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수, 창자의 추억



정복수의 이번 전시에는 존재의 비망록, 욕망의 비망록이란 주제 아래, 옷을 안 입은 몸을 그리는 예술가, 라는 부제가 붙었다. 누드면 누드고 네이키드면 네이키드지 옷을 안 입은 몸은 또 뭔가. 굳이 그 의미를 따지자면 누드보다는 네이키드에 가까운 것일 터이다. 주지하다시피 누드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여자의 벗은 몸을 드러내 놓고 감상하기 위해서 발명해낸 가부장적 유산이다. 단지 여자의 벗은 몸에 지나지 않은 대상에다 여러 신화적이고 알레고리적이고 종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부여해 포장한 것으로써 여자의 벗은 몸을 드러내 놓고 봐도 되는 구실을 삼은 것이다.
이처럼 의미가 덧붙여진 신체를 미학적인 용어로는 정치적 신체라고 부르며, 그 자체가 의미 이전의 신체를 뜻하는 자연적 신체와 비교된다. 그리고 알다시피 쿠르베는 이런 자연적 신체와 더불어 사실주의를 열 수가 있었다. 당시 도덕적인 이중 잣대로 중무장한 남성 관객들은 도발적인 성기(세계의 기원)와 유혹적인 엉덩이(멱 감는 여인)와 같은,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은 신체 자체의 적나라한 제시에 당혹해했고 질타해 마지않았다. 적극적으로 도발하고 드러내 놓고 유혹하는 신체라니! 그 적나라한 신체 앞에서 그들의 도덕이 사실은 위선이었음이 폭로되고, 그 도덕이 무장해제 되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정복수가 그리는 옷을 안 입은 몸은 옷을 입은 몸과 비교된다. 주지하다시피 옷은 부끄러움으로부터 유래했다. 부끄러움을 옷으로 덮어 가린 것이다. 부끄러움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본성 곧 자연발생적인 자질이라기보다는 문명적인 사건이며, 옷은 그 사건의 부산물이다. 어쩌면 옷은 인간이 자연발생적인 상태로부터 문명적인 상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의 최초의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이때 옷으로 덮어 가리고 싶은 부끄러움은 욕망에 연동돼 있다. 즉 욕망이 없으면 부끄러움도 없다. 그래서 옷으로 덮어 가리는 부끄러움은 사실은 욕망을 가리는 것이다. 결국 옷은 욕망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가려 체면을 세워주는 페르소나 곧 사회에 내어준 주체, 주체를 대리하는 주체, 사회적 주체며 제도적 주체를 표상하고 수행한다.
이렇게 옷의 발생론적 기원을 추적해보면 옷을 안 입은 몸의 의미가 뚜렷해지고, 작가가 그리고 싶은 그림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즉 욕망하는 몸을 그리는데, 이때의 욕망은 부끄러운 욕망이 아니라 본성으로서의 욕망이며 생명 에너지로서의 욕망이며 건강한 욕망이다. 탐욕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욕과 식욕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명 에너지로서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욕망은 무엇보다도 몸의 욕망이다. 창자의 욕망이며 성기의 욕망이며 혀의 욕망이다. 창자의 기억이며 성기의 기억이며 혀의 기억이다. 창자의 추억이며 성기의 추억이며 혀의 추억이다. 창자는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성기는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며 혀는 달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작가가 그리는 몸은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기억과 추억이 이끄는 대로) 마구 분절되고 자유자재로 결합된다.

그렇게 분절되고 결합되는 몸의 표면이나 이면 어디에도 억압된 욕망이나 심연과도 같은 무의식 그리고 부끄러움에 수반되는 죄의식을 위한 자리는 없다. 중세 기독교는 원죄의식을 빌미로 도덕을 발명했고, 프로이트는 억압된 욕망을 구실로 무의식을 발굴했다. 그래서 작가가 그리는 마구 분절되고 자유자재로 결합하는 창자들이며 성기들이며 혓바닥들은 어쩌면 이런 인문학의 지점들이며 권력의 지점들, 이를테면 원죄의식과 도덕, 억압된 욕망과 무의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지점들의 시발점이 된 부끄러움을 해체하고 해방하고 풀어헤쳐 건강한 생명력을 복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림은 적나라한데도 부끄럽지가 않고, 마구 절단된 신체에도 불경스럽지가 않다.
작가는 신체를 그렸다기보다는 창자를 그렸고 성기를 그렸고 혀를 그렸다. 감각적인 닮은꼴이 아니라 몸에 대한 관념도를 그렸고 욕망에 대한 개념도를 그렸다. 그래서 그 몸이나 성기는 전혀 남근적이지도 권력적이지도 심지어는 유혹적이지도 않다. 성기가 유혹적이지 않은 것은 신체 해부도가 유혹적이지 않은 것과 같다. 성기는 그저 무슨 로켓처럼 우주 밖으로 쏘아 올려지고, 우주의 한 부분이며 부속임을 증언할 뿐이다. 꽃밭에 파묻혀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기념할 뿐, 건강한 욕망을 증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