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의 판화, 고암의 형식실험실을 엿보다
판화의 장르적 특수성과 판화 개념의 확장


고충환(미술평론가)


회화가 그린 그림이라면, 판화는 찍어낸 그림이다. 회화가 종이나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식의 직접적인 방법이라면, 판화는 먼저 목판이나 동판에 원하는 이미지를 새겨 만든 연후에 그 판에다 종이를 대고 이미지를 찍어내는 식의 간접적인 방법이다. 판화를 위해선 판이라는 중간매개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때 그 판의 성격에 따라서 다양한 표면질감과 표정연출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인출된 이미지는 회화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데, 원론적인 견지에서 볼 때 회화가 평면적인 이미지라고 한다면, 판화는 오돌토돌한 미세요철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대개는 프레스기를 이용한 압력으로 이미지를 찍어낸다는 기술적이고 기법적인 제약으로 인해 자유분방한 회화적 표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식화된 화면에 강하고, 정치하면서도 정연한 이미지를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일단 판이 완성된 후에는 그 판을 원판 삼아 일정한 한정매수 내에서 똑같은 이미지의 판화를 얻을 수가 있는데(에디션), 이렇게 제작된 판화 한 장 한 장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정하는 것에서 판화의 특수성이 찾아진다. 여러 장의 오리지널이 존재하는 소위 복수 오리지널리티가 적용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이처럼 한 장의 판화를 위해선 판이 있어야 하고, 원칙적으로 에디션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판화에는 작가의 사인과 함께 에디션 넘버나 기타 시험쇄 혹은 작가소장용 임을 알리는 공인된 표기법이 명시되어져야 한다.

이처럼 판화가 가능해지기 위해서 충족해야 할 조건을 기술해본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복수 이미지를 실현해주는 전에 없던 매체들의 등장이나, 하나의 이미지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사하고 전송해주는 미디어들의 출현으로 인해 판화의 이런 원론적인 정의나 입장은 위협받고 있고 재정의를 요청받고 있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판화의 장르적 특수성과 확장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져가고 있는 것이 현재 판화계의 현실이라는 말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클릭 한번만으로 원고와 이미지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송해주는 미디어들이나(이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전송장치 곧 미디어가 판에 해당한다), 다분히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천개의 강에 비친 달(월인천강)마저 판화의 경우로 보기도 한다.

이응노 판화의 현재

그렇다면 이응노의 판화는 어떻게 봐야하고 어떻게 자리매김 될 수가 있을까. 그동안 한국화를 바탕으로 사실적 재현과 사의적 재현, 서체추상과 문자추상, 콜라주와 태피스트리, 평면과 입체, 그리고 말년에는 인간을 소재로 한 군상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시종 특정의 형식이나 내용에 구속받지 않고 종횡 무진했던 화가의 편력에 대해선 여러 경로로 꽤나 심화된 연구들이 있어왔지만, 유독 판화에 대해서만큼은 연구가 일천한 편이다. 이응노 미술관이 개관 5주년 특별전 형식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가 판화만을 따로 전시하는 경우로는 사실상 처음이라고 하는데, 모르긴 해도 작가의 또 다른(어쩌면 사실상의) 본향이랄 수 있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다.

자료를 보면 1969년에 프랑스 누벨 이마쥬 출판사에서 고암의 옵셋 판화집을 제작했고, 1973년에는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이 주최한 <현대판화전>에 초대 받았으며, 1977년에는 고암이 가르치던 동양미술학교 수강생들의 전시를 위해서 개설한 파리 고려화랑(부인 박인경 여사가 운영하는)에서 <이응노 판화전>이 열렸던 것으로 나와 있을 뿐, 이외의 일체의 판화 관련 자료도 논평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그동안 다른 작품들과 함께 판화가 소개 전시된 경우는 더러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여하튼 이런 일천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 출품작도 그렇지만 현재 전해지는 판화 관련 작품들이나 파리 국립도서관 전시에 초대 받은 것(전통적으로 유럽에서는 판화관련 주요 전시들이 곧잘 미술관 대신 도서관에서 열린다), 그리고 비록 옵셋이긴 하지만 개인 판화 모음집이 출간된 것 등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판화는 분명 고암 작업세계의 뚜렷한 한 축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할 정황들은 많다. 그렇다면 이제 이 정황들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고암 이응노의 판화세계를 탐색하면서 그 담론형성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구성 시리즈와 군상 시리즈

