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비롯된 때와 곳으로의 회귀



이선영(미술평론가)




제주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박형근의 [기억의 항해] 전은 청년기까지 제주에 살았던 작가가 감성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되어주었던 바로 그 고향에서 대표작들을 대거 선보이는 자리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디테일이 살아있는 풍요로운 자연은 몽환적이고 때로 이국적으로 보이지만, 스스로가 비롯되었던 뿌리에 닿아있다. 그에게 고향은 들숨과 날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고향으로의 회귀는 익숙함이 아니라 미지의 것을 향한다. [기억의 항해]에서 ‘기억’은 사사로운 추억과 에피소드의 재현이 아니라, 땅과 물이 형성되었을 즈음의 머나먼 과거부터 인간의 흔적이 모두 지워질 시간대까지 걸쳐 있다. 작품의 무대는 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지속될 세계이다. 그가 다루는 시공간의 폭은 넓고 깊다. 회귀는 하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가 아니라, 매번 갱신되는 사건에 의해 야기된다. ‘항해’ 역시 명확한 좌표가 설정된 주어진 경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꿈이나 기억과 마찬가지로 정처 없는 표류이다. 표류는 의미가 발생하는 표면을 무한히 늘리는 과정이다. 그러나 표류의 보이지 않는 중심은 존재한다. 자신의 몸과 시공간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 때와 곳을 향해 있는 것이다.

올해 ‘다음 작가상’ 수상 기념전에 발표된 [금단의 숲](2009-2011)은 인공적 연출과 작가의 개입이 줄어들고, 파노라마 형식을 통해 그가 만난 자연의 진면목을 화면 가득히 펼쳐냈다. 작품의 형식이 사진이기 때문에 만남의 순간은 더욱 각별하다. 거기에는 객체로의 매몰도 주체로의 환원도 아닌, 객체와 주체가 서로를 움켜쥐는 듯한 현상학적 만남이 있다. 작품에 가득한 신비로움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체험에서 왔다. 그것은 미소한 것부터 거대한 것이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며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는 유기적 세계관에 기초하는 것이면서도, 자연 자체에 내재된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힘의 방출을 도모한다. 안도와 전율, 자연스러움과 경외감, 미와 숭고를 동시에 자아내는 그의 자연은 고전주의적이면서도 낭만주의적이다. 이와 비교한다면 이전의 [무제] 시리즈는 상징주의적이고, [Tenseless] 시리즈는 초현실주의적이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이즘’으로 확정짓기 힘들다. 우주 공간 속에 흩뿌려진 은하수처럼 보이는 작품 [cosmos](2010)는 숲에 누워서 바라본 하늘이다. 오래된 숲에 바람이 불자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빛이 들어온 것이다. 검은 장막을 찢어내는 불규칙적 파열은 그것을 지켜보는 이를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시킨다. 한낮을 칠흑 같은 밤으로, 숲을 우주적 공간으로 변모시킨 것은 꾸며냄이 아니라, 자연과의 절묘한 만남의 순간이고, 긴 여운을 남기는 조응이다.

은하수처럼 보이는 산란하는 빛의 무리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또한 대우주 속의 한 원소, 바닷가의 모래알로 만들어버린다. 한 순간 우주가 일렁이는 과정이 포착된 이 작품은 자연 자체가 작품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자연 자체가 작품이 되는 이 순간은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 작가는 영원과 찰라가 만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작품 [forbidden forest](2010)는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제의적 목적을 위해 수백 년 전에 조성된 숲을 찍은 것으로, 살아있는 화석처럼 오래된 장소에 스며있을 법한 신성한 기운이 살아있다. 그의 사진은 장소의 야생성을 복원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밀림처럼 우거진 청록 톤의 숲은 용암 위에 생겨난 특유한 식생으로, 수많은 세월동안 자연의 에너지가 흘러들어 휘돌고 나간 궤적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이 ‘금단의 숲’에는 인간의 흔적이 없지만, 그 영험한 장소를 보존하고 발견한 이의 현존은 분명하다. 병풍처럼 길쭉한 화면들이 이어져 있는 작품 [on the edge](2010-11)는 어두운 배경에 혹성 표면 같은 바닥만 선명하다. 용암으로 만들어진 제주 특유의 해안가 밤풍경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풍경들로 변모했다. 친근한 장소는 별다른 가감 없이 낯선 혹성이나 심해의 풍경, 또는 낡은 화첩 속의 동양화가 된다.





그가 선호하는 자연은 겹겹이 내려앉은 침전물의 질감과 촉감이 살아있는 곳이다. 파노라마 시점으로 펼쳐진 최근 작품들은 이전 작품에 비해 인공적 연출은 줄었지만, 객관적 지시대상을 건조하게 반영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기계문명의 독주로 인해 사라져가거나 인간화된 모습으로 길들여진 자연의 원초성을 살려내려 한다. 거기에는 자연의 독특한 외관 뿐 아니라, 자연의 에너지가 있다. 이 에너지는 오래 묵은 것부터 막 발생하고 있는 것까지 다양한 상태와 강도를 지닌다. 에너지의 이합집산은 그의 작품 속 자연을 시적 감성과 무의식이 돌출하는 꿈의 무대로 만든다. 2003-2004년 사이에 제작된 [무제] 시리즈는 공원같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의 층에 약간의 채색을 가미하여, 심미적 풍경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에서 색은 평범함 속에 차이를 발생시키는 극적 요소로, 풍경에 잠재된 요소를 명시적으로 만든다. 가미된 색은 풍경을 돌변하게 한다. 숲 안쪽에 고인 붉은 물은 자연의 속살처럼 보이고, 낙엽 수북한 바닥에 꽃이 깔린 숲 저편에는 신비의 베일이 쳐 있다. 나목이 반영된 연못 위에 뿌려진 밝은 꽃잎은 심연의 표면을 응시하게 한다.

