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빛깔의 거대한 막대사탕 위에서 한 얼굴이 웃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물의 됨됨이에 대한 선입견을 형성시켜주는 정보 혹은 구성요소 중 크기에의 인식은 결정적이다. 초현실주의자에게서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크기가 달라지면 낯설어지고 그로테스크해진다. 아방가르드주의자에게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낯설게 하기는 선입견의 견고한 성채를 해체해 행간읽기와 이면읽기에로 유도한다. 사물의 됨됨이는 겉보기와는 다르다. 겉보기는 파사드고 스펙터클이다. 파사드는 구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수한 표면장식에 지나지가 않는다. 그리고 스펙터클은 이면을 표상하는 표면이 아닌, 그저 표면일 뿐인, 그 자체 순수한 표면이다. 자본주의의 욕망은 이처럼 순수한 표면을 원한다. 액면 그대로를 원하고, 존재가, 존재의 이미지가, 존재의 의미가 액면 그대로 소비되기를 원한다. 이면과 행간은 자본주의의 욕망에 거스르는 것이다. 사물의 됨됨이는 명명백백해야 한다. 암시와 상기는 자본주의의 적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당신을 액면 그대로 믿기로 했다. 무지개 빛깔은 행복의 색깔이다. 그 행복의 색깔과 더불어 당신의 얼굴은 웃고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당신의 웃고 있는 얼굴이나 그래서 행복하다는 말이 액면 그대로라면 당신은 분명 행복하다. 당신이 기꺼이 웃고 있고 기꺼이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도 재고의 여지도 없다. 당신이 무지개 빛깔의 거대한 막대사탕을 빨면서 웃고 있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적어도 외관상 보기에 진실이다. 그런데 보기에 따라서 당신은 오히려 막대사탕처럼 보이고, 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사랑스런 막대사탕이 되어 그의 탐욕스런 혀를 달콤하게 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작 당신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반어법이다. 작가는 웃고 있는 얼굴을 보여주면서 울고 있는 현실을 암시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상기시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순수한 이미지며 표면적인 의미들로 상품화되고 낱개 포장돼 누군가에게 소비되고 있을지도, 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작가는 자동차 본네트(후드) 위에 얼굴을 주조해 부가하는데, 방법으로서 패러디를 도입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이를테면 자가용의 귀족 BMW의 로고를 차용하고, 대중문화의 스타 캐릭터 베트맨의 가면 문양을 차용한다. 흔해 빠진 게 자동차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가용하면 욕망의 대명사로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그것이 삐까번쩍한 BMW라면 더더욱 그렇다. 현재 자가용은 단순한 운송수단 이상의 사회적 하이어라키의 지표가 되고, 그 자체 사물계급론의 증표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물의 사용가치는 그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 빈자리를 물화와 물신이 연출해주는 아우라가 차지하고 있음을 침묵으로써 증언해주고 있다. BMW는 자본주의 시대의 남근이다. 힘센 놈, 강한 놈, 잘 생긴 놈, 능력 있는 놈으로 우뚝하다. 우뚝할 만하고 우뚝 설만하다. 적어도 그것이 BMW라면.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BMW를 소유함으로써 나는 저절로 능력 있는 놈으로 인정받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BMW와 내가 동일시되는 것에 대해서는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당연한 사실은 나 자신의 물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나는 불행하다. 내가 사물일 수는 없으므로. 그리고 베트맨 가면 문양은 영웅이 없는 시대의 가짜 영웅을 증언해준다. 가짜 영웅은 영웅이 없는 시대를 증언해주고, 그래도 여전히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어온다.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반어법적이다. 우는 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불행한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 행복한 얼굴을 보여주고, 물화된 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BMW를 호출하고, 영웅을 상실한 시대를 증언하기 위해서 베트맨을 불러들인다. 현실은 겉보기와는 다르다. 겉보기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 작가의 작업은 주의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그리고 위장복 문양 위에 덧그려진 웃음 마크가 씩 웃고 있다. 그 웃음이 겉보기에 웃음처럼 보인다. 혹 속이 보이는 웃음인가. 작가는 이 알쏭달쏭한 웃음을 위장처럼 내밀고, 무슨 화두처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