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과 열린 공간


도윤희의 그림은 연필로 그려진 형태와 그 흔적들이 투명한 피막으로 한 꺼풀씩 덮여가며 형성된 중층의 막들로 이루어져 있다. 땅 깊숙이에서 출토된 식물성 잔해인 흑연은 새로운 바탕을 마련해주는 회화 재료로 덮여진다. 그것은 화석이 만들어지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켜켜이 간직하고 있다. 화석에 대해 한동안 생각한 이후에 연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거꾸로 돌리면, 바니시로 덮여진 투명 막은 창처럼 계속해서 열린다. 마치 터치스크린처럼 창속의 창이 연이어 띄워지는 구조이지만, 코드화와 무관한 표면들은 이전 것들을 완전히 삭제하지 않고 차이들을 보존한다.

2008년 말, 몽인 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강한 인상을 준 작품 아닌 작품은 가로 7미터가 넘는 대작들 한켠에 자리한 오래된 나무 책상과 알전구였다. 아직도 낭만주의풍의 화가 상이 지배적인 한국의 화단에서, 자신의 작업과 삶에 대해 차분히 정리하는 행위에 작품 제작 못지않은 비중을 부여할 만큼 성찰적인 화가는 매우 드물다. 도윤희는 손이 게으른 관념주의와 몸만 혹사시키며 명품 만들기에 열중하는 화단의 일부 흐름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2008년 작가 노트에서는 “속도를 늦추고 흩어져 있는 구석들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 이것은 나에게 자유의 한 형태”라고 결론 내린다. 또한 작가는 “어둠 속을 헤쳐 가면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표면 내부의 미를 발견해서 보여주는 것이 내 작품의 기조”라고 밝힌다.

도윤희의 작품에서 흐르는 시간의 이미지는 물리적인 밤과 낮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을 가리킨다. 그녀는 자기 그림의 시간성은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성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시간성으로, 사유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성찰의 시간대는 주로 저녁이나 밤이다. 시나브로 어두워진 밤 속에서 작가는 또 다른 밤을 본다.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두움 속에서는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 어둠은 경계 없는 광대한 표면이며,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이다. 도윤희는 많은 작품에서 밤과 낮이 명확히 구별될 수 없는 순간을 주시한다.

밤 속에 낮이, 낮 속에 밤이 있는 것이다. 밤, 밤 속의 밤, 또는 그 밤이 다가오는 시공간대에 대한 성찰은 화가로 하여금 가시성과 그 한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2005년의 작가 노트에서 도윤희는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8년에는 ‘눈이 없는 시선’이라는 부제로 전시를 연다. 그녀의 작품은 여러 겹의 표면이 중첩된 화면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들이 작동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도그마를 통해서 화면은 이미 동일화된 추상적 관념으로 선점되어버렸다. 반면 도윤희의 작품에는 이질적 타자로 간주된 자연이 호출된다. 화면에는 원근감이 있지만, 시선이 주파할 정도의 깊이가 없으며, 그나마 있는 환영적 공간 또한 거듭되는 베일 치기에 의해 매번 무화된다.

도윤희의 화면은 전형적인 원근법적 공간과 달리, 균질적이지 않으며 직선은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어느 시점에 고정된 단일한 눈이 부재하다. 불규칙적이고 단속적인 움직임은 명확한 대상화나 주체화를 동시에 거부한다. 주체나 객체는 작가가 둘러친 무한한 베일처럼 겹겹이 헤쳐 나가는 과정 중에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불투명성과 불명료성은 의도적인 난해함이나, 아예 ‘해답 없음’이라는 해답을 내놓는 불가지론과 다르게, 기꺼이 즐길 만한 수수께끼가 된다. 그것은 고정된 이상적 정점이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신체를 전제한다.

관념화된 정적인 시선에 불안정한 몸이 끼어드는 것이다. 도윤희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 이러한 모호한 바탕은 뭐라 특정 지울 수 없는 경험과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투명한 매체인 바니시를 이용하여 수많은 층을 덧입혀가는 제작 방식은 경계를 넘나든다. 그것은 한계에 충실한 미를 넘어서는 숭고의 단계를 예시한다. 도윤희의 작품은 중층적인 표면, 하나의 표면에 안착된 형상조차도 명확한 경계를 잃게 만드는 방식, 세포처럼 윤곽 지어진 형태가 등장할 때에도 끊임없는 자리바꿈이 일어날 듯한 잠재적인 운동감을 통해, 경계를 지으면서 그 경계를 넘어선다. 이러한 실행은 궁극적으로 ‘숭고’나 ‘미학’이라는 범주 자체도 파열시킬 것이다. 자연의 구조와 형성력으로부터 온 형상들, 그리고 흐르는 시간과 닫혀 있지 않은 공간을 보여주는 도윤희의 작품은 미적 재현이 아닌, 숭고한 제시와 관련된다.

출전 | 아르코 미술 작가론(한국 문화예술 위원회) 축약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