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의 지원하는, 섬 공공예술 기획 프로그램의 하나인, 작은 무의도 그림 수필 ‘섬 집을 존중하다’(기획;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 예술감독 드라마 고)는 작은 섬 지역에서의 공공미술 활동을 책과 연극으로도 꾸미는, 서사가 있는 프로젝트이다.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에서, ‘기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서사적 탐험을, ‘새로움의 풍경’은 실천의 결과로 변화되어질 풍경을 암시한다.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공공미술 활동을 펼쳐왔던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예술 감독이며 작업반장인 드라마 고, 벽화를 담당한 이현준, ‘엄마 작가’인 김영란과 최은화, 충북 보은에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다시 인천에 온 공공미술 활동가 보리, 벽화도 그리고 대본도 쓰는 연극배우 김해진 등이 참여 했다. 바깥의 거친 환경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공공미술의 특성상, 여성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여성 작가가 많이 참여 한 점이 눈에 띈다.

‘엄마 작가’라는 표현도 정겹다. ‘여류화가’, ‘규수화가’ 같이 아마추어리즘과 유한계급의 면모가 결합된 모멸적인 표현이 아니라, 생활 자체가 보살핌의 노동에 헌신하는 ‘엄마’와 공공미술 활동가로서의 실천을 결합시킨 것이다. 인천지역에 기반을 둔 공공미술 그룹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은, 공공미술을 미술가라면 경험삼아 한번 쯤 해보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그들이 수행하는 과제들은 시행착오로 뒤범벅된 실험무대가 아니다. 그만큼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 또한 도출해야만 한다. 공동체와 참여를 기치로, 200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대안의 공공미술인 프로젝트 형 공공미술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면,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 역시 그러한 압박을 받고 있는 그룹 중의 하나이다.

섬 지역에서 실제 수행한 프로젝트 외에, 정식 출판물로서의 책자 또한 중요한 산물의 하나가 된 것은 공공미술이 담론의 영역에서도 보다 확고하고 지속적인 대안의 흐름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의 하나이다. 필자는 2008년에도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 수행한 프로젝트를 본적이 있는데, 그 때에는 대도시 인천에 속해 있으면서도 재개발의 역학관계 때문에 섬처럼 고립된 동네를 대상으로 한 공공미술이었다. 이번에는 섬 같은 곳이 아니라, 실제 섬이다. 소(小) 무의도는 대도시인 인천 근해의 작은 섬으로, 중심의 먼 가장자리에 자리하며 압축 성장의 그늘진 모습을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축도 같은 곳이다. 비어있는 폐가, 외지에서 온 이들의 화려한 별장, 허름한 주민들의 집, 해안가의 몇몇 식당 등, 여러 시공간의 켜를 둘러쓴 구조물들이 뒤섞여 있다. 일반 대중에게 관광지로나 인식될 법한 섬은 방치된 폐가들과 어구들로 인해 작은 섬 특유의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의도 옆에 있는 더 작은 섬 소무의도는 제일 높은 언덕배기에 작은 교회가 서있고, 한 바퀴 돌아보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 말 그대로 작은 섬이지만, 한때 500가구 이상이 북적였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1/10인 50여 가구 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섬주민의 대부분은 노령 인구가 차지한다. 해안가에서 보면 ‘국제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인천의 높은 마천루가 보이며, 비행기 또한 많이 왔다 갔다 한다. 그것들은 바닷새처럼 자유롭게 이동한다. 저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는 고도성장의 이미지는 그곳을 탈주해야만 하는 질곡의, 그리고 유폐의 장소처럼 여기게 했을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지만, 다시 복귀한 이들도 있고, 이 프로젝트는 통장님을 비롯하여 이들 소수의 장년층과 깊이 공조했다.

