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 의존하여 진화해온 인간에게 빛은 단순히 자연의 한 요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무리 소비되어도 줄지 않는 빛은 대가없이 증여된다. 빛은 무한한 주고받음을 가능케 하는 상징적 교환의 근원이며 원형이 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빛은 인간의 상징적 우주의 중심을 차지해 왔으며, 종교를 비롯한 형이상학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진리의 은유로서의 빛]에서 통일과 다양, 절대와 제약, 근원과 소산 등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모두 빛에서 한 가지 모델을 구했다고 말한다. 형이상학의 역사는 빛의 은유를 통해 궁극적인 주체를 가리키는 준거를 확보해왔다. 빛이 충만할 때 빛은 진리가 충현할 정도로 압도적이고 명약관화한 명백함을 창조한다. 빛과 어둠의 대조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만들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플라톤의 철학이다.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나아가는 교육적 인간의 역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빛의 역사로 변모한다.
어두운 동굴을 탈피하는 것은 신성한 앎의 기본 관념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존재의 빛으로서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을 선(善)과 동일시된다. 선은 다른 모든 것들에 가시성과 대상성을 부여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어떤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지닐 수 없다. 빛은 그것이 가시적이게 한 것들을 통해서만 보여 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초월의 기미를 띠게 된다. 빛의 형이상학은 근대과학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토마스 플린은 [푸코와 시각의 붕괴]에서 데카르트가 명석함과 판명한 지식을 위해 의존했던 ‘자연의 빛’은 중세 및 고대의 사상에 유서 깊은 선례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자연의 빛은 이성의 빛이기도 했다. [진리의 은유로서의 빛]의 논지처럼, 빛의 은유가 이미 그 안에 빛의 형이상학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상징계에서 형이상학이 퇴색됨에 따라 빛의 상징적 위상도 달라지게 된다.
중세를 지나고 근대를 통과하면서 빛이자 진리는 스스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계몽(enlightenment)과 함께 대상의 영역 쪽으로 비춰진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만물을 지배하는 매체로서의 빛이 목표가 정해져서 주사되는 조명 광선으로 변화를 지적한다. 빛은 조명(illuination)처럼 조절되고 조작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시선의 고정, 시각의 조립이 지배하는 그 세계는 그 구조상 다시금 동굴과 가까워진다. 조명이라는 기술적인 빛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인간으로부터 타자적인 시각을 추방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의 비약적인 도약이 일어난 근대에, 밤낮없이 기계를 돌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량 생산물을 밤낮없이 소비하기 위해 인공조명이 더욱 확대된 이후, 그 특성상 빛을 매개로 작용하는 시각적 앎과 밀접한 조형 예술 역시 근대적 혁명을 이루었다. 근대예술이 먼저 주목한 것은 동시대성이었다. 미술에서의 모더니티, 즉 동시대성의 간취는 중산층의 여가가 펼쳐지던 도심의 강가나 교외의 휴양지, 그리고 극장이나 카페 같은 장소에서 빛나는 자연광과 인공광을 포착함으로서 이루어졌다.
바깥을 향해 활짝 열린 신선한 회화의 창은 산업혁명에 의해 파괴되어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환경이 더욱 칙칙하게 변할 무렵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낙선 전시라는 문화적 스캔들 속에서 근대회화의 출발점을 알린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당시의 평자들에게 단지 벗은 여자와의 소풍이 아니라,‘대담하면서도 미묘하게 전개되는 풍경의 전이, 넓은 붓질로 채색한 견고한 전경, 밝고 섬세한 배경, 빛을 담뿍 받아 넓은 면으로 모델링 된 탄탄 한 살, 유연하고 강한 물감, 특히 배경의 녹색 잎 사이로 보이는 희고 작은 얼룩....이토록 정확하고 간결하게 언급된 거대하고 섬세한 구성 전체, 즉 자연에 대한 관심’(필립 해머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되었다.
마네의 작품을 옹호했던 문인 스테판 말라르메 역시 어느 하나 고정된 것이 없는 마네의 그림 세부를 주목하면서 ‘그림을 비추는 환한 빛이나 그림에 드리워진 투명한 음영 역시 일순간 스쳐가는 것임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반사광 때문에 늘 다르게 보이면서도 늘 동세와 빛, 생명력 고동치는 재현된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에 감탄했다. 마네는 아카데미 미술을 특징지웠던 칙칙한 신화화나 역사화를 넘어서 화면에 빛을 끌어 들였다.