주지하다시피 고암 이응노는 1958년 도불해 파리에 정착한 후, 1989년 호암미술관 초대전시에 참석하지 못한 채 파리 현지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그동안 1967년 동베를린(혹은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 옥고를 치른 것 외에 사실상 국내에 정착한 적이 없다. 작가는 투옥된 와중에도 종이, 천, 돌멩이, 비닐, 은박지, 밥알과 신문지를 반죽한 재료로 작품을 제작했고, 당시 제작된 작품을 따로 옥중미술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후 백건우 윤정희 납치사건에 휘말리는 등 작가는 윤이상과 함께 왜곡된 정치적 현실의 희생양으로서의 삶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 만큼, 아니 그래서 오히려 더 망향의 한이 남달랐던 것 같고, 도불 이후의 형식파괴의 와중에도 도불하기 전의 한국화에 대한 뿌리근성이 작업의 밑바닥에 면면히 흘렀던 것 같고, 그 뿌리근성을 자양분 삼아 동서양을 아우르고 뛰어넘는 독자적인 형식으로 우뚝 설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번 전시는 시기적으로 60-80년대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사실상 작가의 파리시기에 제작된 판화 일체를 아우른다. 그 주제별 경향으로는 주로 70년대 제작된 구성 시리즈(도불 직후인 60년대의 자유분방한 형식의 한지 콜라주를 본격적인 문자추상으로 발전시킨)와 80년대 제작된 군상 시리즈(광주민주화항쟁과 같은 한국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에 대한 응답으로 내놓은. 그러면서도 특정 국가를 초월해 인간 일반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조건을 표상한), 이렇게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기타 오리와 난 같은 동식물을 소재로 한 경우와 아마도 현액(현판에 새긴 글씨)을 위한 일종의 문자도(대개 4자의 한문자로 된)를 소재로 한 경우들이 확인된다. 특이한 것은 구성 시리즈나 군상 시리즈 할 것 없이 시리즈 명 앞에 한문으로 試作(시작)이라고 병기한 경우들이 많은데, 아마도 시험쇄에 대한 작가 식의 표기법일 수도 있고, 판화라는 특정 장르 이전에 작가의 작업 전반에 나타난 간단없는 형식실험의 현재진행형을 암시하고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운데 구성 시리즈는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결정적이다 싶은 서체추상 혹은 문자추상에 바탕을 둔 것이며, 이를 변주하고 심화한 경우로 보인다. 고대 갑골문자나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기호 체계를 주로 목판 위에 단색으로 처리한 간결하면서도 구성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일면적으론 전통적인 전각과 낙관의 형식을 차용하고 변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정도는 전각이나 낙관 자체를 이미 판화의 한 경우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정방형이나 직사각형의 포맷을 취한다거나, 정형이나 비정형의 원 형상을 변주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전체적인 포맷 역시 전각과 낙관의 형식을 따른 것으로 유추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이건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작업이 서체에서 온 것임을 밝힌 고암 자신의 전언으로 보나(고암은 실제로 서예전시를 열기도 했다), 원래 한국화가로서의 전력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자연스레 발상되고 촉발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군상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시대정신이 표출된 경우로 보이고, 인간 일반의 보편적이고 존재론적인 조건이 표상된 경우로 보인다. 비록 그 시리즈가 집중적으로 제작된 시기는 80년대 들어서의 일이지만, 사실상 60년대부터 이미 시작된 인간 시리즈 작업의 연장선으로 봐야 하고(이를테면 한지 콜라주 작업에서 이미 잉태된 경우로 봐야 하고), 이후 일시적으로 잠재돼 있다가 작가가 내외적으로 맞닥트린 사건과 정황이 계기가 돼 본격적인 돌파구를 찾은 경우로 보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나 인체에 대한 관심이 잠시라도 작가의 작업을 떠난 적은 없었다. 이를테면 70년대의 구성 시리즈를 보면 문자추상이 지배적인 경향을 이루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 형상을 기호로 변형시킨 경우가 엿보인다. 거시적으로는 인체가 구성 시리즈와 군상 시리즈를 매개시켜준(연결고리 역할을 한) 경우로 보이고, 미시적으론 구상 시리즈 자체에 이미 인간에 대한 관심이 인체의 형태로 오롯이 탑재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가의 작업은 서체에서 왔다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서체는 상형문자다. 문자의 뜻이 형상으로 오롯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속엔 사람도 들어있고, 산수도 들어있고, 자연도 들어있고, 우주도 들어있다. 사람인가 하면 산 같기도 하고, 나문가 해서 보면 달처럼 보인다(이처럼 열려진 형식으로 치자면 특히 그 형상이 애매한 일부 저부조 혹은 엠보싱 판화의 경우가 흥미롭다). 그것을 문자로 읽으면 정해진 의미가 세팅되지만, 문양으로 읽으면 결정적인 의미가 따로 있을 수가 없다. 문양으로 읽는 순간, 모든 형태와 의미가 열려지는 것. 아마도 부분적으론 인디오의 그림문자처럼, 파라오의 상형문자처럼 문자와 문양을 넘나들고 의미와 그림을 아우르는 상호 관계적이고 상호 내포적인 성질이, 그 비결정적인 성질이 이응노의 그림으로 하여금 서양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했을 것이다(실제로 서양화가들 중에도 서체추상에 착안한 사람들이 있고, 그 경향은 작은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목판화와 저부조 판화- 판화의 형식파괴와 개념의 확장

