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작업 사이에 놓인 좁은 길



이선영 (미술평론가)



장세열은 그 세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밥 굶기 딱 좋은’--이 점에 있어서는 지금도 별반 달라진 바 없는--미대 진학에 반대하는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다른 과를 전공한 후,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왔다. 사업으로 성공했지만, 그림의 뜻을 접지 못하고 오랫동안 대학의 부설 교육원 등을 다니고, 유명 화가에게 사사 받으면서 붓을 다시 잡는다. 바쁜 사업 일정 속에서 짬짬이 그린 작품의 양과 질은 단순한 여기의 차원을 넘어선다. 인터뷰 때문에 구로디지털 단지에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사무실 곳곳에 자신의 작품과 컬렉션들이 걸려 있었고, 채 정리하지도 못한 채 쌓아둔 것도 상당수 되었다. 수백 점의 컬렉션 및 자기 작품을 지인에게 즐겨 선물하는 그에게 미술은 타인과의 소통에도 중요한 매개가 된다. 많은 작가들이 분열증과 편집증에 빠지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장세열은 어떤 미술인보다도 삶과 미술 간의 밀착도가 높은 듯했다. 건축을 전공한 딸의 결혼식에서는 딸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같이 전시하고, 판매 수익금은 고아원 등지에 기증하기도 했다.

교육경험의 기간과 질을 따지자면 미대에 대강 다닌 것과는 비교할 수 없으니, 미대 수학을 기준으로 아마추어냐 프로냐를 따지는 것도 우스울 따름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로서 그가 가지는 경쟁력의 상당부분은 예술에 관련된 이런저런 수학 경험보다는, 들과 산에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하루 종일 뛰어 놓았던 어릴 적 체험에 있는 듯하다. 그것은 그가 그린 풍경화나 풍경에 자신을 투사한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어쨌거나 다시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한 후 그가 그림에 헌신해 왔다는 것이 중요하며, 이점에서 사업에서의 성공만큼이나 그림에서도 일가를 이루어가는 그가 부럽기도 하다. 직업과 작업을 일치시키기는 무척 힘들다는 점에서 미술과 함께하는 삶은 여전히 저주받았고 동시에 이상주의적이다. 직업과 작업을 어설프게 일치시키려는 상당수의 미술인이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자신의 빈약한 알리바이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현실에 타협하는 ‘전업’ 작가가 되느니, 능력만 된다면 장세열 같은 스타일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조로 현상에 찌 들은 작가들보다 사고방식이 젊었으며, 그것은 작업과 사업을 대치시키기보다는 서로를 자극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끌어왔던 성공적인 경험들에서 비롯된 듯하다. 삶과 예술의 하나 됨이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이 예술로서 자율성을 확보한 근대 이래로 예술과 삶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했고, 예술가는 그 사이로 난 좁은 길 위에서 묘기를 부리듯이 살아왔다. 루카치가 [영혼과 형식]에서 구별한 바로는, 시민적 삶과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길이다. 아카데미즘이 아니라, 진실한 고전주의를 옹호했던 이 미학자는 상호 배타적인 이 두 개의 극단이 한 인간 속에 양립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삶의 반복 속에서 예술적 차이를 어떻게 길어낼 것인가의 문제는, 삶과 예술을 동시에 진지하게 통과하려는 이들에게 가능하다. 우연 반 필연 반으로 어느 한 길을 선택하고, 그 길만을 유일화 하는 것은 반쪽의 승리에 불과하다. 붓을 본격적으로 다시 잡은 지 채 10년이 안된 장세열은 그림의 기본을 익히고 이제 자신만의 어법을 모색하는 와중에 있지만, 사업을 통해 현대적 삶의 핵심을 성공적으로 통과해온 그의 경험은 자연과 하나 되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함께 작품의 주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공존하기 힘든 것을 함께 꾸려나가는 이들에게는 강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하루의 노동--수많은 종류가 있겠지만--을 마치고, 작업을 위한 절대시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이내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삶과 예술을 한 방향으로 묶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나 열심히 살고 그리려는 노력과 별도로, 양자가 동시에 중요한 이들에게,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형식주의적 선택은 부조리하기 그지없다. 예술의 순도와 밀도를 분리와 폐쇄로만 얻으려 한다면 예술의 자율성은 풍부함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의미 있는 형식’을 주장했지만, 지시대상과의 단절로 의미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현대미술의 주류에 대해 장세열은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그에게 추상미술은 섬유사업을 할 때 늘 보아왔던 나염 이미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미술이 장식화는 부르주아의 실내에 걸린 안 어울리는 그림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장세열은 자신과 통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고, 생각할 꺼리가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형식적 유희보다는 자연과 사회, 타인과 자신에 집중되어 있는 자신의 작품이 보수적이라는 것을 그는 인정한다.