얼마 전 무의도와 연결되는 인도교의 완성으로 섬은 또 다른 변화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도교를 완성한 인천 중구청은 섬에 제주도의 올레 길 같은 관광 상품을 만들 계획도 있으며, 옆의 큰 섬은 다리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이 줄어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주민이나 관광객의 자유로운 통행을 방해하기도 하는 등, 위로는 관주도의 개발과 아래로는 같은 주민들끼리의 이해관계의 차이 때문에 긴장감마저 도는 곳이다. 관광객이 몰려와 주민들의 생계수단이 되고 있는 갯벌에서 이것저것 채취하는 소소한 일조차도 토착 주민들의 삶의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 관광지가 되면 주민들은 생산 활동보다는 서비스업종에 복무하게 되고, 외부의 자본이 침식하여 전 주민들을 기업의 종업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보다 많은 돈을 벌지도 모르지만, 더 많이 돈을 써야 하며 만족스러운 소비를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는, 도시 빈민과 똑같은 삶의 패턴에 복속될 것이다.

한국에서 개발이란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기보다는 중심으로부터의 동일성을 복제하고 확대하는데 급급해왔기 때문이다. 개발은 지역의 주민들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을 낳고 이는 여러 공공미술의 현장에서 발견되곤 한다. 공공미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문제를 보다 공공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는 문화적 매개자의 역할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장소에 공공미술의 오랜 경험을 축적하고 그에 대한 헌신적인 열정을 가진 그룹의 투입은 적절해 보인다. 그곳에서의 공공미술은 단지 무엇을 꾸민다든가, 일방적인 프로그램으로 주민을 계몽시킨다든 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1월 11일에는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의 현지조사와 경험, 작업과정 결과물의 하나인 그림 수필집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슬라이드 쇼로 사진 작품들을 감상하고, 참여 작가들이 직접 책 내용 일부를 낭송하는 것으로 행사는 진행되었다.

오후 3시 경 이장님의 안내방송을 통해 행사 일정이 알려졌다. 참여 작가들이 머물고 프로젝트의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맡았던 복지회관 앞 게시판에는 포스터와 현수막 등을 붙여 행사를 적극 알려왔다. 많은 공공미술의 현장에서 작업의 내용과 형식을 알리는데 미흡하여, 주민들은 어느 날 들어온 외지인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오해로 인한 갈등상황도 많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러한 오류는 사전에 차단되었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교회에서 시작된 기념회는 마을주민 30명 이상이 참여했다. 얼마 안 되는 인원 같지만, 워낙 사람이 적게 사는 마을의 주민 거의가 참여한 것이어서, 작가들과의 유대 및 신뢰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출판 기념회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자신이나 집, 이웃들이 찍힌 사진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누구네 집이다, 누구다 하는 식으로 단지 사진으로 재현된 대상을 지칭하며 즐거워하는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을지 모를 섬 주민에게 직접 와 닿는 소통 방식이었다.

출판기념회는 출판물에도 수록된 원본 사진 작품들을 액자 안에 넣고 전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행사가 끝난 후 해당 주민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이지만, 아마도 그들에게는 예술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서의 사진을 처음 소장하는 경험일 것이다. 사진들은 책자 제목 그대로 ‘섬 집을 존중’하는 것이다. 새롭게 부여된 맥락을 통해 그들의 삶은 주변화, 타자화 되지 않고 전경에 배치된다. 또한 책자는 단순한 팜플렛이나 자료를 넘어서, 서점에도 유통되는 정식 출판물로서 대중 및 공공미술 연구자들이 현재 진행형의 공공미술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도움을 주리라 예상한다. 현장에서 생성된 경험과 담론이 흩어지지 않고, 공식 자료로 하나 둘 축적시키는 것은, 단지 현장에만 헌신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담론적 차원에서 공공미술을 확장하는 것이다.

