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합리화와 주체화 사이의 대화
피카소와 모던 아트 전
| 2010.10.26 - 2011.3.1, 덕수궁미술관 |


‘피카소와 모던아트’전은 비엔나에 있는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 전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후반까지 이르는 근대미술작품 121점이 출품되었다. 전시제목에는 ‘피카소’가 들어가 있지만, 그것은 피카소가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부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전시에 포함된 피카소의 작품들은 ‘모던 아트’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그의 대표작이 아니다. 반면 피카소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는 브라크가 협업한 1909년부터 1911년까지의 분석 큐비즘이라는 짧은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브라크와 일심동체가 되어 다양한 시점으로 배열된 작은 면들과 그것들의 짜임으로 구축된 촉각적 공간을 구현하였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바탕으로 모던 페인팅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그것은 기존의 회화어법에 내재된 환영적 체계를 무시하면서도 고체성에 대한 감각을 전달한 세잔의 방법을 계승한 것이기도 했다. 현대성은 모던아트가 전개된 토대이다.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지나간 미래]에서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현대적’이라는 단어를 빈번히 사용했는데, 그것은 부르주아의 발흥, 경제적 성장, 자본주의의 확립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현대성은 ‘모든 사회적 상태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확실성과 운동, 생산방식과 교통방식의 전복’(마르크스)에서 기인했다. 새로운 발명품들이 일상생활에 들어오고, 동시에 제국주의와 대규모 계급투쟁, 국제적 긴장이 시작된 것이 현대이다. 그러나 현대성을 경제적 토대라는 외적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안 된다. 알렝 투렌은 [현대성 비판]에서 흔히 이성과 세속화의 발전으로만 이해되었던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즉 현대사는 직선적인 과정, 즉 자기 생산적이라 가정된 합리화의 과정만이 아니다.




세속화는 탈주술화 된 세계의 반에 해당될 뿐이며, 나머지 반은 인간이 닿을 수는 없지만 항상 현존하는 대상으로, 초월적 주체에 대해 호소하는 세계이다. 예술의 형식으로서의 모더니즘은 후자에 속하며 모더니티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투렌은 자연의 법칙에 부합된 이성이 창조한 객관세계와 개인적 해방에 대한 요구로서 주관세계 사이의 분리가 바로 현대성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현대성이 주술과 성례의 세계와 결별하고 그것을 두 가지 힘, 즉 이성과 주체, 합리화와 주체화라는 두 가지 힘으로 대체했다고 강조한다. 현대성의 역사는 이미 그 시작부터 분열되어 있었다. 현대성의 역사는 합리화와 주체 사이의 대화의 역사가 된다.

로베르 들로네의 [공기, 쇠, 물-벽화제작을 위한 습작](1936-37)은 추상양식을 정립한 오르피즘의 창시자의 작품으로, 벽화라는 기념비적인 형식에 표현된 공기, 쇠, 물은 근대적 교통수단인 비행기, 철도, 배를 암시한다. 큐비즘과 추상의 형식적 장치들과 더불어 대중들의 일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은 근대의 발명품이 표현된다. 여기에서 모더니즘적 추상과 모더니티의 역동성이 결합된다. [미의 세 여신](1912)같은 고전적인 주제조차도 현대적인 배경과 맞물려 표현된다. 또한 현대는 전통이 재 발명된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유구한 전통의 산물인 듯 보이는 역사들은 제국주의적 경쟁 속에서 민족(국민) 국가로서의 자의식을 각성한 19세기 역사주의 시대에 재정비 된 ‘만들어진 전통’(에릭 홉스봄)이 대부분이다. 근대 미술가들 역시 전통에 몰두했는데, 그 전통은 근대화를 통해 개시된 세계화에 걸맞게 꼭 서구적 기원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청동으로 주조한 두 개의 납작한 판을 직각으로 교차해 만든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받침대 위의 갸날픈 흉상](1954)은 ‘아멘호텝’이라는 파라오의 이름이 부제로 붙어있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로부터 영감을 알려준다.

자코메티의 또 다른 청동 조각상 [받침대 위의 네 여자](1950)는 영원을 응시하는 고대의 여사제이자 거리에 줄지어 선 창녀들을 비롯한 도시의 여성들이다. 오르피즘에 참여한 초기 추상화가 프란티섹 쿠프카의 [초록과 파랑](1921-23)과 [상승](1922-23)은 생물의 유기적 성장, 인도의 고대 사원과 미국의 마천루 등이 압축되어 있으며, 구성주의적 화면을 보여주는 류보프 포포바의 [회화적 건축학](1918)은 프랑스 입체주의와 이탈리아 미래주의는 물론, 러시아의 민속 색채와 붉은 색 러시아 혁명을 동시에 상징한다.




