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각인된 시간의 기호


도윤희 전 (3.23--4.24, 갤러리 현대)
김혜련 전 (4.1--4.24, 소마 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자연의 풍경에 기초를 둔 도윤희와 김혜련의 작품은 단순한 자연의 외관이 아닌, 그 내부에 새겨진 시간의 기호(chronosigne)를 그린다. 여기에서 공간적 범주는 끊임없이 시간적 범주로 전이된다. ‘unknown signal’이라는 부제를 가지는 도윤희 전에서 시간기호들은 얇은 피막들로 공간을 중층화 시킴으로서, ‘그림에 새긴 문자’라는 부제를 가지는 김혜련 전에서 시간기호들은 풍경을 역사화시킴으로서 이루어진다.
도윤희의 작품은 모노톤이고 김혜련의 작품은 자연색을 뛰어넘기도 하는 화려함이 특징적이다. 둘의 풍경에는 흑백과 컬러 사진의 차이 같은 것이 존재한다. 도윤희의 풍경이 보다 존재론적이라면, 분단지대를 그리는 김혜련에게 풍경은 보다 정치적이다. 그러나 관객이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정지된 한 면이 아니라, 시간에 흐름을 타는 어떤 이야기를 읽어야하는 점은 동일하다.

여러 시간대가 겹쳐진 화석 같은 표면들을 보여주는 도윤희에게 시간은 연대기적인 것이 아니라, 차이를 두고 끊임없이 회귀하는 것이다. 도윤희의 그림은 오래된 화석 같은 고색창연한 느낌을 가지면서도, 계속 열리는 터치스크린이나 인터페이스, 또는 영화 같은 움직임이 내재해 있다. 시간은 추상적 단편들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흐름 중에 있다. 바니쉬를 통해 마무리된 층은 또 다른 시작을 이어감으로서, 예기치 못한 만남과 공존이 가능해진다.

도윤희의 작품에서 시간의 공간화가 이루어진다면, 김혜련의 작품은 공간의 시간화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풍경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각종 문구들은 분단의 상처가 아로 새겨져 있으며, 여기에는 그 풍경의 과거가 회상 될 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예견된다. 기억과 망각의 교차로 직조되는 풍경 속에서, 작가는 고고학자처럼 역사의 흔적을 발굴한다.

도윤희의 풍경은 물, 햇빛, 얼음, 먼지 같은 자연의 요소들로 재구성 된다. 작품 제목 [being]에 붙여진 것처럼, 이 요소들은 존재이기도 하다. 낡은 종이 위에 색연필, 연필, 잉크 등으로 그려진 무제 시리즈에는 다양한 입자와 율동 감 있는 선들로 이루어진 자연의 요소들이 탐구된다. 시간적 요소는 일부러 낡게 만든 바탕 종이에 잘 나타나 있다. 낮과 밤으로 대별될 수 있는 시간대는 빛과 어둠으로 조율된다. 대별되는 시간조차도 한순간 고정됨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된다. 밝음에는 어둠이, 어둠에는 밝음이 내재해 있다. 도윤희의 작품제목과 작가노트는 언제나 역설로 가득하다. 작품 [백색 어둠]은 산란하는 생선 알 같은 밝은 입자들이 공간을 잠식해 들어간다.
포도 알 같은 입자들이 흐릿해지거나 흩어지려는 작품들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에서, 작가는 어둠을 ‘빛의 응축’으로 간주한다. 금종이와 색연필 사용한 작품 [눈이 내린다, 빛이 부서진다]는 환희로 산산이 흩어지는 입자를 보여주는데, 여기에서 자연의 요소는 정신과 감성의 요소이기도 하다. 입자와 파동으로 이루어진 자연처럼, 도윤희의 작품에서 파동적 요소는 날카로운 선의 흐름이 내재해 있다.

작품 [살아있는 얼음]에서 보이지 않는 중심으로부터 뻗친 선들은 동식물이나 광물의 미세 조직이 연상되며, 동시에 ‘속에서부터 얼어붙는’ 마음을 표현한다. 설치작품 [unknown signal]은 작가가 찍은 풍경 사진을 보정하여 한지 위에 출력한 것인데, 9개의 패널로 나뉘어 걸린 강 이미지는 조명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하면서 그 기조가 수시로 바뀐다. 흐르는 강물에서 예시되는 시간의 흐름은 관람 과정에도 이어진다. 기존의 것을 계속 밀어내고 순간적이나마 공간을 새로이 차지하는 강물의 이미지, 계속 멀어지는 그것은 붙잡을 수 없는 자연을 상징한다. 작품 [읽을 수 없는 문장]은 강물 이미지를 세로로 배열해 마치 폭포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나타남과 사라짐의 역학관계는 더욱 속도감이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나 묵직한 세월의 무게를 담지하고 있는 식물 이미지에 비해, 먼지를 표현한 작들은 매우 발랄한 느낌을 준다. 뿌리줄기처럼 연결된 먼지 입자들은 중층적 표면을 이루면서 사방팔방으로 힘차게 뻗어나간다. 먼지는 노을 지는 하늘부터 칠흑 같은 밤을 배경으로 하며, 향기를 품기도 한다. 향기 역시 먼지 같은 미립자들의 유출에 의한 것이다. 햇살 속의 먼지 알갱이들로부터 원자론을 유추한 고대 유물론 철학자들처럼, 도윤희의 작품 속 먼지는 존재의 근본적 원소가 된다. 장 살렘은 [고대 원자론]에서 데모크리토스나 루크레티우스 같은 철학자가 물질원소들의 쉼 없는 동요를 묘사한 예를 든다. 그에 의하면, 고대 원자론자들은 덧문 틈으로 새어드는 햇살 속에서 수천가지 방식으로 뒤섞이는 무수한 물체들을 보면서 운명에서 벗어난 자유 의지를 발견했다. 먼지, 이 물질적 미립자들은 현실의 씨앗이 된다.