도서 출판 다인아트에서 나온 그림 수필집을 보면, 김영란은 [어머니를 닮은 나의 집]에서 어머니, 할머니뻘 되는 어르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사는 집을 사진 찍고 주인공은 실루엣만 남기고 하얗게 처리하였다. 그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보다 더 오래 갈지 모르는 섬 집의 보다 긴 삶의 주기를 표현한다. [학교 가는 길]에서는 전 주민이 동창인 마을의 학교, 지금은 잡초만 무성히 자라는 야적장으로 전락한 그곳을 옛 사진과 현재의 모습과 대조하면서 그 역사를 만화와 글로 담았다. 최은화는 [옛집의 기억]에서 작업에 들어갈 집의 자세한 구조를 스케치한다. 거기에는 거의 생활사 박물관 차원의 오랜 사물과 구조들이 삶을 증거 한다. [떼무리로 시집와 살았지]에서는 고추말리고 살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이 담겨있다. 보리의 [갈매기 아빠]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족의 사진을 넣었으며, [나와 이웃집 할머니]에서는 텃밭과 갯벌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땅과 하나 되어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현준은 [어부의 하루]에서 어구를 손질하거나 그물을 잡아 올리는 어부의 모습을 자연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영웅적 면모를 표현했다. 김해진은 [섬의 가을은 나의 봄이다]에서 집과 여자가 등장하는 연극대본을 썼다. 예술 감독이자 작업반장인 드라마 고는 [떼무리에서의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에서 마을의 과거와 현재 사진을 편집하여 마을과 거기에서 이루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한 총체적 기술을 시도한다. 미술계에서는 ‘현실참여’라는 말들을 꽤 많이 해왔으며, 그러한 행동주의적 소명의식이 있던 미술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는 시점에서, ‘현실참여’는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불씨가 살아 올랐는데, 그것이 바로 대안의 공공미술이다. 그럴듯한 명분의 깃발을 들어 올리거나, 권력을 향한 무리 짓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굳이 그들에게 전략이란 것이 있다면, 작업을 잘 수행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지배질서와 곧잘 동화되곤 하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에 집중한다.

프로젝트는 책자를 만들고 발간하는 출판팀, 집수리와 공간변용, 그리고 벽화를 담당하는 현장 팀, 그리고 연극 팀 등 세 팀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출판팀에서 맡은 그림책에는 소무의도의 풍경에 이야기를 담는데, 주로 생활터전으로서의 섬, 집, 옛날의 추억, 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취재하여 글로 풀어내고 사진도 찍고 수집하며, 참여 작가들이 그린 그림이나 만화를 삽화로 넣었다. 책자는 그곳에서의 삶과 이 공공프로젝트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꾸며졌다. 책자 발간이 섬과 주민과 그들의 삶을 멀찍이서 관찰하고 그들을 소재로만 삼았다면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출판기념회든, 연극이든 실제로 진행한 몇몇 행사에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했던 것은 참여 작가들이 헌신적으로 그곳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작업은 고된 노동 또한 포함한다. 작가라기보다는 험한 일을 하는 노가다꾼 같은 모습에서, 성의 구별 또한 확실치 않을 정도였다.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어르신들과의 자연스러운 융화, 꼼꼼함, 헌신 같은 가치들만이 ‘그녀’임을 알아 볼 수 있게 했다.

참여 작가들은 주민의 생활을 만나기 위해 조업하는 어부, 텃밭과 갯벌에서 일하는 할머니의 노동을 체험했을 뿐 아니라, 작업을 통한 노동의 공유, 즉 동종요법은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설득하는 또 하나의 기술이다. 물론 집과 마을 가꾸기에 투입했던 그들의 노동은 예술적인 것을 포함한다. 참여 작가들은 문을 고치고, 집을 색칠하며 마당이나 길 같은 주변 공간을 변화시켰다. 실제 벽에 이미지를 그리는 벽화는 물론이고, 기존 구조물에 덧 입혀질 색의 조화, 손을 대야할 곳과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 곳의 구분, 약간의 변화로도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장치의 고안 등은 시각 예술 작가로서의 자의식과 방법론이 관철되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생태적 사고 또한 깊이 작동한다.