판화를 보면 작가의 다른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평면성과 평면구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동양의 서체에 바탕을 둔 문자추상과 서양의 모더니즘에서 유래한 평면성의 개념이 합체된, 그래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경우로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판화 개념을 탈피한다거나, 재료와 장르의 한계를 벗어난 형식실험이 엿보인다.

판종으로는 단연(혹은 아예 전체가) 목판화가 많고, 목판화 중에서도 일반적 경우인 널목판(종단면으로 자른 판목을 사용한 경우로서 칼이 지나가면서 남긴 뚜렷하고 힘찬 자국이 특징이며, 횡단면으로 자른 판목을 사용해서 섬세하고 정치한 묘사가 특징인 눈목판과 비교된다)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판목으로는 송판과 합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송판이 고른 칼자국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합판은 그 결과 가장자리 선이 거칠게 떨어지면서도 강한 질감을 떠올려준다. 대개는 단색 목판화로 제작된 경우가 많고, 더러 다색 목판화가 확인된다. 대개는 유성잉크 대신 전통적인 수성의 먹을 사용해 찍은 탓에 마치 먹그림처럼 부분적으로 번지는 효과가 엿보이고, 곧잘 판화를 찍은 연후에 그 위에 가필하는가 하면, 판화로 찍어낸 부분 이미지를 다른 종이에 올려붙인 일종의 콜라주 형식의 경우도 확인된다. 먹이 번지는 것이나(물론 먹이 번지는 효과를 살리면서 에디션을 찍어내는 중국의 수인목판화의 경우가 없지 않지만) 가필하는 것, 그리고 특히 콜라주는 에디션을 염두에 둔 경우로는 보기가 어렵다. 판화의 형식에, 그 장르적 특수성에 구애받지 않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일종의 저부조 형식의 판화도 많다. 다르게는 릴리프판화 혹은 엠보싱 판화로 부르는 경우로서, 그 원리를 보면 판각을 새긴 판목 위에 종이를 대고 눌러 찍어내는 방식이다. 보통의 판화와 다른 점은 판목에서 확인되는데, 일반적인 판화의 경우에 이미지에 해당하는 부분이 양각으로 돋을새김 되는 것에 비해, 저부조 판화의 경우에는 마치 동판에서처럼 음각된 부분이 이미지에 일치하는 점이 다르다. 엄밀하게는 이마저도 작가의 경우에 일치 혹은 부합한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데, 작가는 이미지 혹은 도상을 새길 때 주로 선묘 대신 면적인 접근을 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물론 선묘를 구사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게 엠보싱 된 판화로 종결되는 경우도 있고, 흔하지는 않지만, 판목 위에 종이를 대고 프린트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가 특이한 것은 보통의 경우에는 판목과 맞닿는 종이 안쪽 부분에 이미지가 인출되기 마련인데, 작가의 경우에는 판목 위에 종이를 대고 그렇게 덧대어진 종이의 표면에 프린트한 경우가 흥미롭다. 무색 엠보싱의 경우에는 이미지와 함께 종이 고유의 물성이 여실해서 아마도 작가가 이를 의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이렇게 제작된 저부조 판화 자체는 평면과 입체, 판화와 조각의 사이에 정초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판화와 함께 판화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판도 전시되는데, 판으로는 목판을 비롯해 지우개와 고무판(리놀륨판화), 그리고 심지어는 스티로폼과 벼루도 보인다. 