도윤희의 먼지 입자들은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는 뒤얽힌 전체를 이루며, 새로운 것들은 이전 세계의 잔해들로부터 형성된다. 춤추는 입자들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허공은 먼지만큼이나 무한하다. 먼지들의 움직임을 극화하는 것은 바로 빛이다. 도윤희의 작품에서 빛은 입자와 파동으로 변주되면서 시간의 흐름을 타고 무수한 계열로 펼쳐진다. 형상을 그리고 바니쉬로 마감하고, 다시 시작하는 작업 방법론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만나게 한다. 이러한 시공간적인 차이지음을 통해 이전의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생성이 유도된다.

잠재된 것은 현실화되고, 현실은 다시 잠재적인 것으로 가라앉으면서, 시간의 지층은 새로운 존재와 사건을 출현시킨다. 투명한 막으로 닫히고 다시 열리는 얇은 평면들은 무한한 포용력을 지니며, 중심 없는 흐름을 낳는다. 움직이지 않는 단면들은 지속의 과정에 포함된다. 그것은 들뢰즈가 영화에 대해 말했듯이, ‘움직이는 단면’이 된다. 매번 조망을 변화시키는 시간적 변위(dislocation)는 지각과 기억의 동시적 산물이다.

김혜련은 150×200cm 사이즈의 같은 크기의 유화를 간격이 없이 좍 붙여 놓았다. 전시장 한 면이 바깥풍경으로 연결된 장소에서, 이러한 배치 형식은 그림을 걸었다기 보다는 설치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어떤 풍경이 나오든지 ‘DMG 2009’라는 글자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그림에 새긴 문자’라는 전시부제의 의미이다.
이 글자는 풍경의 반을 가르는 색 띠 위에 새겨져 분단을 상징하기도 하고, 세로로 세워져 [깃발]이 되기도 한다. 검은 대지 위에도, 붉게 타오르는 하늘 사이에도, 매번 다른 색으로 흐르는 임진강 위에도 어김없이 써있다. 비무장 지대라는 의미를 가진 이 약호는 때로 화려하기까지 한 풍경에 착잡한 생각을 낳는다. 선적 기호를 닮은 철조망은 풍경을 이리저리 찢어놓으면서 대지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들쑤신다. 임진강이 보이는 마을에서 사는 작가는 이 풍경들에서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힌 풍광’을 보며, 정치 논리와 시장 논리로 촘촘하게 뒤덮인 기호들을 읽는다.

자연의 심연 속에서 불현 듯 떠오르는 하나의 가시적 형식으로서의 기호는 세계를 거대하게 펼쳐진 책처럼 만든다. 사물과 기호는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다. 미셀 푸코는 이러한 주제를 다룬 책 [말과 사물]에서, 신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적 형태의 언어는 사물들에 대해 전적으로 확실하며 투명한 기호여서, 이때의 언어는 사물들과 유사했다고 본다. 한 사물의 이름은 그 이름이 지시하는 사물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투명성은 인간에 대한 징벌인 바벨탑과 함께 무너졌다.

언어의 첫 번째 존재 이유였던 사물과의 근원적 유사성을 상실하자마자 제 언어는 분화되었고 서로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양자의 어긋남은 반복되는 해석을 요구한다. 김혜련의 작품에서 기호는 파주 지역, 그리고 작품에 반영된 이 장소의 아름다움을 불편한 것으로 만드는 역설적인 기능을 가진다. 기호도 지층처럼 중력의 작용을 받아 ‘수세기에 걸친 장엄한 퇴적의 광경’(소쉬르)을 이룬다. 지질학과 달리, 언어는 사회적 결정 작용을 받는 차이가 있다. 김혜련이 다시금 펼쳐놓은 ‘자연의 책’에는 더 이상 ‘신적인 상형문자나 성스러운 기호’(카시러)로서 신비스럽게 나타나지 않으며, 정략적인 이해관계라는 거대한 세속적 힘에 휘둘린다.

세계와 언어와의 사이에 권력이 작용하면서 양자의 관계는 더욱 불투명해진다. 그것은 자명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듭해서 읽어내야 하는 미지의 것이 된다. 화가가 세계를 묘사하고, 관객이 그 의미를 읽어야하는 과정 속에 기호가 개입되어 있다. 기호로 매개되는 묘사와 서사에서 시간은 필수적이다. 김혜련의 작품 속 시간기호는 모든 그림에 써 놓은 단어와 숫자, 즉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와 결합된 기호들에 기초해 있다. 풍경을 난데없이 반으로 쪼개는 노란 강, 서럽게 울고 있는 또는 피 흘리는 듯한 붉은 노을, 땅인지 물인지 모를 푹 꺼져 들어가는 어두운 심연 등이 그것이다.

출전; 아트인컬처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