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 - 9.6 키미아트
‘바깥, 풍경’ 전은 스스로는 관찰 대상에서 빠진 채 방해 됨 없이 조망하는 시점이나 거기에 내포된 소유 및 지배의 관점과 거리가 있다.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나온 ‘그림 없는 그림책’이라는 또 다른 부제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을 전제한다. 창과 책이라는 비유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한다는 의도를 가진다. 여기에서 창이라는 공간적 범주는 책이라는 시간적 범주로 보충된다. 보여 지지 않은 것은 이야기되고, 이야기 되지 않은 것은 보여 진다. 가시적인 것과 이야기 되는 것에 내재된 공간적 시간적 연속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연속성에 나 있는 균열과 간극은 또 다른 관점과 의미를 낳는 원동력이다. 작품들은 창 또는 책에 세계를 담아서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자체가 또 다른 세계가 된다. 바깥 풍경은 지시대상과의 단순한 닮음 꼴이나 그 투영이 아니라, 작가 및 관객의 체험을 구성한다. 전시에 참여한 10명의 작가들은 바깥과 안, 또는 현실과 허구를 분리하는 틀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창이나 책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세계와 들려주는 이야기의 틀이다.

작품에는 다양한 틀이 등장할 뿐 아니라, 또한 변형되고 사라진다. 틀의 생성과 파괴의 과정을 통해 세계는 낯설게 조명된다. 르네상스 이래 미술은 바깥을 바라보는 창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언어의 불투명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근대에 일어난 창문에 대한 거부 역시 창문이라는 패러다임의 일부이다. 바깥으로 뚫린 창은 그 안쪽에 주체의 시선이 출발하는 내면의 장소를 마련한다. 창에 투사된 장면, 즉 환영은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풍경은 안과 바깥을 망라한다. 안팎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 바깥에는 대개 자연이 있다. 열린 문 사이로 풍경이 언뜻 보이는 장은지, 나무, 나비, 의자 같은 정원의 요소가 있는 김민구의 그림이 그러하다. 화가가 바깥에 있다면 집들이 보인다. 김소정은 이국적인 작은 집들을 작은 캔버스에 담아 수평으로 배치했다. 동화 속 작은 집처럼 보이는 그곳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외따로 떨어진 빈 집들에서는 부재와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을지 모른다. 김영훈은 집들을 종잇장처럼 구긴 후 거기에서 색 띠를 늘여놓는다. 스펙터클의 사회를 장식하는 수많은 상품처럼 코드화 된 풍경이다.
김진광은 작은 집들을 화면 가득히 펼쳐놓았다. 조금 보이는 하늘은 바늘 꽂을 틈 없는 도시의 밀집성을 더욱 강조한다. 린다 김의 풍경은 추상적이다. 물감이 줄줄 흐르기도 하는 추상적 바탕 위에 건축적 요소인 사각형들이 떠 있는 그것은 좌표가 불확실하지만 지시대상에서 출발한 흔적이 보인다. 여기에서 그리기와 지우기는 구별되지 않는다. 김봉관의 작품에서 풍경은 우주적 차원으로 도약한다. 육각형, 마름모 형태 등으로 틀 지워진 복잡한 회로도는 높은 고도에서 본 도시 풍경이다. 허수영은 수많은 물고기와 해저 식물이 있는 심해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항 같은 세계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실재에 다가간다. 세상을 보는 창은 무대와 비교되어 왔다. 주원영이 라인 테이프로 벽 위에 구성한 기하학적 이미지는 분리된 영역들과 계단 같은 건축적 요소가 있다. 그 위에 튀어나온 하얀 입체는 바닥으로부터 둥 떠 있는 가상공간에 어울릴만한 괴물같은 주인공이다.

서랍장에서 푸른색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조은필의 작품은 외부의 풍경을 생성하는 내부적 원천으로 다가온다. 작품들은 바깥으로 열린 창은 무한대로 펼쳐진 다양한 세계를 보여준다. 창을 통하여 보여진 것들은 상상과 닮은꼴이다. 현실 또는 상상의 세계는 작가가 고안한 형식적 장치들에 의해 구축된다. 그것은 단지 시각적일 뿐 아니라 상징적인 질서를 가진다. 상징적 질서는 자체의 일관성을 위해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열려 있다. 바깥은 저기 저곳에 안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사막이나 미로처럼 입구와 출구가 불분명하며, 끝이 없는 이야기이다. 바깥은 ‘아직 공간도 시간도 아니며, 자리 없는 공간이고, 생성되지 않는 시간’(블랑쇼)이다. 그곳은 그 자체를 향한 움직임을 추동한다는 점에서 상상의 장소이다. 이 작가들은 풍경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풍경을 낯설게 변모시키는 공백에 주목한다. 무(無)에서 출발해야 하는 바깥은 작품의 공간과 일치된다. 바깥에서 새로운 게임 그리고 또 다른 언어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세계는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출전; 퍼블릭 아트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