지우개까지는 몰라도 스티로폼과 벼루는 판을 위한 재료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닌가 싶다. 지나치게 소프트한 판은 균질의 이미지를 얻기가 어렵고, 반대로 지나치게 단단한 판은 이미지를 판각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나 손에 잡히는 것들을 임시변통으로 재료로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에디션 넘버는 물론이거니와 기타 시험판이나 작가 소장판과 같은 일체의 표기가 명시돼 있지가 않은 경우도 보이고(아예 서명이 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저부조 판화 곧 엠보싱 판화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에디션 개념을 의식하지 않았던 듯 일체의 에디션 표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도 진즉에 일품성 작품의 경우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인 병풍의 형식을 따른 판화도 보이는데, 거듭되는 말이지만 굳이 판화의 장르적 특수성이나 형식논리에 구애받지 않는 작가의 분방한 기질을 확인시켜준다는 생각이다.

상당한 판화들에서 작가의 서명과 에디션 넘버가 명시된 것으로 볼 때, 작가가 판화의 장르적 특수성이나 형식논리를 몰랐다거나 아예 드러내놓고 무시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형식논리를 의식하되 구속 받지는 않는 경우로 보이고, 형식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에 진력했던 경우로 보인다. 이를테면 완성된 판화 위에 서슴없이 채색을 덧바르거나 가필한 경우가 그렇다. 심지어는 부분 이미지의 콜라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꽤나 많은 작품에 試作(시작)이라고 병기한 것을 보면 완성이라고 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미처 마음에 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가필된 작업은 또 다른 이미지나 채색으로 덧붙여지거나 변형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대체 작가가 생각하는 완성의 지점은 어디일까. 여러 경로로 논객들이 증언하는 것이지만, 작가의 작업에는 수행적인 측면이 있다. 수행은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 과정에 완성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정해진 바가 따로 없으므로, 열려져 있으므로 자신을 경계 밖으로 밀어올리고 확장시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자추상과 군상 시리즈로 나타난 일련의 판화 작업들은 다만 매체가 달라진 것을 제하고 나면, 작가의 다른 작업들과 그 생리가 크게 다르지가 않다. 서체에서 촉발된 계기가 문자추상을 밀어 올리듯, 그의 판화는 칼리그래프(서체추상) 같고 먹그림 같다. 작가의 파리 시절에 뚜렷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판화로 하여금 한국근현대 판화사 혹은 목판화사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우리의 과제로 주어진 것 같다(판화에 한정된 경우는 아니지만, 국내외적으로 문자추상을 변용한 적지 않은 예들이 있고, 따라서 작가와의 영향관계를 따져 묻게 하는 근거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런 경우에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