아는대로 배운대로 그린 모델링 중심의 회화가 아니라, 중간 톤을 없애고 빛과 그림자를 바로 대비시키는 채색 방식은 생동하는 현실을 포착할 수 있게 했다. 마네가 열어젖힌 길을 따랐던 대표적 인상파 화가 모네는 평생 동안 빛과 대기의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쫒았다. 짤막하게 끊어지는 붓터치로 이루어진 순색들이 병치는 화면에 빛을 재현 했다기 보다는 빛을 끌어들인다.
앨런 보네스는 [모던 유럽 아트]에서 순색 물감을 큼직하게 두드리듯이 쓴 모네에게, 풀 같은 자연적 대상은 더 이상 녹색이라는 고유색이 아니라, 빛에 의해 회색, 노란색, 또는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지적한다. 그의 그림에서 빛은 ‘만물을 비추는 스크린’(마이클 리비)이고, 이러한 빛으로 인해 대상의 고유색과 형태는 해체된다. 필촉 분할과 보라색 음영으로 이루어진 그의 화면은 성당 건축 같은 회색빛 돌덩어리의 집합에서조차 ‘쉴 새 없이 흔들리는 프리즘 같은 표면을 찾아내 밝은 빛으로 짜인 별천지로’(마이클 리비)를 만들었다.
자신의 눈만 믿고 자연을 충실하게 따른 모네의 방식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추상적인 색채의 막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빛을 그 구성요소로 분해하고 다시 화폭에 조합하는 방식을 통해 자연주의에서 추상으로 이끌었다. 모네는 당시에 유행하던 자연주의 미학, 즉 실제로 보이는 것만을 화폭에 담는다는 원칙을 받아들여 자연광 속에서 작업을 했지만, 확실한 모든 것은 빛 속에서 녹아버렸다.
말라르메는 생생하고 가벼운 터치로 순색을 화폭에 담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대기라는 매체의 부활을 본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산재하는 빛이 만물과 뒤섞이며 생동감을 발하고 그림의 세부들은 어느 하나 고정되지 않는다. 인상파 화가들은 그림자의 묘사에 있어서도, 갈색조로 재현되었던 관습적인 처리 방식에서 벗어나 빛과 색채를 발견한다. 빛에의 열광은 밤의 세계에도 이어졌다. 극장이나 캬바레 같은 유흥가에서 가스등 아래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나는 인간 군상들을 그린 로트레크의 그림이 그러하다.
그는 마스크를 쓴 듯한 기이한 왜곡 상을 만들어냈으며, 인공조명이 밝혀진 반 고흐의 실내 풍경 역시 범죄나 광기가 일어나기 직전의 분위기가 내재되어 있다. 도시적이고 격렬한 주제에 탐닉한 미래파의 그림에서 전기불빛은 그들이 신봉했던 기계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보치오니는 미래주의 선언에서 ‘한정된 선과 닫힌 형태로 된 조상에 대한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폐기를 선언하자. 동체를 찢어 열어젖히고 그것을 둘러싼 주변의 것들을 그 속에 집어넣자’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동원되어야할 새로운 재료 중의 하나로 전기조명을 지목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광학적인 또는 분석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전체적인 체험을 표현하려는 것’(보치오니)이다. 미래파는 인상주의와 입체파의 기법을 받아들여 구식의 상징주의를 벗어남으로서 기계의 산물로서의 빛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자연광이든 인공광이든, 빛에의 주목은 근대회화를 추상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앨런 보네스는 들로네의 [원반](1912-13)을 프랑스 화가가 최초로 그린 완전히 대상없는 그림이라고 기록한다.
이 작품의 ‘해와 달’이라는 부제를 가지는데, 초기 추상이라 불리는 들로네의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빛, 즉 모든 생명과 에너지의 근원이며 또한 모든 색의 근원이기도 한 빛의 그림이다. 본격적인 추상으로 성큼 나아간 칸딘스키의 경우, 사물과 풍경은 더 이상 외부에서 빛을 받지 않으며, 빛은 색 그 자체에서 나온다. 근대 화가들에게 빛은 공간적 깊이 감이 아니라 평평함을 강조하게 했고,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평평한 표면이라는 모더니즘의 기본 신조를 낳게 된다.
출전 | 미술세계 201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