그러나 허공에 메달린 채 허구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아방가르드 투사들이 진정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발을 땅에 내디디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물이나 풍경은 현대미술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실재감을 위해 호출된다. 장세열은 눈에 넣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며, 작품마다 변화하는 계절의 여운은 일상의 기계적 반복을 무색하게 한다. 울창한 숲부터 시원한 강가, 눈 덮인 계곡 등을 그린 풍경에서 자연 그 자체에 내재된 고전적 구성이 그림의 그것과 중첩된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문화를 이어주는 것이 거칠거칠한 느낌이 살아있는 문화재의 단편이다. 자연과 달리, 인간사는 곳이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 사회에 내재된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판자촌 풍경을 여러 번 그렸다. 그것은 과장된 현실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다. 수직의 구조를 통해 빠르게 대지로부터 멀어지며 똑같은 형식을 가진 일률적 구조는 구룡마을의 나지막한 풍광과 대조를 이룬다. 이 시리즈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구룡마을이 전경에 배치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문 앞에 쌓인 연탄재나 빈 화분 등 사람 사는 흔적이 묻어나며, 눈 쌓인 지붕이나 불 켜진 창문 등이 기계적으로 서 있는 거대한 문명의 탑들과 비교된다.

구룡마을만 그려진 작품에는 언뜻 한적한 시공풍경 같지만, 높은 밀도가 그곳이 도시의 빈민촌임을 암시한다. 그의 풍경화는 현대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빈민으로 몰아가는 현대사회의 메커니즘이 드러나 있다. 현대사회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이 풍경들은 다소간 서정적이고 때로 초월적인 느낌도 준다. 멀찍이서 관망하는 자세는 거시적인 문화 비평적 관점과 연결된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환경에 완만히 적응하는 진화의 과정을 겪지만, 착취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늘려가는 문명은 진보할 따름이다. 다윈을 비롯하여 많은 진지한 과학자들이 진화와 진보를 구별하였지만, 현대사회는 모든 것을 단선적 진보의 과정으로만 본다. 이 세계는 ‘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변이(variation)’(스티븐 제이굴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간적 진보는 특정한 점을 향해 전진하는 한 가지 길만을 요구한다. 이러한 동질적 질서는 미술을 삶의 주변부로 내몰며 타자화 시킨다. 자연 및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인공적 코드와 달리, 넓게 퍼져 있는 차이들에 기초하고 있음을 장세열의 자연풍경은 잘 보여준다.

장세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자연에 근접해 있다. 팍팍한 삶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새벽 인력시장의 사람들이나 어망을 손질하는 늙은 어부의 모습에서 민초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 삶의 무대가 되지만, 그자체가 인간에 대한 비유, 특히 자신에 대한 비유가 된다. 그의 초기작품인 해바라기는 그 꽃에 기대될 법한 화사한 모습이 없다. 사무실의 가장 좋은 자리에 걸려있는 이 작품은 벌레 먹은 잎들과 고개 숙인 꽃이 여러 각도로 포착되어 잠재적인 운동감과 형태에 대한 연구 또한 보여준다. 꽃의 시들음에 아랑곳없이 푸른 하늘이 대조를 이루고 있어, 비관과 낙관의 정서가 동시에 읽혀진다. 요즘은 한지에 콘테로 소나무나 자작나무 숲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 재료를 섞어 흑백사진이나 동양화 같은 깊이를 탐색하는 작품에도 자신에 대한 투사가 발견된다. 많이 확보된 여백을 배경으로, 구불구불한 형태와 거칠거칠한 표면 느낌이 살아있는 나무는 그가 통과해왔던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출전; 미술과 비평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