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인 전 | 2010.12.9 - 12.31, UNC 갤러리
이혜인의 ‘빈 주소_경의선 능곡역 앞 들녘’ 전은 재개발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도시의 확장을 주변인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뉴타운 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토착적 풍경은 진보와 파괴, 유토피아와 파국을 교차시킨다. 이혜인의 작품에서 논이나 밭, 들녘과 산으로 푸르름을 내포했을 자연은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며 파헤쳐져 있다. 자연, 또는 환경이 처해진 급박한 상황은 켜켜이 쌓인 색채의 압도적인 생경함으로 쇄도한다. 자연은 늘 진보를 앞세운 인간의 생산력에 의해 내맡겨진 상태였지만, 갱신의 주기와 폭은 더욱 커졌다. 포크레인이나 타워크레인 등으로 후벼 파이는 대지는, 대지의 피부를 긁적거리는 농사나 집짓기 같은 차원의 노동과 비교가 안 된다.
대규모 개발은 그저 중성적인 풍경이 아니라, ‘공간적 형식 속에다 자본을 새겨 넣는’(피에르 부르디외) 극적인 방식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공간이 항상 사회적 권력을 담는 그릇이라면, 공간 재조직은 언제나 사회적 권력이 표현되는 틀을 재조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규모 개발은 차이의 삶을 동질화시킴으로서 상호경쟁으로 몰고 가는 공간의 수축을 야기한다. 이혜인의 작품에 내재된 어두운 분위기는 자연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착취하는 단계에 내재된 폭력성을 드러낸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그 ‘자연’에는 자연과 밀착해 살아온 토착민들의 삶이 포함된다. 자연에 대한 착취가 또 다른 인간 혹은 계급에 대한 착취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이혜인의 풍경은 그것의 사회적 원인보다는 묵시론적 분위기가 압도한다. 작품 [factory]에서 뼈대를 드러낸 집을 중심으로 일괄 작업대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상품이라기보다는 하수도로 직행하는 무엇인가를 생산한다. 화면 중앙에 난데없는 폭발과 부유물로 질척거리는 대지는 노동자와 자연을 끊임없이 고갈시킬 뿐인 생산의 이미지이다. 아크릴로 그려진 [흐르는 땅]은 생살이 노출되듯 파헤쳐진 대지가 아파트 건축 현장 가리개 입구로 쏟아진다. 줄줄 흘러내리는 물감은 비극적으로 보이지만, 가짜 나무들이 그려 있는 담장 옆으로 지나가는 행인은 무심하기만 하다.
작품 [유령선]에서 벽돌로 지어진 배는 쇄빙선처럼 얼음을 깨고 한치 앞이 안 보이는 공간을 항해한다. 그녀의 그림에서 장면의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 연출에 힘입은 바 크다. 도시 근교의 풍경들은 계속 공사 중인 도시와 마찬가지로 어지럽게 들쑤셔져 있으며, 막간의 한시적인 정지는 그 안에서의 삶을 임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각목, 양철 판, 비닐, 플라스틱 등으로 얼기설기 지어진 전시장 안 가건물은 막간극 같은 무대 위에서의 임시적 거처를 설치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이 전시의 제목인 ‘경의선 능곡역 앞 들녘’에 드문드문 남겨져 있는 장소들과 비슷하다. 이러한 가건물은 불법일 것이며, 주소 또한 없을 것이다.

자연과의 투쟁보다는 인간과 인간 간의 경쟁이 부추켜질 대단지 소비 단위라는, 새로 연출될 삶의 무대는 부가가치가 적다고 판단된 이전의 삶을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이혜인의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블랙홀 같은 거대한 구멍들은 시공간의 흔적들을 단순간에 함열 시키는 장치로 보인다. 그러나 폐기, 또는 파괴된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부유물이 되어 건설되는 중지 해체되는 중인지 알 수 없는 과도적인 풍경을 떠돈다. 무엇인가 진행 중인 광경들이 정지된 이미지는 멈추는 순간 도태되는 자본주의의 존재방식을 보여준다. 불투명한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그런 상태, 거기에는 뭔가 파국적인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불안감이 팽배하다.
현대적 의미의 진보란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바처럼, 공간의 정복, 모든 공간적 장벽의 철폐, 궁극적으로 시간을 통한 공간의 괴멸을 수반한다. 모더니티는 시간성을, 즉 공간과 장소에서 존재보다는 생성의 과정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삶이 아니라 죽음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에 있다. 작품 속 거대한 구멍은 시간과 공간의 압축과 내파에 대한 이미지이다. 이혜인의 ‘빈 주소’에는 거기에는 보이지 않고 보여지지 말아야 하는 모호한 시공간이 있다. 가속도가 붙은 자본의 흐름은 시 공간적 차이를 삭제하고, 세계가 푹 꺼져 앉는 듯한 상황을 만든다. 이혜인은 ‘시공간 압축이 가속화되는 과정’(하비)에서 일어나는 폐허를 거대한 상처처럼 드러내고 있다.
출전 | 2010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부문 지원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