잘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거꾸로 돌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시간 기호(chronosigne)는 목적론적이지도 기계론적이지도 않다. 결정체적 이미지는 순수묘사를 통해 직접적 시간 이미지를 제시한다. 여기에서 현행적 이미지는 잠재적 이미지와 구별되지 않는다. 시간의 이미지가 결정체인 것은 그 다면성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재호의 작품은 결정체로서 표현되는 회화적 지층들이다.
출전 |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