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반, 국내외에서 학업을 마치고 200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시작한 이형구는 공개된 전시마다 미술작품 전시라기보다는 실험실이나 자연사 박물관 같은 분위기로 인해, 당혹감과 더불어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곤 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과학 기술 못지않게 엄밀하고 체계적이다. 2004년 성곡 미술관에서 열린 첫 전시에서는 의학 실험실을 연상케 하는 냉랭한 기구들이 ‘미술 작품’들을 대신해서 진열되었고, 2006년 천안 아라리오 미술관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미래파풍의 첫 개인전에서 수천 년을 뒤로 돌린 듯한 고고학적 풍경이 펼쳐졌다.
이형구가 지금 하는 작업과 가장 유사한 모델은 과학 기술과 예술을 총괄한 만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물이다. 작품의 외적 인상과 달리, 이형구의 정교한 작품들은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미디어를 활용한 산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로 테크(Low tech)’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자연 과학자와 달리, 광범위한 자연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놓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것은 근대의 인간 중심주의로의 복귀 같은 것은 아니고, 인체를 중심으로 조형적 사고를 전개해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각가로 교육 받은 흔적이기도 하며, 인체를 소우주로 간주한 동양적 사고방식을 따라, 관상학이나 골상학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관심과 닿아 있는 부분이다.
첫 개인전에서 사이보그를 방불케 하는 보철기구들이나 두 번째 개인전에서 캐릭터의 골조를 재현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을 합성시킨 작품들은 모두 전통적인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실행들이다. 대학 재학 중에 25개의 조각들을 알루미늄 조각으로 연결해서 로봇 같은 형상을 만든 작품 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키네틱아트로 나아갈 수도 있었던 이형구의 작업은 1998년 미국에 유학 가서 키네틱 아트의 더 진보된 예들을 발견하고 방향을 돌린다. 그는 기계 구조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정적인 것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의 이형구의 작품들은 자족적인 대상이 아니라, 몸과 결합함으로써 몸을 변형시키는 장치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것을 착용하고 움직이면 감각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었다. 그렇게 결합된 인간과 기구들은 주체도 객체도 아닌 모호한 범주가 된다. 인간의 기능을 외계로 확장시키는 기계는 분명 무엇인가 더 활발한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을 터인데,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 고립되어 있고, 마치 낯선 혹성에 불시착한 이방인의 모습이다. 이형구의 작품은 시간 순서에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혼재되어 있던 양상이 어느 시기에 집중적으로 완성되는 방식이다. 2005년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되어 연 개인전 《Animatus》(2006)는 만화 주인공이라서 인체비례는 큰 머리와 짧은 몸통을 가지고 있으며, 과장된 감정 표현과 자세를 특징으로 한다.
이후에 벅스 버니, 코요테와 로드러너, 도널드 덕, 그리고 톰과 제리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골격 구조가 만들어진다. 작가는 아니마투스 시리즈에 대해 ‘실재하지 않는 만화 캐릭터의 해부학적 근거에 대한 탐구’라고 정의한다. 2007년에 참가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2004년의 《The Objectuals》전에 출품한 작품들과 나란히 하얀 방과 검은 방으로 연출하였다. 검은 바탕에 설치되곤 하는 밝은 색의 뼈들은 살과 피부 위에 새겨지는 표정이 없다보니 더욱 과장된 역학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뼈 조각 하나하나를 다 만들어서 재구성하는 일은 현장의 고고학자나 복원전문가의 작업보다 더 난이도가 높다.
그것은 실재를 발굴하거나 탈루된 부분을 보충하는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모두 창안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개인전이 인간과 기계의 접합이라는 사이보그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면, 두 번째 개인전은 인간과 동물의 접합이라는 고생물학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아니마투스 시리즈는 그 이전의 사이보그를 연상시키는 보철 작업에 비해 생물학이나 고고학 같은 분위기로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과학의 패러다임이 물리학 중심에서 생물학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변화에 상응한다. 기계나 동물 등 인간의 타자로 간주되어왔던 것들을 다시 인간에게 접목시키는 그의 작업들은 새로운 주체성의 생산과 발명을 위한 예술적 실험이다.
출전 | 아르코 미술 작가론(한국 문화예술 위원회) 축약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