인상파, 표현주의, 입체파 등 근대미술의 주요 흐름 속에서 다양한 기원을 가지는 이국적 타자의 모습은 모더니티가 추동하는 단선적 역사주의에 대응하는 또 다른 역사들에 해당된다. 근대예술가들에게 요구된 동시대성은 일상의 재발견으로 나타난다. 동시대성에 대한 요구는 역사나 신화 등에 몰두하는 관학파와 달리, 지금까지 그림으로 표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주제에 새롭게 눈을 뜨게 했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요구와 함께 나타난 예술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요구’(린다 노클린)이며, 이 요구에 의해 일상은 기념비적 스케일로 재현되었고, 기법과 매체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갔다.

미술사가 김영나는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에서 근대사회나 문화를 특징짓는 다양한 활동과 창조적인 사고가 결집되어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를 1880년경으로 보며, 그 때 모더니즘은 서구의 오랜 역사에서 발전된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경험을 순수한 심미적 표현으로 대치시켰다고 지적한다. 심미적 표현은 예술 언어의 혁명을 이끌었는데, 언어는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니지만, 과거의 신-인간중심주의를 구조와 체계라는 보다 중성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모더니즘은 관학파적인 주제로부터 벗어나 타자(일상, 이국성)를 지향하였고, 이러한 전환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발견했다. 인상파는 이 국면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인상파 화가인 폴 시냑은 [베니스의 핑크빛 구름](1909)과 [앙티브의 탑들](1911)에서 미술언어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시적 표현을 결합 시킨다. 전시된 작품에는 인상주의에 보다 강한 대비를 통해 야수파적인 색채를 첨가한 앙리 마티스 [패럿 튤립](1905), 그리고 엄밀한 자연주의적 관찰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모든 구상적 경계들을 해체시켜 버린 역설적 결과를 낳은 클로드 모네의 [장미정원이 있는 집](1925)이 있다.

전래된 기법이나 소재로부터 벗어나 신선한 자연으로부터 출발한 인상파의 성과를 인정하였지만, 그것에 좀 더 안정적인 구조를 부여하려했던 폴 세잔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3차원 세계를 평면의 사각형이라는 그림의 용어로 번역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앨런 보네스)였으며, 세잔은 닮음 보다는 각 형태와 패턴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세잔의 작품에서 뒤로 물러나는 선 원근법은 사라지고, ‘그림을 얕은 상자처럼 다뤄서 화면 뒤로 공간을 몇 겹으로 표현하는 방식’, 즉 ‘소실점이 없는 대신 공간이 평행하게 몇 겹의 층을 이루며 색채와 색조로 구별’(앨런 보네스)된다.

세잔은 자신의 뜻대로 색채의 가감방식을 통해서 입체감과 원근감을 부여했다. 그는 전통적인 공간적 깊이 감을 그림이라는 인공물과 조응하는 불연속적이고 평평한 면으로 정렬한다. [노르망디 농장](1885-86)과 [대 수욕도](1896-1897)는 세잔이 풍경이나 자연 속의 누드라는 전통적 주제를 현대적으로 번안한다. 대자연 속에 벌거벗은 인간을 그린 세잔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이 모순됨 없이 화해하는 유토피아를 향한다.

세잔은 동료 화가들에게 ‘모든 감각의 강렬한 표현들을 압축해 하나의 유일한 과정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 즉 ‘모든 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림을 위한 정확한 공식’(고갱)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모은 근대 화가였다. 비엔나에 소재한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은 독일어 문화권에 속해서 그런지, 대략 마네나 세잔을 시작으로 서술되는 ‘모던아트’의 흐름에서 약간 변방에 놓였던 표현주의 계열의 작품이 많이 있었다. 특히 전시에는 독일 표현주의의 드로잉과 판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서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미술사적인 흐름을 수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시시콜콜한 재현적 디테일 없이 흰색, 파란색, 녹색으로 그려진 에드바르트 뭉크의 [겨울풍경](1915)은 인상이 아닌 기억으로부터,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출발하는 표현주의 미학의 정수이다. 표현주의에는 소외를 야기하는 도시풍경과 이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원초성에 귀의하려는 이상주의적 경향이 공존한다. 에밀 놀데의 [달빛이 흐르는 밤](1914)에 등장하는 원초적 대양성, 키르히너의 [여인의 누드](1909)나 [해변의 누드 청년과 소녀](1913)에 나타나는 원시적이고 신비적인 모티브에는 ‘독일적인 정신성’(괴테)이 내포되어 있다. 표현주의를 특징짓는 날카로운 선들은 입체파의 영향이자 고딕적 전통의 결과물이다. 이후에 청기사파나 추상 등으로 이어진 흐름 속에는 모더니티의 합리화에 대응하는 모더니즘의 주체화가 극대화되어 있다.

출전| 아트 인 컬처 201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