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을 연결하는 욕망
민정수 전 (4.13--4.26, 관훈 갤러리)



이선영(미술평론가)



벗어나기 위해서만 한정 지워진 고풍스러운 액자 속 사물들은 바닥의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 미친 듯이 날뛴다. 이 틀은 동질성을 가득 채우는 이질적 구성요소를 상징하며, 어떤 내용물을 담는 수동적 용기가 아니라, 새로운 배치를 위한 실험적 장이다. 그것들이 바닥으로부터 튀어 오르는 것은 예측과 계산을 벗어나 의외의 것들과 만나기 위함이다. 화학 법칙이 그렇듯이 이러한 고양에는 에너지의 투입이 필요하다. 사물들을 고정해주는 금속선들은 운동 궤적을 분명히 하면서 그것들의 움직임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인형과 사물들을 연결하는 선들은 몸통을 관통하는 꼬챙이 같아서 가학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사이버스페이스를 특징짓는 유연한 연결망과도 비유된다.

작품의 주요 구성요소 중의 하나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다양한 회로들이기 때문이다. 인형은 인간과 비유된다. 작품 속 인간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기구들과 연결된다. 기구는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전능함을 가지기보다는 부자유로 나타난다. 작품 [속박]에서 인형조각들에 연결된 주방기구들과 용수철 등은 여성이자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인간과 도구 간에 설정된 연결망은 노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희로 확장된다. 이러한 양가성은 노동과 유희 사이에 놓인 예술의 위치를 말해준다. 인간과 사물의 공통분모인 기계들은 자연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비유법은 자연 역시 기계이거나, 기계 역시 자연인 일원론의 세계를 예시한다.

사람과 사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개별적 차이가 소멸된 채 연결된 살색 덩어리의 집합체는 개인과 개인의 특별한 만남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와의 무차별적인 부딪힘이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개체나 주체로서의 경계가 사라진 집합적 상태를 말한다. 펠릭스 가타리는 [카오스모제]에서 집합적이라는 것은 집단과 동의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인간의 상호주체성의 요소를 포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 이전의 인지적인 모듈, 미시-사회적 과정, 사회적 상상계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집합적인 것은 이질적 복수성과 같은 말이다. 혼돈은 정해지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즐거운 짝짓기의 장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질서와 무질서, 고통과 쾌락의 호환성이 두드러진 민정수의 작품에서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 관계가 해체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한 알의 사과에서 나무가 돋아난다. 다른 작품에서 사과는 팔다리를 싹틔우기도 한다. 인간의 머리를 차지하는 것은 기계나 전선뭉치지만, 기계 날개 위에는 또 다른 인간이 돋아나며, 연금술적 용기 표면에는 수많은 팔들이 증식한다. 단면을 가진 기계들의 다차원적 연결을 추동하는 것은 욕망이다. 금색 액자 안에 손들이 엉겨 붙은 작품 [욕망]은 무엇인가를 향해 뻗친 손들이 보이지 않는 열기로 한데 녹아 있다. 역설적 제목의 작품 [응시]에 나타나듯, 이러한 욕망의 무차별성과 맹목적성을 상징하는 것은 가려진 눈이다.

출전; 계간조각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