2003년부터 2008년 사이에 제작된 [Tenseless] 시리즈는 오래된 담벼락이나 폐허 같은 장소에 자연적, 인공적 소품을 배열함으로서, 모종의 이야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누가, 언제, 왜라는 기본적인 인과관계는 무한히 늘어져 있다. 녹색 늪에 떠 있는 공, 낡은 벽 아래의 작은 체리들, 그을린 실내에 쏟아져 내리는 붉은 전선들, 숲으로 통하는 문밖에 쏟아진 페인트, 번개처럼 보이는 금간 벽, 눈꽃 내린 겨울 산에 응결된 나비 날개, 겨울 밤 까마귀들의 대화 등등은 난데없음이라는 공통적 특징을 가진다. 그것들은 작가가 조성한 무대 위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들이지만, 그 의미는 열려있다. 무대는 깊고 주인공은 부재하며 사건은 추이는 불투명하다. 명확한 의미로 읽혀지지 않는 그의 작품은 감성에 호소한다. 여기에서 감성적인 것은 단순히 애매에서 모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침묵 가운데 자명적일 수 있는 가능성, 암묵적으로 의미될 수 있는 가능성’(메를로 퐁티)으로 규정될 수 있다. 2008년부터 2011년 사이에 제작된 [Tenseless] 시리즈는 마주할 수 없는 시간대와 장면들이 길게 붙어있다. [tenseless-62, night and day](2009)처럼 밤낮을 구별할 수 없는 자연에서 일어난 사고부터 [tenseless-63, fade away](2009)처럼 해질녘의 빛과 흩날리는 커튼이 함께 어우러져 깊은 상실감을 주는 작품에 이른다.





사건의 파고와 강도는 객관적이지 않다. 깊고 푸른 하늘 아래 풀숲 사이로 난 길, 그 위에 흩뿌려진 붉은 살점 또는 피처럼 보이는 꽃잎들이 뿌려진 작품 [tenseless-65, last summer](2009)에서, 사건의 흔적은 아름다우면서도 비장하다. 분위기는 심해같이 막막하고 서늘하다. 거기에는 길 없는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작가의 심정과 여정이 투사되어 있다. [tenseless-70, the cave](2011)에서 기하학적 패턴이 바닥에 깔린 고드름 동굴은 긴 시간동안 만들어진 자연의 조각품을 자연의 사원으로 만든다. 이번 전시 제목을 공유하는 항해 시리즈(2007-2008)는 자연 속에 배치된 소품의 시적이고 극적인 병치가 특징적이다. 작품 [A voyage-1, full moon](2007)처럼 풀밭과 눈, 달은 모순 없이 공존하곤 한다. 자연과의 만남은 박형근의 작품을 출발시키는 원초적 사건이다. 그의 자연은 유학을 갔던 영국의 공원이나 고향 제주의 풍경처럼 장소의 특정성이 보존되어 있지만, 작가의 색깔 또한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 주체가 보이는 것에 흡수되거나 보이는 것이 주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차이가 보존된 채 만난다. 메를로 퐁티가 말하듯이 만남은 세계와 나 사이의 교환을 야기한다. 그것은 지각된 것 사이의 교환이기도 하다. 지각은 내게 세계를 연다. 그리하여 감성적인 것은 나를 세계에 입문(연결) 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란 곧 세계에 대한 조망이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 즉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충전되어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 메를로 퐁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논한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동일자는 타자를 요구한다. 메를로 퐁티에 의하면 타자의 시선이 발단하는 것은 공간의 한 지점에서가 아니다. 타자는 내 쪽에서, 분열에 의해 탄생한다. 타자는 어디에도 정주하지 않는다. 타자는 꿈속의 존재들이나 신화적 존재들 같은 편재성을 가지고 나의 주변 도처에 있다. 박형근의 작품에서 동일자와 타자같은 대립 항들은 손쉽게 화해한 채 휴지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자연의 신비로운 적막감 가운데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는 작품들은 차이들 사이의 긴장과 긴장의 고조, 그것의 순간적인 폭발에서 야기되는 열락(jouissance)이 존재한다. 일상이나 과학이 그러하듯이, 자연을 단지 노동이나 인식의 수단으로 삼을 때 열락은 불가능하다. 열락의 장소를 차지하는 것은 타자이다. 그의 작품에서 복원된 자연과 예술의 야생성은 주체 이외의 것들에 새겨진 궁극적인 기표라 할 수 있는 타자의 현존을 명확히 한다. 박형근의 항해는 자아나 주체, 고향 등 동일자로의 회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여정이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