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5.1, 공간화랑
임승천은 거대한 배나 고래의 모습으로 현대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상징하는 구조를 표현하며, 동승자들의 암울한 공동 운명을 숙고하는 아웃사이더 같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인류 사회의 기원부터 종말에 이르는 거대서사를 제시한다. 이 전시에서 천정이 가장 높은 장소에 설치된 거대한 눈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붉은 천막은 제국의 권력이 작동되는 재현의 무대이며, 무대를 주시하는 잠재된 공동 운명체를 예시한다. 3단으로 설치된 무대장치는 계급으로 나뉜 현실의 질서와 동형적이다. 밑바닥에 깔려 노동하는 다수, 다음 칸에 젠체하며 허리춤을 흔드는 중간 관리자들, 맨 위 칸에 이 성스러운 질서를 찬미하는 소수의 지배자들이 그것이다. 관절 인형으로 연출된 사람들은 위로부터 번뜩이는 에너지를 전달받으며, 구조를 총괄하는 힘이 집행되는 기계들이다.

아무리 먼 곳도 아무리 어두운 구석도 모두 바라 볼 수 있을 법한 눈은 마치 태양처럼 빛나며, 바라봄이라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권력을 자동적으로 작동시킨다. 어둑한 지하공간에서는 칼처럼 번득이든 금속 파편들이 비늘처럼 꽂혀 있는 거대한 물고기가 구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한 채 움찔거린다.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유익한 도구였으나 해로운 무기로 되돌아온 금속 파편들은 삶 전체를 촘촘히 감싸고 있다. 사회를 형성하는 유기적 질서의 은유인 유선형 물고기는 끝없는 마찰음을 발생시키는 코드화 된 기계이기도 하며, 난파된 배처럼 파국적 상황에 놓여있다. 규격화된 비늘은 이러한 파국을 야기한 보편적인 질서, 즉 자본주의의 경제적 생산체계이며, 수단으로 변질된 합리적 이성, 그리고 권위적 서열에 의존하는 관료주의와도 중첩된다.
작가가 전하는 우화에 의하면 이 거대한 물고기는 개인의 희망을 먹고 산다. 계속되는 우화에 의하면 주어진 것을 모두 탕진해 버린 공동체는 이 난국으로부터 탈출하려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삶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져 있으나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하는 집단은 이방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막연한 ‘유랑’(전시부제)을 떠나게 된다. 그것은 항해라기보다는 표류에 가깝다. 질곡의 구조를 탈주하는 사건은 유토피아를 향한 점진적 시간이 아니라, 불확정적인 시간에 지배된다. 그런데 공동체의 각성을 이끄는 선지자적 존재가 특이하다. 그들은 익살 광대, 반인반수의 괴물, 기형인 같이 사회의 주변인이자 타자이다. 집단에 흘러들어온 이방인은 ‘3개의 눈과 굽은 등엔 커다란 혹이 있고, 그 등엔 오래된 듯 보이는 큰 상처’가 있다. 날개의 흔적은 그를 추락이전의 이상향을 기억하는 구원자 같은 면모를 부여한다.
그러나 임승천의 작품에서 숭고한 사명을 가진 캐릭터는 영웅적이지 않다. 거세를 감춘 듯, 변변치 못한 의상과 요상한 자세를 취한 낯선 존재는 경계 위에 선 타자로, 제국의 질서를 재현하는 무대와 파국에 처해진 거대 구조 사이에 엉거주춤 서 있다. 그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과정 중의 주체이다. 이 애매한 위치는 그를 위험에 처하게도 하지만, 혼돈에 접촉함으로서 구조의 모순을 돌파하는 전(前)근대적 신화의 캐릭터이자, 타자의 복귀라는 탈(脫)근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캐릭터로 만든다.
출전; 월간미술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