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아와 나와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제4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의 특별전인 [메르츠의 방(Merzs Room)](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을 기획하고 있었다. 나는 이 전시회에 진즉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정진아를 초대하였다. 그의 <분예기(糞藝記)> 시리즈가 이 전시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영웅의 소설 제목인 <분예기(糞禮記)>에 한자 하나를 바꿔 재치를 부린 이 제목은 예술에 대한 정진아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제목을 굳이 풀어쓰자면 ‘똥예술에 관한 기록 혹은 진술’이 된다. ‘똥예술’이라? 물론 이렇게 풀어쓰면 매우 불경스런 어감을 풍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정진아의 기존 가치나 관습에 대한 전복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흔히 추하거나 거북한 것, 역겨운 것으로 통하는 똥을 아름답고 반짝이는, 게다가 화려하기 그지없는 사물로 바꿔놓는 정진아의 전략은 그래서 매우 주효하였다. 예술이 지닌 표면과 이면의 관계를 이처럼 명료하게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 <분예기> 시리즈는 웃음과 해학에 바탕을 둔 우리 선조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시골 마을에는 ‘언년이’니 ‘간난이’와 같은, 지금 생각하면 약간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흔했는데, ‘똥예’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 이름들은 의료시설이 시원치 않았던 그 시절에 갓난 애기들이 자꾸 죽어나가니까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실제로 나의 이웃에 사는 ‘똥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는 얼굴이 귀엽고 예뻤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지닌 이 전복의 정신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미술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시골의 동제(洞祭)에서 볼 수 있는 액막이굿은 주로 정월 대보름 날 행해지는데, 그 목적은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풍농, 풍어에 대한 기원으로 집약된다. 거기에 금기(taboo)가 있고, 음주, 가무와 같은 서양식 카니발과 유사한 질탕한 놀이가 있다. 기성의 가치에 대한 전복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카니발 혹은 동제와 같은 제의(祭儀)에서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신분 내지는 기성 질서의 전복이 질탕한 음주와 가무를 통해 일정한 축제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속화된 사회는 축제를 통해 그동안 낀 때를 말갛게 벗겨내고(聖化) 새롭게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진아의 <분예기> 시리즈는 날로 세속화해 가는 현대사회에 바치는 일종의 공물(供物)이다. 그것은 고대 희생 제의에서 공동체 사회의 안녕을 위해 제물을 바쳤듯이, 역설의 방법론을 통해 ‘금기를 위반하는’, 즉 부정을 통한 긍정의 정신이다.
“똥과 남근, 혹은 비정형화된 어떤 형상을 합성수지로 만들고 표면에는 반짝이는 스팽글이 나 화려한 천, 꽃, 알루미늄 캡 등으로 장식하는 대조적 방법을 통해 금기를 위반하는 공격적인 표현을 진지함보다는 웃음으로 뒤집는 것이 본인 작업의 근간이 된다.”
흔히 추하고 역겨운 것으로 치부되는 똥을 화려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전복이 필요하다. 정진아는 합성수지로 똬리를 튼 똥 모양의 형태를 만들고 거기에 화려한 천과 반짝이는 스팽글을 붙여 아름다운 조각품을 제작했다. 미와 추라고 하는 미적 범주의 전복을 나름대로 시도한 것이다. 이때 추는 미의 하위 범주가 아니라 대등한, 즉 등가적인 미적가치가 되는데, 정진아의 <분예기> 시리즈는 그 중의 한 양태이다. 기존의 가치나 관습에 대한 전복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Ⅱ.
<분예기> 시리즈 이후 정진아에게는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모색을 위한 준비기였다고 하는 편이 타탕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일상을 차분히 돌아보며 사물과 언어에 대한 문제에 돌입하게 된다. 태피스트리, 압정, 조화(造花), 스테인리스, 석고, 자석과 쇠구슬, 의류 부자재 등등은 <분예기> 이후에 그가 사용하는 재료들이다. 어느 것이나 일상적 범주를 넘어서 있지 않다. 그가 작품에 도입하고 있는 언어가 일상어라는 점과 그가 다루는 재료가 일상적 사물이라는 사실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나는 정진아가 2008년에 가나포럼스페이스에서 연 개인전에 출품한 일련의 작품들에 흥미를 느끼는데, ‘조울, 어느 活字狂의,’라는 테마로 전개된 이 작품들은 언어와 사물의 형태, 그리고 인간의 지각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즉,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문장으로 읽혀지지만,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사물의 이미지 윤곽선으로 보이는 활자의 이중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가령,
“그물코뺀대기사림질만도못하다급살옘병이나맞을까마귀밥이되다,귀신얼음먹는소리한다귓구멍에공구리쳤냐김밥옆구리터지는소리한다”“귀신방귀에쌈싸먹는소리국쏟고투가리깨치고밑구녕까지데이다” 등등.....
나아가 “공자가공짜로맹자맹장수술이나한다고과부좆주무르듯구라까다고쟁이.....”하는 문장은 직방 <분예기>로 통하는 길을 트고 있어 주목된다. 정진아가 쓴 이 일련의 문장들은 속어를 통해 엄숙한 것에 대한 전복(공자로 대변되는 엄숙한 유교문화와 좆과 고쟁이로 대변되는 하위문화)을 여지없이 보여주며(미와 추의 위계 전복), 동시에 그러한 대비를 통해 해학과 익살의 정신을 끄집어낸다. 그 기반은 하위문화의 대변자인 무당의 굿거리 공수와 같은 문장구조이다. 이 즈음에서 그가 문장으로 그려낸 연꽃이 시방(十方) 세계 모든 것을 품에 안는 불교의 상징이란 것도 염두에 두도록 하자. 이것들은 모두 ‘금기의 위반’이란 정진아의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Ⅲ.
근작을 통해 정진아는 ‘말장난(language game)’을 더욱 심화, 확대해 나간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 ‘말놀이(word play)’라고 부른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