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안드레아스 징걸렛(Andreas Zingerle)은 인터페이스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사용자와 컴퓨터, 시스템과 시스템, 기기와 기기를 연결시켜주는 접속장치 혹은 결합장치를 의미하는 인터페이스에서 엿볼 수 있듯 그의 작업은 미디어 친화적이다. 그런 만큼 상호접속 내지는 상호연동 장치 혹은 관계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인간관계와 사실상 소통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이렇게 해서 인터페이스와 문화연구가 하나로 만나지는 것인데, 인터페이스가 미디어 쪽을 아우른다면 문화연구는 그 인문학적 배경에 해당한다. 따라서 인터페이스 문화연구는 사실상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의미하며, 미디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 연구와 쌍방 간의 소통 가능성의 확장에 그 초점이 맞춰진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리고 문화연구는 문화번역과 관련이 깊고, 상호텍스트성 혹은 간텍스트성 혹은 상호영향사와 관련이 깊다. 작가의 연구 분야와 관심 영역은 이 모두를 아우르고 있고, 그런 만큼 미디어 친화적인 현대미술의 의미 있는 분야를 점유하는 뚜렷한 지정학적 좌표가 확인된다.
안드레아스는
안드레아스는 2010년 린다 크론만과 함께한 Kairug.org 프로젝트를 계기로 이후 여러 작업에서 협업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의 실제 경험에 착안한 것을 작업으로 옮기고 실행한다. 이를테면 작가는 해외 레지던시 경험이 많고, 자연스레 작업을 선보이는 채널도 그 루트를 통하는 경우가 많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특성상 최종결정되기 전까지의 거의 대부분의 업무가 사이트(가상현실) 상에서 이뤄지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는 황당한 경험을 한다. 전시와 관련해 사이트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관련서류 일체를(혹 최소한의 경비와 함께) 보내고 멀쩡하게 답신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이트 자체가 허구였고 사기였음이 드러난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특별히 주의가 요구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대인은 사이트(가상현실)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일상의 상당 부분이 사이트에서 처리되고 사이트를 통해서 이뤄지는 만큼 보이지 않는 상대방에 대해 신뢰하고 말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그것을 따지려들면 일상은 정지되고 말 것이다). 이런 암묵적인 신뢰가 금이 간다면, 사실상 감각적 현실이 연장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상현실이 붕괴된다면, 가상현실이 말 그대로 가상현실뿐임이 명명백백해진다면 누구든 황당하지 않을 것인가. 여기서 작가는 소통의 네트워크가 불통의 네트워크로 변질되는 현실을 목격한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유사전시관련 사이트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한 사기를 흉내 낸 것이라기보다는, 감각적 현실과는 단절된 말 그대로 순수한 가상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라는 실제로는 없는 것인데,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의미한다. 아마도 작가는 그렇게 없으면서 있는 현실(가상현실?)에 관심이, 흥미가 끌렸을 것이다.
역시 린다와 협업한 근작에서 안드레아스는 사마루(Smaru)로 명명된 비디오영상설치작업을 선보인다. 각각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산악지대에서 채집된 민속신앙과 신화를 결합하고 재해석한 작업이다. 진즉에 그 분야에 관심을 가져오던 차에, 한국에도 그와 유사한 문화적 전통이 전래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번에 이를 작업으로 풀어낸 것이다. 따라서 작업에는 각각 한국과 오스트리아에서 채집된 관련 소스들이 서로 비교되고 교차되고 어우러진다. 아마도 작가의 작업 가운데 문화번역의 개념이 가장 뚜렷하게 반영되고 실현된 경우일 것이다.
먼저 오스트리아 쪽을 보면 알프스 지역을 중심으로 구전돼오는 산의 여신 살리제(Salige)가 등장한다. 흔히 하얀 옷을 입고 긴 금발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나, 나뭇잎이나 이끼 혹은 짐승의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작고 주름이 많은 얼굴을 한 노파의 모습으로 현현한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로는 이산신이 여기에 대비되는데, 산신들의 제왕 격에 해당하는 산신령이 남성신으로 인격화(신격화?)되는 것에 비해, 이산신은 남성신과 여성신이 공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한국의 경우에 남성신이 없지 않지만, 작가는 유독 여성신인 이산신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주목은 일종의 일관성을 띄고 나타난다. 말하자면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가이아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모두 땅신에 해당하는 여성신들이며, 여기에 살리제와 이산신을 연결시킨 것이다. 이처럼 땅신을 여성신으로 인격화(신격화?)한 것은 생명의 주체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이로써 동서양 할 것 없이 땅신에 대한 숭배사상이 확인되고, 그 전통이 산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현대에 전해진다고 본 것이다(비록 서양의 경우에 그 흔적은 미미하지만).
이처럼 산신 혹은 자연신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프로젝트의 이면에선 범신론과 물활론, 토템과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영적인 자연과 살아있는 자연에의 공감이 느껴진다. 이로부터 영성주의의 부활이나 일종의 미디어신화(미디어로 재해석된 신화)의 복원이 감지된다면 과장일까?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의 관심은 소통에 있다. 작가는 어쩌면 이런 영적인 소통이 꽉 막힌 불통의 시대를 소통시켜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