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현욱

강현욱의 작품은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체험이 짙게 스며있다. 이 아웃사이더에게 언어를 비롯한 사회 구조적 차원은 적응과 치유, 때로는 거리두기와 반항의 역학관계에 놓인다. 세계화 과정은 그러한 경험을 이미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보편적 상황이 되도록 했고, 그것이 사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의 보편성을 확보하게 한다. 생활이나 예술적 측면에서의 소통 문제는 언어적 상황과 분리 불가능한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기에, 그가 자신의 작업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문화적 우세종인 지배적 언어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은 소통의 투명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가령 세계 인권선언문을 구글의 자동번역기로 돌린 다음, 이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작품은 완전히 달라진 내용을 보여준다. 미국의 상징인 코카콜라병을 빛에 흔들려 불안정하게 만든 설치 작품이나 미국적의 항공모함에 탑재된 무기를 다 지워버려 그 위용을 극도로 축소시킨 낙서 같은 작품은 도처에서 작동하는 제국의 권력을 소격시킨다. 어릴 적 교통사고 경험 때문에 자주 등장한다는 자동차 이미지는 개인을 위협하는 구조, 즉 상품화된 시스템의 총화를 상징한다. 이 억압적 구조는 일상의 사건 사고부터 제국주의 전쟁에 이르는 다양한 차원을 가진다. 그의 작품에서 견고한 지배적 구조를 파열하는 사건은 때로는 아름답게, 그러나 대부분 비판적으로 드러난다.
2. 김영숙

김영숙의 작품에서 수많은 군중이 이합집산 하는 장면이나 자연은 대상을 전유하는 지배적이고 때로는 공격적 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러한 재현적 시각은 이내 부드러운 섬유소로 변형되는 풍경이나 다양한 시점으로 개방된다. 투명 아크릴 판에 철침으로 드로잉 한 작품은 명료한 형태보다는 회화성을 강조한다. 벽면에서 약간 띄워진 드로잉 된 아크릴판은 뒤로 떨어지는 그림자와 중첩된다. 이미지의 복슬복슬한 느낌은 환영의 공간 뿐 아니라, 실제 공간을 포함시키는 복합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붓보다 더 딱딱한 니들, 캔버스 보다 더 딱딱한 아크릴 표면은 시각성에서 촉각성으로 전이된다.
드로잉 된 아크릴판을 겹쳐서 앞뒤로 보이게 한 작품은 하나의 원근법적 시점으로부터 벗어난다. 명료한 시점과 시야는 교란되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애니메이션 원화들을 가득 디스플레이 해서 회화와 애니메이션의 관계를 유추하게 한다.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회화로 끌어들이는데 군중 이미지들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군중처럼 비슷한 형태들이 모여 있음으로 잠재된 동세, 동양적인 산수풍경 구조에 내재된 다시점은 공간적 형식인 미술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아크릴판 위에 그려져 설치된 작품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시점은 사방팔방으로 열려서, 시각적 차이들은 동일자(the same)로 전유됨 없이 활발히 움직이게 된다.
3. 김지수

김지수는 자신의 작업이 반복과 차이에 대한 시선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선 반복되는 듯이 보이는 일상 속 실천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삶과 일치된 작업 속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긋는 선 안에서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음을 발견한다. 매번 긋지만 매번 차이나는 선들은 세상사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론, 자연과 생명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그녀의 작품에서 반복적인 선들은 특정한 종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미지의 생명체, 또는 생명현상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반복과 차이에 내재된 시간성은 작품 [시간지각]처럼 생명체와 산수가 연상되는 무의식적 선으로 가시화된다. 입체 작품에서 반복과 차이의 문제는, 대상을 실로 완전히 감는 행위를 통해 해석의 문제를 야기한다.
작품 [하나라도 백 개인 책상]은 하얀 털실 감은 책걸상으로, 딱딱한 사물에 생명력과 온기를 주면서 동시에 속박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신비로움이 가지는 두 가지 측면이다. 질 들뢰즈가 주장한 차이와 반복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재현의 동일성에 대한 거부이다. 두 반복 사이에 있는 차이는 부단한 탈 중심화와 발산의 운동이다. 들뢰즈는 기계적이고 재현적인 반복과 사건과 생성을 야기하는 반복을 구분한다. 전자의 반복은 개봉되고 설명되지만, 후자의 반복은 봉인되어있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술작품 그 자체처럼 무한히 다시 읽혀지기를 요구한다.
4. 김윤섭

김윤섭의 평면과 입체 작품은 완결된 형식 보다는 작가의 충동과 욕망이 그대로 분출된 거칠고 야성적인 면이 있다. 그의 작품은 예술과 사물 사이에서 진동하며, 기성의 오브제를 재구성하고 색칠함으로서 절충적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심각한 내용 보다는 ‘재미있는 감각적 상황들을 추구해’ 왔다. 아니, ‘그런 상황들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이 최근의 목표’였다. 만화과 출신으로 만화를 좋아하는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나 조각 같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형이상학적인 무게감이 있는 형식을 벗어나, 부담 없이 A4 용지에 자유롭게 그리는 식의 작업과 친숙하다.
특히 이미지에 병행되는 텍스트--가령 텍스트와 오브제, 텍스트와 회화, 텍스트와 사진 등의 결합--들은 하나의 핵심이나 본질에 겨누어지는 방식을 벗어난다. 이러한 절충적 형식에 걸맞는 내용은 [방안에서 궁상], [헤어진 그녀] 같이, 다소간 사사로운 것들이다. 최초의 참조대상의 자의성으로 인해 예술적 소통의 첫 번째 관문이라 해야 할 의미 있는 변형은 인지되기 어렵다. 그의 작품은 핵심이 없는, 또는 핵심을 찾기 힘든 텍스트들의 숲에 쌓여있다. 물론 핵심을 이루는 현실적 참조대상은 리얼리즘의 시대가 끝나면서 불확실해졌다. 모더니즘은 이를 형식의 순수성으로 보상했지만, 이후 예술에서 사물로의 추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들을 남겨놓는다.
5. 임성희

형태를 구획하는 명확한 선과 색을 가지는 임성희의 작품은 이미지가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회화적이기 보다는 삽화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소통의 용이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소재주의라는 위험도 따른다. 형식이 고정되어 있는 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한정 있다는 것이 다양함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돼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되는 내용은 세상사에 대한 해학과 풍자이다. 세상에는 기쁜 일 보다는 고통스러운 일이 더 많기에 유머는 블랙 유머로 기울곤 한다. 작가 말대로 웃기긴 하지만, 결코 웃기지만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만화적이고 삽화적인 형식에 실린 이야기들은 인간성과 자연을 파괴하는 전쟁같이 무거운 내용도 가볍게 다가오게 한다. 돼지가 주인공으로 나선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사의 모순과 갈등이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 간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욕망에 내재된 허구적 속성은 무한한 상상력과 동행한다. 많은 작품에서, 웃기거나 심각한 내용을 전달하는 주인공인 돼지는 상황에서 벗어나 있다. 유머 자체가 상황에 대한 거리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미학적 현상이다. 상황으로부터 초탈한 제3자적 입장을 가지는 주인공이자 화자가 그 스스로 결코 초월할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가 될 경우--가령 수백만 마리의 돼지가 살 처분 된 이 땅에서 돼지는?--전혀 다른 어법을 필요로 할 것이다.
출전 | 대전 시립 미술관 2011 청년 작가-NEXT CODE 워크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