마을 주택 정비작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돈을 들여 먼 곳에서 상품을 사오고 상품을 만들어 먼 곳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그들은 가까운 곳의 재료를 재활용하였다. 그곳에 이미 있는 것들 가령, 버려진 나무판이나 하얀 굴 껍질 등으로 집을 보수하고 길을 만들었다. 이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 주민 참여는 중요했다. 단지 공공기금을 집행하는 이들이 와서 뭔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개선과 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집수리 같은 작업에는 반드시 집주인과의 협업을 거쳤다.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되면, 오래 방치되어 자연화 되다시피 한 열악한 주변 환경들을 이후에는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소무의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예술성, 대중성, 공공성의 상관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작업의 대상이 된 섬은 틀로 에워싸인 하나의 화면처럼 닫혀져 있는 공간이면서 밀도 있게 작가들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는 무대가 된다. 그 무대는 어떤 대지 예술의 예가 있듯이, 섬을 다 포장을 한다든가 하는 식의, 한 예술가 개인의 의도가 객관적 대상에 관철된 예술적 기획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의 현대성은 예술의 개념화를 통해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현대에, 작업을 위한 준비 및 수행과정은 워크샵이든 프로그램이든 공동으로 실천해야할 개념과 방법의 공유라는 면에 있다. 주민을 단지 대상으로 삼지 않고, 상호주관적인 맥락 속에 놓고자 했다는 점이 특히 현대적이다. 작가들이 마다하지 않았던 고된 노동은 ‘예술의 자율성’을 허구로 만들어버린다. 미학자 아도르노는 노동을 은폐시킴 없이는 어떠한 예술의 자율성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바 있다.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예술의 극단적 자립성의 이면은 바로 예술의 무의미성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예술의 자율성은 타율성으로 전화되곤 한다. 앙리 아르봉은 [마르크스주의와 예술]에서 예술과 노동의 관계가 그들의 공통적인 창조적 성격에 있음을 최초로 분명하게 파악한 사람은 마르크스라고 지적한다. 예술이란 노동의 적극적 측면을 연장시킴으로서, 인간의 창조적 역량을 보여주는 활동이다. 만약 예술이 노동이고 생산이라면, 그것은 항상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물질적인 삶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객관적 실천들’(P. 마슈레이)로 다시 정의될 수 있다. 이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주장하는 비도덕주의, 무기능성, 무의미 등을 상대화시킨다. 그것은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특성이 아니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적인 맥락으로 서사화하는 것은 윤리적이며, 공공미술은 의미와 기능을 적극 생산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도 소수화 되고 있는 소외된 미술의 상황을 거부한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이 죽었다고 홀로 선언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예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소외는 해방의 이면이기도 했지만, 예술가의 진정한 해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돈이 아니라 공동체가 요구된다. 공공미술은 보다 소박하게는 작가들의 공동체를 창조할 수 해방된 사회 공간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은 현실의 섬에 들어와서 예술의 정신적 섬을 벗어난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이 갖추어야할 또 하나의 요건인 대중성을 충족시킨다. 작가들은 주민 모두가 좋아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도모했으며, 출판 기념회와 연극은 성황리에 끝났다. 책자는 공식적 출판을 통해 또 다른 공공영역(public sphere)에서 소통, 또는 유통될 것이다. 책은 미술작품에 비한다면 대중적인 매체에 더욱 가깝다. 그것은 향후 공공미술 담론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기록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대중성은 소수의 전문가가 생산하여 대량적으로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문화라는 방식이 아니고서도 관철된다. ‘섬 집을 존중하다’는 테마 자체가 소비가 아닌, 스스로 생산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기획이다. 그것은 생산자와 생산물간의 분리를 통해 소통(유통)되는 비민주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역행이다. 현재 대중문화의 원류가 되고 있는 민속문화(folk culture)의 흔적은 많이 지워져 있지만, 작가들은 노출된 시공간의 층들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덧입히는 고고학적 시선을 통해서 주민들의 생활사를 발굴하고자 했다. 공공미술을 공공영역에서 수행되는 미술이라고 가장 소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비평의 기능]에서 비평 또한 속해 있어야 할 공공영역과 관련하여, ‘지배 없는 교환방식’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공공영역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개개인은 이성적인 대화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나눌 수 있고, 더 이상 사회적 권력이나 특권 또는 전통 같은 것들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성의 합의에 바탕 한 담론이 소통되며, 그러한 공공영역에서는 권위가 아닌 진리가, 지배가 아닌 합리성이 통용된다.

이러한 이상적인 의미의 공공영역은 현재 시장을 유일한 가치로 삼는 자유주의에 의해 위협받고 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맥락에서 공공영역이 발생했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린다. 그것은 지금은 너무나도 희미해진 예술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것이다. 예술의 보편적 가치는 고전주의가 옹호하던 가치이기도 했지만, 그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현대적 방식이 중요한데, 그것은 현재, 섬 같은 주변부에서 헌신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안의 공공미술에서 발견될 수 있다. 덧붙여 개인의 영리와 무관한 이러한 사업들이 시민사회가 맡아야할 문화적 몫으로, 즉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일자리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자료 사진은 http://vanziha.net 에서 볼 수 있다)

출전; 인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