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선, 매화는 어떻게 격(格)이 되는가.


전통의 현대적 변용. 장르가 파괴되고 형식이 허물어지는 시대에 이 주제는 곤혹스럽다. 지금 새삼 이 주제를 거론한다는 것, 이 주제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 더욱이 자신의 작업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이 주제에 결부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되었고, 때로는 용기마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시대적 패러다임에 역행한다는, 분분한 선입견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입견이란 것이 혹 풍문은 아닌지, 시대적 패러다임이 쉽게 변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혹 변했다고 서둘러 믿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의 삶을 견인하는 것은 현대인가 전통인가. 의식을 생각하면 현대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전통에 얽매여 있는 것 같고, 여전히 전통에 지배를 받는 것 같다. 전통이 없는 현대도 없고, 과거가 없는 현재도 없다. 혹 같은 시대의 기층이 전통이고 그 표층이 현대인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현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다시,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일은 분분한 선입견에 맞서야하는 일인 만큼 그 실천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은 특히 한국화의 핵심과제였고, 어느 정도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그 해법은 대개 한국화의 전통적인 재료인 지필묵을 재해석하거나 아예 지필묵을 버리고 다른 재료로 옮아가는 것에서 찾아진다. 그래서 지필묵을 고수하는 것은 단순히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런 만큼 그 어려운 일을 실천해냈을 때 그 성과는 더 값질 수밖에 없다.

이 논의 한가운데 문봉선이 있다. 그는 지금껏 그래왔듯 지금도 여전히 지필묵을 고수하면서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방법을 찾는다. 등단 초기에 그는 시장에 줄지어 기대 서 있는 짐자전거를 수묵으로 그려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한 현실인식을 다루었다. 그렇게 주목받고 등단한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줄곧 북한산과 섬진강 등 주로 우리 산하를 그려오고 있다. 그렇게 그려진 산천은 세세하고 뚜렷한 형체가 두드러지기보다는, 그래서 어떤 성격이 부각되기보다는 간결하면서도 암시적인 구도와 담담하면서도 여린 먹빛이 어우러져 짙은 서정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서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서, 그의 그림으로는 강 그림이 제격인 것 같다. 때로 그가 그린 산 그림마저 강 그림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산마저도 강물의 유수에 같이 흘러가는 것 같다. 강물의 유수 위로 기껏해야 서너 가닥의 버들가지나 매화가지가 드리워질 뿐인 그의 그림에선 그려진 것보다 여백이 더 많은 말을 하고, 드러난 것보다 암시가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여백과 암시야말로 그의 그림의 핵심이며, 그 핵심은 매화를 소재로 한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매화는 사군자 중 으뜸이다. 긴 겨울을 감내한 것으로 인내와 기다림을 상징하고, 추운 겨울을 견뎌낸 것으로 세파에 휘둘리지 않는 기개를 상징하고, 화려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화려한 미적 성취를 상징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비와 군자의 이상이나 귀감으로 여겨졌었다. 이쯤 되면 매화는 그저 꽃 이상의 인격체라고 할 만하다. 결국 매화 그림에는 단순한 꽃나무 이상의 격이,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격이 담겨져야 한다. 매화그림이 어렵다는 것은 아마도 꽃나무 자체가 아니라, 이처럼 그 속에 담겨진 격을 그려내기가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매화 그리기의 어려움을 작가는 옛 선인의 뜻을 받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묵매는 긴 세월 속에 풍상을 겪은 듯 그려야 하고, 오래된 줄기가 뒤틀려 기괴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 곧고 맑은 가지와 어린 햇가지에 밴 힘이 있어야 하고, 드문드문 꽃이 피어있게 그려야 제격이다. 즉 묵매는 그 속에 긴 세월을 견뎌낸 풍상의 상흔이 배어있어야 하고, 그 상흔이 뒤틀린 몸통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 가지는 곧고 맑아야 하고 특히 어린가지는 햇가지다운 생동감으로 넘쳐야 한다. 이렇게 해석해놓고 보니 불현듯 나무는 오만가지 세대를 한 몸으로 산다는 생각이 든다. 몸통 아래쪽의 노매와 줄기 위쪽의 햇매(새매)가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드문드문 꽃이 피어있게 그려야 한다. 화려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화려한 미적 성취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매화그림을 보니 꼭 그렇다. 따로 밑그림 없이 화면에 바로 그리는 것인 만큼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작가가 그림 외적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서예공부 특히 초서가 이 정신집중에 큰 도움이 되었다. 초서의 분방한 서체가 마르고 뒤틀려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매화나무의 형태로 나타나고, 특히 화면 내에서의 공간감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부 서양화의 기법 혹은 재료를 도입하기도 하는데, 꽃을 그릴 때 아크릴 물감을 손톱에 묻혀 꽃잎을 표현하고, 가녀린 꽃술을 그릴 때는 이쑤시개를 사용해 그렸다.

