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현의 작업은 바로 이런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현실을 다룬다. 여기에 경례하는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엎드려 절하는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키스하는 자세와 세일즈맨의 자세(태도?)를 바로 잡아주는, 두 손을 번쩍 들거나 머리 뒤로 깍지 껴 완벽하고 안전하게 투항하는 자세를 교정하고 훈육하는 장비들이 있다. 말이 교정이고 훈육이지 그 장비들은 실제로는 무슨 억압의 도구들 같고 고문과 감금의 장비들 같다. 그 장비들은 풍자적인데 도구화된 이성을, 맹목적인 종교를, 효율의 극대화에 맞춰진 기계화된 사회를, 나아가 사사로운 욕망마저 억압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는 사회를 증언하는 메타포 같다.

그래서 개인들은 이런 숨 막히는 현실을 떠나 개인주의로 도피한다. 일인용 소변기와 좌변기, 일인용 욕조, 일인용 병상, 일인용 가옥과 막사, 일인용 놀이기구, 일인용 숲과 정원, 그리고 심지어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집중할 수 있는 일인용 강의실(이라기보다는 도구) 속으로 숨는다. 그 장비며 도구들이 폐쇄적인 현실을 증언한다. 그리고 그 증언은 스스로를 스스로의 감옥에 가두는 일인용 감옥에서 극대화된다. 이 장비며 도구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돼 있지만 터무니없지는 않다.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현실을, 희극적인(아님 비극적인?) 현실을 침묵으로써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