여기에 은근한 달빛을 표현하기 위해서 배채법이 더해진다. 아마도 달빛 아래서 맡는 매향이 적격이라는 옛 선인들의 시상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일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중첩되면서 화면에는 일종의 공간감이 생겨난다. 화면 뒤쪽에서 배어나는 달빛, 화면에 스며든 습윤하거나(농묵) 깔깔한(갈필) 먹빛의 나무, 그리고 나뭇가지 끝에 불투명한 막을 형성하면서 오롯이 얹힌 꽃이 어우러져 생동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텅 빈 화면이 일종의 배경역할을 하면서 매화나무를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하고, 더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이번 전시(2.9-2.27. 공아트스페이스)에는 작은 족자그림에서부터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매화그림들이 선보인다. 그림들이 얼핏 어슷비슷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형형색색의 자태를 자아낸다. 세월의 풍상을 뒤틀린 몸통으로 견뎌낸 노매와 죽죽 뻗은 가지에 힘이 밴 햇매(새매), 종이에 농묵으로 침윤된 부드러운 질감의 매화와 질박한 광목천 위에 거친 필치로 그려진 매화, 닥지 위에 점박이와 어우러진 소박한 매화와 아사천에 덧그려진 단아한 자태의 매화에 이르기까지 매화의 천태만상을 보는 것 같고, 매화로 은유된 격의 천변만화를 보는 것 같다.

나아가 작가는 일종의 상황을 도입해 연출을 꾀하기도 하는데, 어스름 달빛 아래 매화가 어우러지기도 하고, 강물 위로 서너 가지의 매화 줄기가 수줍게 드리워지기도 하고,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담벼락과 매화가 서로 마주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이든 간결하면서도 자유분방한 필치가 느껴지고, 여백이 주는 암시의 묘미가 감지된다. 특히 여백은 화면의 가장자리에서 잘려진 구도와 함께 공간을 화면 외부로까지 확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매화가 품은 격을 읽고 그 감회를 그림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 특히 조형적으론 공간 감각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동양화는 사군자에서 시작해 사군자로 끝나는 것이며, 사군자는 매화로 시작해 매화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매화가 기초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정점에 이르게도 한다는 말이다.

매화그림은 재료해석, 조형능력, 공간감각, 그리고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한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이며, 나무의 원리(나무의 생태 혹은 생리에 대한 이해), 조형의 원리(여백과 공간감각능력), 붓과 먹의 원리(습윤한 기운과 마른 기운)를 다 깨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어떤 경지라고도 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매화그림은 말하자면 작업의 시점이면서 종점인 것.

사실상 그의 매화그림은 1991년으로 소급된다. 화보로 만난 매화사진이 계기가 돼 이후 순천 선암사, 구례 화엄사, 전남 광양 매화농원, 지리산 단속사 등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중국 난징의 매화산, 일본의 오사카 성 매원, 후쿠오카의 신사와 농원에 이르기까지 매화로 유명한 곳이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두루 발품을 팔았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축적된 공력이 이번 전시에서 비로소 개화한 것. 작가는 지금도 매년 1,2월이면 어김없이 매화사생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